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거부하라, 그래야 사람이다
[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거부하라, 그래야 사람이다
  • 법보신문
  • 승인 2009.10.1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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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알베르 까뮈 지음/김화영 옮김/책세상

세상을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집과 같다고 보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불난 집 못잖게 감옥살이로 보는 이가 또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까뮈입니다.

그의 소설 <페스트>는 본래 ‘감옥살이’라는 제목으로 구상되었다고 합니다. 핍박받고 내몰리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으로 가득 찬 곳이 바로 이 세상이요, 까뮈는 이런 감옥살이 세상을 ‘페스트’라는 무서운 전염병에 걸려서 탈출구가 없는 ‘오랑 시(市)’에 비유하였습니다.

인간은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운명인데, 인간들은 극한상황에 처하면 대체로 세 가지 태도 중 하나를 취한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이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피하면 그만이라는 ‘도피적 태도’가 그 첫째요, 이런 재앙은 신의 징벌인데 그럼에도 신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초월적 태도’가 그 둘째요, 마지막으로는 어찌 되었거나 지금 닥친 재앙에 반항하고 싸워야 한다는 ‘반항적 태도’가 그 세 번째입니다.

소설은 이런 각각의 태도를 지닌 인간들이 어떻게 현실을 헤쳐 가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도피적 태도를 취하여 어떻게든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애쓰던 신문기자는 도망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비극이 결코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깨닫고 의사를 돕는 일에 적극 나섭니다.

신의 뜻이라며 시민들에게 기도하자고 외치던 신부는 어린 아이가 페스트에 걸려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사로잡히지만 그는 끝까지 신을 부정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신부는 이렇게 강변합니다. “우리 힘에는 넘치는 일이니 반항심이 생길 법도 하지만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묻습니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어린애들마저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놓은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리유는 다른 사람이 도피하거나 신을 부르며 기도하는 동안 불가항력적인 페스트에 대항해 병든 자를 치료하겠다고 나섭니다. 설혹 의사의 노력이 페스트라는 거대한 불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해도 그는 인간이 운명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불행의 그림자에 반항하고 거부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태도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까뮈 자신은 <페스트>가 ‘가장 반기독교적인 책’이라고 말했다지만 책을 읽고 난 나는 그 말을 이렇게 수정하였습니다. “<페스트>는 가장 반운명론적인 책이다”라고 말이지요. 책을 읽는 내내 질병과 가난과 전쟁과 갈등과 죽음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시대에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느라 입맛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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