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국민들의 망각증세는 중증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아무리 엄청난사건이라 해도 잠시 시간이 흐르면 이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향이좀 지나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우리국민의 이같은 증세를 곧 잘이용하기도 한다. 정치적 위기나 여론의 세찬 비판에 직면했을 때마다 깜짝쇼 차원의 충격조치를 내려 여론을 반전시키며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사례는 이제 관례가 되어버렸을 정도다. 이 증세를 아픈 과거사를 잊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 도움을 줄수도 있다는시각까지 일부 국민들 사이에는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증세 때문에 우리국민이 겪는 피해는 엄청나다. 8.15해방이 후 일제잔재를 제대로 척결하지 못하고 일제시대때 반민족적 행태를 저질렀던 인사들을 철저히 정리하지 못함으로써 우리국민은 지금까지
최근에 있었던 끔찍한 살인사건은 우리사회에 큰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은 패륜이 현실로서 나타난 것이다. 불교에서는 말법시대를 예고하는 선언적 가르침이 있다. 흔히 오탁악세라고하는데, 그 가운데 영갈이 있다. 즉 중생들의 천의가 불의의 사고등으로 단축되며 살부, 살모등 패륜행위가 자행된다고 했다. 언필칭 우리는지금 이오탁악세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이 현실을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항구적이고 실천적인 타개방안을 제시해야할 줄 안다. 이번 사태는 세가지 면에서의 고찰이 가능하다. 첫째는 구조적 사회의 모순이며, 두번째는 개인적 도덕률의 마비, 세번째는 무분별한조기 해외유학에 대한 문제이다. 첫째 사회적 문제는 우리나라
한국불교는 중국 종파불교의 교판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붓다의 근본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까지 인도불교에느 선과 교의 구분이나,율만을 전문으로 하는 종파나 선정만을 전문으로 주장하는 종파나 혜학만을 전문으로 하는 종파가 따로 없었다. 중국불교는 번역된 특전 경전 중심의 수행 그룹이 형성되어 출발한 불교이므로 자연히 종파불교라는 특성 경전과 특저수행방법을 중심으로 한종파는 자기종파가 의거하고 있는 경전중심으로 전체 교리체계를 이해하게되었으나 이것이 교상 판석이다. 중국불교사상사를 살펴보면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남북조시대에는남조에 세가지, 북조에 일곱가지의 교판이 있었다 한다. 수의 중국통일과더불어 천태지자선사는 남삼북칠의 분파적 교판체계를 오시팔교로 종합해낸다. 그리고 천태선사는
성철큰스님의 다비식이 여법히 진행되었다. 해인사측에서는 진식사리를일반에 공개하고 있으며, 수많은 불자들이 큰스님계시던 가야산을 찾고있다는 소식이다. 이제 우리는 가슴이 메이는 슬픔보다는 의연히 미래를 향한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때이다. 시중에는 지금 큰스님이 법어집이 불티나게 팔리는 등 "불교신드롬" 현상마저 일고 있다 사실 시숙하신 그날 이후, 매스컴은 국례을 방불케 하는취재경쟁을 벌여 왔다. 그결과 큰스님의 행적을 통한 불교 관련 기사들이장안의 지가를 올려 왔다. 우리는 이것을 계기로 하여 불교중흥의 기틀을 다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우선 큰스님 이후의 한국불교가 당면한 가장 현실적인문제는 종정추대의 일이다. 추대방식을 놓고 9대종회에서 논란이 오갔고,최근에도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다. 동시에 불교인권위원회의 창립3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하다. 불교인권위에서는 이날 총무원강당에서기념식을 갖고 "현정부에서의 인권현실과 대책"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열었다. 이에 우리는 불교의 인권운동이 보다 활성화되고, 올바른중생교화의 방편이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격에대한 가능성의 확인"이라고 말할수 있다. 自性成佛 혹은 如來藏이라는표현도 바로 인간성의 확인아라고 본다. 