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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알아차리며 거리 두기

감정의 본래 상태는 순수한 창의적 에너지일 뿐이다

화가 일어나면 판단·저항치 말고
한걸음 물러나 무심히 바라보라
감정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
거세게 일어났지만 곧 사라질 것

‘알아차리며 거리 두기’는 자신과 감정 사이에 안전거리를 만들고, 감정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수행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감정의 에너지와 소통할 넉넉한 심리적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뇌 신경과학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에 대해 단순히 ‘알아차리기’만 해도 실수를 줄이고,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며, 나쁜 결정을 피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우리는 보통 화가 나면 그 화에 더 많이 화내는 것으로 반응하고 열심히 부채질해서 화가 계속 활활 타오르게 한다. 하지만 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판단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으면서 알아차리고,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조금 더 객관적인 관점을 얻게 된다. 그러면 애초에 일어난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제 어떤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그 감정을 단순히 ‘느껴’보자. 그 감정의 에너지를 막지도 말고, 반응하지도 않은 채, 그저 느끼고 있는 것을 그냥 주시하며 알아차림 해 보자. 이렇게 감정을 느끼는 데 시간을 내준다면, 모든 것이 저절로 느려질 것이다. 우리가 느낀 바로 이 공간에서, 자신과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 사이의 틈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약간의 거리가 ‘감정이 곧 나 자신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주의를 몸의 느낌으로 가져가 보자. 그러면 무엇이 자신을 화나게 했는지에 대해 매달리는 것을 내려놓기가 좀 더 쉬워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고 무엇이 일어나는지 그냥 무심히 바라보자.

그리고 그 느낌에 ‘중지’ 버튼을 눌러 현재의 순간에 좀 더 머물러보자. 분노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느껴보자. 우리는 그 경험의 순간에 머물고 알아차리며 바라보지만 반응하지는 말자. 계속 호흡을 바라보면서 느낌과 함께 현재에 조용히 머물기만 하면 된다. 이 지점에서 할 일은 긴장을 풀고 의식을 감정 에너지에 집중한 채 있는 것뿐이다. 마음을 연 채, 그 느낌을 붙들고 그 느낌과 머물기를 거듭해 보자. 감정들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감정들이 나쁘다거나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감정들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경험하도록 노력해 보자. 감정들이 일어나고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중지’ 버튼을 누르고 있을 수 있다면,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뿐만 아니라 감정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매 순간 새로운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화, 질투, 열정, 자부심을 경험할 것이다. 현재의 순간에 느끼는 전혀 새로운 감정을 어떠한 필터도 거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감정의 ‘발가벗은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 감정들의 정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 감정들은 어떠한 개념이나 철학적 해석의 옷도 입고 있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미 감정들이 생각보다 유동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감정들은 반짝이는 불빛 혹은 청량음료 위의 거품과도 같다. 화가 불꽃처럼 번쩍인 다음에 다른 불꽃이 또 일어난다. 이들은 일어나고 사라지며, 깜빡거리고 펑 터진다. 우리가 수행을 하면 감정에 대한 인식을 근본부터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 화를 거칠고 단단한 어떤 것이 아니라 유연하고 유동적인 에너지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변화로 인해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우리 감정들은 본래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그저 순수한 창의적 에너지일 뿐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감정들의 바로 그 본성, 이것이 감정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매우 심오한 지혜이며, 이것이 감정들과 우리의 관계를 영원히 바꿔 줄 것이다.

신진욱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buddhist108@hanmail.net

 

[1551호 / 2020년 9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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