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샤워하고 이를 닦듯이 매일 마음챙김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평소 하던 대로 움직이면서 자신이 그 동작에 완전히 깨어 있을 수 있으면 됩니다. 샤워할 때, 양치질할 때, 설거지할 때, 차나 커피 마실 때, 주차장에서 사무실로 걸어갈 때, 아침 식사할 때, 또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마음챙김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샤워하기’를 선택했다면 몸에 물이 닿는 감각이나 물의 온도, 압력 등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몸을 씻을 때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돌아서거나 몸을 굽힐 때 몸이 어떤 움직임을 취하게 되는지
붓다는 “마음을 이해하는 자는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있으며 모든 현상에 앞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불교는 기본적으로 마음이 자연 세계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이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내성적 탐구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마음과 의식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붓다는 마음을 직접 조사하고 검사하기 위해 초기 인도 명상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의를 안정시키고 정제하는 기법들을 다듬어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했는데 이것이 사마타 명상이다.사마타는 주의의 흥분과 이완이라는 장애가 철저하
불교는 괴로움이 존재하고,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으며,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가 있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즉, 사성제라고 한다. 이러한 사성제는 일종의 심리적 처방으로 펼쳐져 있다. 증상과 증상의 원인, 치유의 가능성과 치유에 이르는 길이 그것이다.첫 번째 진리는 ‘괴로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는 필연코 아픔(pain)이 따른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데 불교 심리학은 아픔과 괴로움(suffering)을 분명히 구분한다. 아픔
불교는 욕망을 완전히 제거하고 없애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오해한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바는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욕망을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지로 보고, 삶이 지닌 에너지의 일부로 본다.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건강한 방식으로 일으키면 건강한 욕망이 일어나고,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으키면 건강하지 못한 욕망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불교는 건강한 욕망과 건강하지 못한 욕망을 구분하고 있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건강하지 못한 욕망에는 탐욕, 중독, 지나친 야망, 도박, 여색에 빠지는 것, 과욕 등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고통의 원인이 된 사건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땐 슬픔이나 격분, 절망, 고통과 같은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만약 상처받은 진짜 감정을 숨긴다면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속에 분노와 적개심을 숨기고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평화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크든 작든 용서라는 치유의 샘물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용서의 마음은 억지로 일으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민 수행을 통해 자기 내면의 싸움과 슬픔을 견뎌내는 방법을 찾을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고통이나 슬픔과 연결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만나는 모든 대상을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비록 우리가 격렬한 고통을 겪는 동안에도 연민은 내면에 있는 자비의 천사처럼 힘겨운 상황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줍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연민은 우리의 참된 본성 중에서도 기본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기에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도 연민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이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지금 이 순간’에 고요
회복탄력성이란 우리가 스트레스나 심한 역경을 맞이했을 때 자신의 내적·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역경을 성숙한 경험으로 바꾸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닥친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한마디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인간의 총체적 능력을 말한다. 이는 어느 정도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매우 역동적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며, 환경 요인과 문화, 교육, 개인의 노력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회복탄력
우리 몸이 특정 물질에 대해 문제적이고 파괴적인 남용 패턴으로 길들여진 상태를 일반적으로 중독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특정 ‘물질’뿐 아니라 ‘행동’ 패턴에 강박적 성격이 있을 때도 중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중독은 나에게 아픔을 주는 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려는 욕구에서 생긴다. 하지만 아픔을 차단하면 현재 순간에 대한 단순한 경험으로부터도 단절되고 만다. 그리고 우리가 중독 행위를 없애려 할수록 중독은 더 힘을 얻는다.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그물에 더 단단히 걸려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중독에 맞서 그것을 없애
사마타 수행은 마음을 완전히 집중하는 선정(禪定)을 목적으로 한다. 사마타를 성취한다는 것은 거친 흥분과 정묘한 흥분, 거친 해이감과 정묘한 해이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마음은 대상에 고정되며 다른 감각들은 닫힌다. 그리고 대상에 몰두하지만 아무런 노력이 들지 않는다. 마치 아무런 돌기가 없는 얼음판 위를 하키 퍽이 미끄러지는 것처럼 어떤 인위적 노력이 필요 없다. 또한 사마타가 나타나면 급격하게 신체적 변화를 느끼게 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황홀경이 몸과 마음에서 밀려오기도 한다. 온몸과 마음을 채우는
명상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명상이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고 특정한 생각을 갖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명상은 어떤 특정한 생각을 제거하거나 텅 비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우리 자신을 이 순간 지금 있는 그 자리에 그 상태 그대로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지낸다. 생각에 빠져있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하지만 명상의 대상으로서는 생각이 매우 유용하다. 생각의 내용에 빠져 마냥 헤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자각하고
