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를 가장 티베트답게 보여주는 글
티베트를 가장 티베트답게 보여주는 글
  • 법보신문
  • 승인 2009.11.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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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아라이 연작소설/전수정, 양춘희 옮김 / 아우라

달라이 라마, 람림, 마니차, 포탈라궁, 환생, 밀교, 사자의 서, 입보리행론….
티베트를 떠올리면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단어들입니다. 불교가 처음이자 끝인 나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새겨진 티베트에 대한 인상일 것입니다. 수많은 티베트 스님들과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동서양의 수행자들이 지금 세상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고 행복의 메시지를 던져주느라 분주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전 세계 사람들이 티베트인들의 불우한 정치적 상황에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티베트에서 뿜어 나오는 고도의 종교적 경지에 매료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는 티베트와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티베트가 과연 같을까요? 외부 사람들에게 티베트는 핍박받으나 깊은 종교적인 인내심으로 견뎌내고 있는 초월의 땅이겠지만, 지금 그곳에는 2009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습니다.

작가는 스님도 아니고, 서양의 탐험가나 불교학자도 아닌, 그 땅에서 나고 자란 티베트 소설가입니다. 그가 자기들의 현재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이지요. 물론 13편의 단편소설에는 언제나 라마승이 등장합니다. 이런 사실 하나로 봐도 1959년생 티베트 소설가에게 뿌리 내린 불교의 저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티베트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심오한 불교교리를 이해하며 수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라마승,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정부에 의해 강제로 환속당한 ‘전직(前職)’ 라마승들은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할지 몰라 막막하게 지내는 존재들입니다. 어쩌면 이들 중에는 떠들썩한 대도시의 상점에 취직한 사람도 있을 것이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환속스님들은 대체로 양치기로 세속의 삶을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공양과 존경을 받으며 경을 읽고 기도하고 참선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그들은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버립니다. 현실 대처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의 기민한 양치는 솜씨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적응해나갑니다. 그들이 사원으로 되돌아가 스님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의 스님들에게 ‘무능력하고 나태하며 인민의 기생충’이라는 딱지를 붙인 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족들과 어우러져 사냥을 다니며 그럭저럭 중국화(中國化)되어 가는 티베트 남자들. 영원한 이상향 샹그릴라 대신 수많은 사람들과 물건과 돈이 넘쳐나는 베이징을 향해 스스로 팔려가는 티베트의 처녀들. 도시 주차장에서 야간경비일을 하며 쪽방에서 잠을 청하는 노인. 이게 티베트의 현실입니다. 이러다 지금 세계로 번져가는 티베트 불교의 사상이 정작 티베트 사람들에만 금시초문의 만트라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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