따라서 초기불교이래 대승불교에이르기까지 철저한 인권옹호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이 카스트제도를 부정한 것이라던지, 神중심적 권위의식을 무너뜨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우리 한국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신라의 화랑은 집요한 골품제도에 대한 반성이었다. 즉 불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사리신안이 매우 성행하였다. 이는 성철 큰스님의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몰려드는 수십만의 인파에서도 잘 입증되었듯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기549년(진흥왕 10년) 양나라에서 불사리를 보내와 왕이 흥륜사에서 맞이했다는 것이 사리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뒤 안홍(安弘)이 중국진나라에 들어가 과 함께 불사리를 가져왔다는 기록이있고 636년(선덕왕 5년)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 태화지(太和地)에서문수보살을 친견 불정골(不頂骨)과 치아(齒牙)사리 등을 받아서 645년에귀국, 오대산 중대에 적멸궁을 건립, 봉안했다는 기록 이 전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사리신앙 열기는 부처님 입멸 당시만큼은 아니더라도세계적으로 가장 뜨겁다는게 불교 관계자
亞太경제협력(APEC)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달 29일국회에서 `넓은세계 밝은 미래'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연설에서"우리는 30년 적폐를 씻어내고 국제화 개방화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야하며 과거를 청산하는 개혁과 함께 미래를 향한 개혁, 국제화를 위한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아가야 한다"는 要旨를 밝혔다. 이같은 안목은 오늘 한국이 처하고 있는 실상을 정확히 판단하고또 세계의 흐름을 바로 인식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의 문제는우리만의 문제가 될 수 없으며 세계와 함께 미래를 조망하고 진취적기상을 가지고 생산적 기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비젼이 국민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물론 대통령이 구청이나 동회에서 해야할 말단 행정의 문제를
나의 세속제자인 활연(豁然)거사는 행원(行願)군이군인으로 복무할 때에 참선지도를 받았다. 그는 마삼근(痲三斤)화두를철저하게 참구하여 한 소식을 얻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나에게 선지거량(禪旨擧揚)을 하러 왔으므로 어느 한도에 이른 것을 짐작 할 수가있고, 니련거사나 사헌거사, 충당거사 또 비구니로는 유세등(柳世燈)과주수주(朱秀珠)같은 사람은 남에게 속지 아니할 만큼 공부가 있는 것을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진실하게 믿고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그는 도무지 말이 없는 사람이라 공부를 하는지 공부를 아니하는지 공부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성당거사가 사루어 말하되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있습니다. 소사(小士)가 월남(越南)한 후 20여년이나 스님을 모시고있으면서 여러 사
부처님의 제자들은 넷으로 분류된다. 비구와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이다. 우리들 불자는 부처님의 말씀(經典)을 배우고 실천 수행하는생활을 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방법도 몇 가지로 분류하여 보면 참선과염불 간경 기도등이 있다. 불자라면 은 외울수 있어야 한다고생각한다. 그러나 반야심경을 외울줄은 알아도 책을 보지 않고 반야심경한문을 줄줄 쓸수 있는 불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근기가 낮은일반 불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의 하나인(般若心經) 사경(寫經)을 권해본다. 사경은 부처님 말씀(열법)을 우리들 불자 스스로가 배워서 익히는것이며 한문을 한자 한자 쓰다보면 한문 공부도 된다. 날마다 쉬지않고반야심경을 두 세번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반야심경 책을 보지 않아도외어 쓸수 있게 된다. 반야심경을