공감이란 타인의 내면을 지각하는 능력으로, 진실로 친밀하고 모든 의미 있는 인간관계의 근간이 된다. 진정한 공감은 인지적인 동시에 정서적이면서 신체적인 것이다. 인지적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고 그 사람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지적 공감이 인간에게서 두드러진 것은 진화적으로 최근 크게 변화한 뇌 영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서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의 내면세계를 인지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넘어 정서적인 경험까지 다다르는 것이다. 현악
인류의 뇌는 살아남기 위해 생명과 직결된 부정적 정보에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진화되었다. 즐거운 경험을 놓쳐도 내일이면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오지만, 부정적인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오늘 죽기 때문에 내일의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당근을 얻는 기회는 자주 놓치는 한이 있어도 무슨 수를 써서든지 채찍은 일단 피하고 봐야 하는 강박 관념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강력한 ‘부정적 편향’이 우리의 뇌에 내장되게 되었다. 어쨌거나 우리가 겪는 괴로움 중 상당 부분은 자연이 수백만년에 걸쳐 진화하는 동안 우리 안에 새겨 넣은 본
말은 우리에게 때로는 치유해 주고, 달래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인생의 고난을 마주했을 때 관심을 담은 단 한마디의 말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반면 말은 엄청난 해악을 우리에게 가하기도 한다. 분노나 잔인함으로 가득 찬 날카로운 말은 인간관계를 깨뜨리거나 듣는 이를 몇 년 동안이나 상처 주고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 이렇듯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적이고 정신적이며, 감정적이고 육체적이면서 복잡하고,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은 경청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경청은 근본적으로
2001년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의 신경과학자 데브라 거스나드(Debra Gusnard)와 마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은 두뇌영역 가운데 완전히 별개의 아주 흥미로운 신경망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를 발견했다. 마커스 라이클은 자기공명영상 기기 속에 누운 피험자들이 문제풀이에 몰두할 때 특정 두뇌부위의 활동이 오히려 감소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전의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이 인지적 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두뇌활동이 평소보다 증가하기만 한다고 생각한 것에 반하는 발견이다. 이
‘내려놓기’는 감정 에너지에 대해 좀 더 깊게 통찰할 수 있게 하는 수행이다. 이 수행에는 감정의 존재를 알아차리자마자,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감정이 튀어나오면, 오게 그냥 두고, 그 감정이 바뀌면, 바뀌게 놓아두자. 생각이 떠오르지 못하게 막으려고 애써도 소용없듯이, 감정 역시 일어나지 못하게 막으려고 애써도 우리는 그 감정을 막지 못한다. 감정을 일부러 바꾸려고 애쓰지 말자. 그저 감정 하나하나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 감정이 열린 공간 속으로 융해되도록 내버려 두자.
‘명확하게 바라보기’는 감정과 감정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바라보는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우리는 행동 속에 담겨 있는 습관적 패턴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행복하고 기쁠 때는 그 감정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불쾌한 감정이 솟아날 때는 그것에 저항한다. 이 저항이 아무 소용없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다. 이제 호흡에 집중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보자. 현재의 순간에 머물면서, 감정을 저항 없이 완전히 받아들여 보자. 점차 알아차림이 확장
‘알아차리며 거리 두기’는 자신과 감정 사이에 안전거리를 만들고, 감정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수행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감정의 에너지와 소통할 넉넉한 심리적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뇌 신경과학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에 대해 단순히 ‘알아차리기’만 해도 실수를 줄이고,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며, 나쁜 결정을 피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우리는 보통 화가 나면 그 화에 더 많이 화내는 것으로 반응하고 열심히 부채질해서 화가 계속 활활 타오르게 한다. 하지만 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판단하지 않고, 저항하지
명상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감정을 모두 없애려고 열심히 노력하거나 아니면 어떤 감정도 온전히 느낄 수 없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명상은 우리가 그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을 더욱 정확하게 자각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감정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육체적 고통을 경험할 때 느끼는 빨라진 심장 박동, 거친 호흡, 울음 또는 떨림과 유사하게 흥분하거나 당황하거나 불안할 때 경험하는 증폭된 정신상태’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기에는 이런 거친 감정만 있는 것이 아
붓다에 의하면 우리는 몸에서 몸을, 느낌에서 느낌을, 마음에서 마음을, 법(dharma)에서 법을 마음챙김함으로써 해탈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그 첫 번째 길은 몸에서 몸을 마음챙김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에 있는 실재의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어떤 때는 따끔거림이나 열기, 차가움,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긴장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가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면 상처받은 곳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고 우리 몸속에 있는 치유의 에너지가 흘러넘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몸은
현대 사회에서 마음과 몸의 균형이 위협받는 게 일상화되고 있다. 이 때 달리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함께 단련하면 자연스러운 조화와 균형이 생긴다. 달리기는 걷기의 연장된 형태로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운동 중 하나이다. 심장을 강화하고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며 신경계에 활력을 주는 최고의 유산소 운동이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동시에 달리기는 호흡의 깊어짐을 촉진할 수도 있어서 더 깊은 수준의 명상도 가능케 한다. 달리기는 몸의 습관뿐만 아니라 마음의 습관까지도 변화시킨다. 명상과 마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