[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읽기] 역지사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읽기] 역지사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 법보신문
  • 승인 2009.08.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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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하윤숙 옮김/살림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선을 타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4백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865년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흑인=노예’가 아니게 되었지만, 백인들의 뇌리에는 ‘흑인이란 도덕심도 없고, 수치심도 모르며, 아무데서나 성교를 해대는 동물 같은 존재이기에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식이 너무나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1959년 10월28일 마흔 살의 백인 남자 존 하워드 그리핀은 남부 흑인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난 뒤 차별당하며 살아가는 자의 느낌이 어떤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백인이 남부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19쪽)

그래서 그는 흑인이 되어보기로 결심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색소 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강한 자외선을 쬡니다. 마지막으로 머리까지 밀어버리고 나서 완벽한 흑인 중년남성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핀은 이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미국 남부로 여행을 떠납니다.

사실 그리핀은 피부색만 바꾸었을 뿐이지 자신의 직업이나 재정 상태는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핀은 첫날부터 매우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백인들 중에 그리핀을 한 사람의 평범하고 의젓한 성인남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은 언제나 “흑인은 한결같이 위험천만한 존재라서 가까이 가지 말라”고들 하지만, 흑인 그리핀이 체험한 결과 정작 더 위험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은 백인들이었고, 잔인하고 몰지각하고 비윤리적이고 무지하고 편협한 사람들도 바로 백인들이었습니다.

“흑인의 하루 일상은 온통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계속 확인받는 일로 이뤄져 있다”(94쪽)는 사실을 깨달은 그리핀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백인들의 이중적인 태도였습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가장 품위 없는 측면을 흑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이면서 어떻게 자기가 원래부터 우월한 존재인 것처럼 자신을 속일 수 있는지, 그리고 백인 남자의 이런 본성을 낱낱이 봐버린 흑인이라면 백인 남자가 흑인의 ‘비도덕성’ 운운하는 소리가 얼마나 미친 소리처럼 공허하게 들릴 것인지”(159쪽) 그는 묻고 또 묻습니다.

그의 흑인체험은 40여일로 끝을 맺습니다. 그는 백인들의 이 같은 태도를 직접 겪다가 깊은 혼란과 슬픔에 사로잡힌 나머지 수도원에 들어가 안정을 취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체험기가 책으로 나오자 미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 시대의 고전이요 필독서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당신도 내 입장이 되어 봐.”라는 말이 있지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 무엇보다도 평소의 자기 모습을 여실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선물로 갖게 됨을 그리핀의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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