갑술년 새해를 맞아 사람들은 저마다 한해의 계호기을 세우고 계획한 바목표를 이루기위해 비장한 결심을 한다. 그러기에 신년초는 어느때보다 활기찬 모습들이다. 세부적인 하루의 계획에서부터 주간, 월간, 상반기, 하반기까지 크게는각자의 인생 전반에 걸친 삶의 목표를 세우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한다. 삶의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삶의 행적을 더듬어 반성도 하고자신을 힘들게 하는 치명적인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정보화 사회가 되고 욕구는 다양해지고…… 어느 가치의 틀에 맞추어 살아야 잘살아 내는 것인지 무척 혼란스럽다. 이럴때 일수록 자신의 내부를 침착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자신과의끊임없는 일문일답을 통해 솔직한 결론을 얻어 내야
동국대학교 역경원(원장 월운스님)에서는 해인사 고려대장경의 한글화작업을 1997년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발표하였다. 아울러 역경의 전문가15명을 새로 위촉발표하였다. 우리는 이 야심적인 계획들이 원만히추진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바이다. 지난 1965년부터 시작된 역경사업은 여러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첫째 예산확보의 어려움이었다. 초창기에는 주로 정부지원에 의지하였던바,그 지원금이 끊기면서 난항을 거듭하였다. 다행히 종립동국대학교가 그명맥을 이어 왔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두번째로는 역경원의 부족현상이었다. 사실 한문만 능통하다고 해서 경전번역이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다. 인도고전어, 영어, 제2외국어에 능통해야 하며, 문장구성력과사상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역경위
석가모니 부처님은 생애를 통하여 보살의 길을 걸으시다가 마침내 가섭불의 가르침 밑에서 밝고 깨끗한 수행을 닦아 목숨을 마친 후에는 도솔천에태어나 일생보처(一生補處)의 보살이 된다. 일생보처의 보살이란 한 생만 지나면 부처님이 되는 보살로서 대부분 도솔천에 태어난다. 일생보처 보살이 도솔천에 태어나는 이유는, 사왕천·도리천·야마천과 같은 도솔천 아래의 하늘은 게으름과 욕정에 빠져 있고, 도솔천보다 위에 있는 화락천과 타화자재천은 고요한 선정(禪定)을 좋아하며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자비심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차 석가모니 부처님이 될 이 보살이 도솔천에 태어나자 욕계 6천(天)의천인들은 물론 색계의 현인들과 심지어 아수라궁의 아수라들까지도 기뻐하고 찬탄한다. 이 보살을
`맑고 향기롭게'(회주 법정 스님)는 5월 24일 영월 법흥사로 제9차 사찰환경생태기행를 떠난다. 법흥사의 아름다움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이번 생태기행은 잠서곤충연구소박해철 연구원과 경원대 조경학과 전승훈 교수의 안내로 법흥사 주변의 식물과 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특히 전나무 숲과 까막딱따구리도 볼 수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신청은 16일까지. 동참금 1만5천원. 02)741-4696
`일백 번 굽이쳐 흐르는 냇물이요, 천층으로 층계가 된 절벽'이라고 옛 사람이 노래했던가. 강원도땅 정선은 외지 사람들이 마음처럼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곳이다.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정선땅은 `어지러운 봉우리들이 높고 깎아지른 듯하여 겹으로 된 성과 같다'는 말처럼 태백산, 중봉산, 문래산, 가리왕산 등 1천 미터가 넘는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사북·고한 탄광촌으로도 유명한 이곳 정선땅 태백산 기슭에는 사부대중의 수행도량이자 적멸보궁인 정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정암사는 자장 스님이 만년에 머물면서 수행한 곳이자 열반처이다. 스님은 삼국불교 중 가장 늦게 출발한 신라불교를 사상적으로나 국가적·대중적으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한 분이다.
부득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해야할 것 같다. 최근 장여인 사건, 이와 연루된 전국방장관 최아무개씨, 율곡사업의하나인 상무대 공사수주와 관련 거액의 로비자금을 뿌리고 탈세를 했다는조아무개씨 등 불교계에서 내노라하는 신행단체의 대표직함을 가지고있거나 가졌던 사람들, 또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의 잇따른부도덕한 행태에 무작정 말문을 닫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불교를 믿는 불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팔만사천의 방대한 가르침을 모두 실천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부처님법을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일 것이다. 그것도 불교신자를 대표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국민의 지탄을받는 당사자가 되었으니 불자들은 무슨 낯으로 부처님과 국
향도적 역할 훌륭히 수행 〈법보신문〉은 지난 10년간년간 많은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교계언론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비판의 기능을 비교적 훌륭히 수행해온 점이나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향도적 역할도 담당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94년 종단개혁 당시 〈법보신문〉은 부패한 종권을 일소하고종단의 개혁 물줄기를 이끄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법보신문〉이 창간 10주년년을 맞이하여 불교계를 이끄는 대표언론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도법 스님/실상사 주지 진정한 호법정신 구현을 〈법보신문〉이 탄생했던 88년도는 한국사회의 격동기였습니다. 방송이 개국하고 불교의 현대화 작업이 추진되던 때였습니다. 다양한 매체가 난무하는 현 싯점에서
상계동 오공사 주인 박경석(45.통일원 서기관/불명-서봉)-윤혜숙(40/불명-선덕화)씨 부부. 이 부부가 보라(고3/불명.연불음) 은국(중2/불명.진호) 두 자녀와 사는 주공아파트 123동 504호를 모두 `오공사'라고부른다. 그것은 집안에 들어서면 불교미술품과 한지로된 실내장식 그리고스님과 불자들의 출입이 워낙 잦은 열린공간이기 때문이다. 남편 박씨는 공군사관학교 출신 공무원으로 말수가 적고 아내 윤씨는외향적이며 활달해 이집 `오공사'는 마치 선승과 교학승 내외가 살고 있는듯하다. "아마 남편을 만나지않았으면 욕심과 불만으로 꽉찬 무명속에서 헤어나지못했을 거예요. 결혼후 첫 5년은 저의 불만족으로 남편탓만하면서 불화가잦았으니까요. 10년전 대판싸우고 남편이 읽어보라고 던져준 천수경을무
잠깐의 휴식도 불안하기만 한 요즘. 김대성씨는 모처럼의 휴지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다. 1968년 2월 3일부터 '98년 2월 3일까지, 우연치고는 별나다 싶게 기자생활 30년 기념일에 맞춰 펜을 놓았다. 심난하기도하고 기울어가는 세월이 공연히 스산키도 하련만 그는 부리부리한 눈매를둥글거리면서 말한다. “무슨소리예요 ? 전 여전히 기자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겁니다!” 직장의 일은 놓았으되 그의 평생 업은 여전히 기자라는 얘기다.차일피일 미루어두었던 세상사도 이제야 기자답게 돌아보리라는 설레임마저그는 챙겨든다. 세상에 대한 관심 - 그것이 그가 한평생 배우고 지켜온 기자로서의 근성이기 때문이다. 직장은 놓았으되 직업은 여전하다는 기자로서의 근성과 긍지 - 그
제6장 아, 봉암사(5) 그런데 위와 같은 비구니 스님의 옷 벗는 얘기는 전혀 다르게 전해지고있기도 하다. 성철이 비구니 스님에게 가사 장삼을 벗어라는 식으로 시험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화엄경》을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하여 지견(知見)이 좀 생긴 그 비구니 스님이 자신의 견처(見處)를 점검하기 위해스스로 가사 장삼을 벗고 법당 안의 비구 스님들 주위를 한바퀴 돈 다음,성철의 한마디를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훗날 몇몇 사람의 얘기에 의하면 그 비구니 스님이 교사 출신이었던 묘찬(妙璨)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시 승려 사회에서는 교사 출신의 지식인이 드문 편이었으므로 묘찬은 바로 성철의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고도 한다. 성철의 말귀를 알아듣는 묘찬 역시 하루
우리나라의 몇 개 지방도시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시와 시의회를 대표해서 일본의 신흥불교단체인 `창가학회 (SGI)인터내셔널' 이케다(池田大作) 회장에게 현창증서(顯彰證書)와 현창패(顯彰牌), 그리고 감사패 등을 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 내용을 보면 현창증서는 `인권존중과 인류평화를 위한 이케다 다이사쿠 SGI회장의 위대한 업적에 경의를 표하며, 특히 한일 우호를 위한 눈부신활동은 21세기의 양국의 희망입니다. 이에 현창 증서를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이밖에 다른 현창패와 감사패에서 보는바와같이 이케다 회장의 사회^문화에 관한 활동과, 특별히 `한일 우호에 대한 탁월한 행동'을 강조해서 칭찬하고 있다. 그러나 6^25 전쟁의 북침설(北侵說)을 주장한 적이 있는 이케다 회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