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 불린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석탑이 많다.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된 석탑만 전국에 200여 개를 헤아리니 아마도 단일 품목의 건축물로 이토록 풍부한 문화유산도 드물 것이다. 따지고 들면 우리의 석탑 사랑은 조금 유별난 면이 있다. 인도와 중국에서 벽돌을 구워 제작했던 전탑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모전석탑으로 변화한 점이 대표적 사례다. 흙을 구워 벽돌을 찍어내는 것이 훨씬 쉬울 텐데도 굳이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는 모전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석탑의 나라다운 발상이다. 『한국의 석탑』은 마치 모전석탑을 쌓듯 노력과 인내가 유독 돋보이는 책이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탑의 거의 전부를 망라해 책에 실었을 뿐 아니라, 석탑 발생의 배경, 제작 방법, 탑에
각종 매체의 발달로 설법을 접할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불자들은 점점 더 수준 높은 설법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작 포교 현장에서 제대로 된 설법을 위해 참고할 만한 지침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설법의 기술』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설법학을 하나의 이론체계로 정리한 설법교과서다. 저자는 이론에 입각해 설법안을 작성하고, 연술 방법을 익힌다면 자질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도 부루나 존자처럼 설법제일이 될 수 있는 기술을 일러준다. 설법준비의 단계부터 자료 수집법, 설법안 작성의 실제와 기법, 전달기법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쳐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특히 예문을 이용한 전달기법, 연술의 자세와 제스처, 음성, 설법을 평가하는 법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노하우가 체계적으로 정리 돼 있어 설
관세음보살은 변신술의 명수다. 스님이나 재가자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스님이나 재가자의 몸을 나타낸다. 부자, 공무원, 여인, 건달 등 몸이 필요할 때는 또 그렇게 몸을 변화시킨다. 듣는 이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지는 까닭이다.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은 기존의 경전해설서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관세음보살보문품」 해설서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으로 경전과 관련한 일을 하며, 꾸준히 경전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삶과 접목해 온 저자의 이력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주장자를 치켜들고 법문하는 큰스님의 말씀을 듣듯 허리 꼿꼿이 펴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중압감을 주지 않는다. 또 경전의 권위를 들이대며 ‘무조건 믿어라’라고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찻집에서 다리 꼬고 팔을 괴고 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 넉
조선시대 고승 서산은 불교에 입문한 후학들이 불교의 요체를 보다 쉽게 익히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수많은 경전과 논서, 어록 등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려 만든 『선가귀감』을 발간하면서 이렇게 발원했다.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선가귀감』은 불교의 입문서이자 간화선의 지침서로 높이 평가돼 왔으며, 서산 스님 이후 오늘날까지 그 시대에 맞는 언어로 끊임없이 번역돼 왔다. 조계종 교재편찬위원을 역임한 원순 스님은 최근 『선가귀감』을 현대에 맞는 언어로 풀어 쓴 『선 수행의 길잡이』를 발간했다. 스님은 “예로부터 선과 교를 아울러 성불의 길로 나아가게 했던 큰 가르침이 곧 『선가귀감』이었다”면서 “올바른 스승을 찾기 어려운 요즘, 『선가귀감』은 수행 정도를 점검받을 수 있는 이 시대의 선지식이 될 것”이라고 강
송석각 作. ‘이조조심도’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눈을 돌려 남산을 바라보네/ 산 기운은 저녁에 아름답고/ 날던 새들도 무리지어 돌아오누나/ 이 가운데 참뜻이 있나니/ 그 뜻을 밝히려다 말을 잊었도다. - 도연명「음주」 시인은 다소 평이한 어투로 국화를 따다가 문득 시선을 빼앗긴 저녁 무렵의 풍경을 담담하게 전한다. 한 단어 한 단어 읽어나가면 한가롭기 그지없는 시인의 모습이 따스하게 그려진다. 마지막 두 구절은 뭔가 알듯 말듯 아리송하지만, 멋진 경치를 맞닥뜨린 순간 묘한 느낌에 말문이 막혔구나 정도로 추측 해볼 뿐이다. 이은윤 금강불교신문 사장의 선시해설집,『선시-깨달음을 읽는다』는 바로 이 아리송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 설명해준다. 시의 함
경기도 파주 보광사 대웅보전 외벽벽화 ‘연 꽃 위의 수행자’. 사찰은 수행의 공간만은 아니다. 수행자들에겐 치열한 구도의 도량이지만 불자들에겐 신행의 공간이고, 일반 사람들에겐 숨 돌릴 틈 없는 생활의 쳇바퀴를 잠시 멈추게 하는 삶의 쉼표이다. 각박한 세상과 메말라가는 인심, 감당하기 힘든 빠른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고즈넉한 사찰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때문에 사찰은 고전적인 수행의 공간을 넘어 대중을 향한 열린 마당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다소 긴 제목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는 이런 사찰의 변화를 정확히 짚어낸 책이다. 한적한 산사를 찾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얻었던 초보 순례객의 틀을 벗게 되면 이제는
시중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말과 글들 속에서 양서 한 권을 만난다는 것은 눈먼 거북이 나무구멍에 머리 맞추는 것만큼이나 기적 같은 일입니다. 하물며 (니체의 말인가요?) 피로 쓴 글을 만날 때의 전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어느 날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하룻밤 사이에 모진 고문으로 몸이 결단나버린 체코의 공산주의자이자 편집인인 율리우스 푸치크(1903-1943)에게 어느 선량한 간수가 슬쩍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합니다. ‘그야말로 내가 가장 뜨겁게 바라던 바가 아니었던가?’ 간수는 즉시 종이와 연필을 가져왔고 율리우스는 글을 써가기 시작합니다. 그의 글은 어이없게 체포당한 바로 그 날 저녁의 기억들로 시작하는데 신분 확인을 위해 끌려온 아내 앞에서 입술의 핏자국을 감추려 애쓰는 남편의 심
『화엄경』은 사상의 바다이자 불교의 꽃이라 일컬어져왔다. 그만큼 『화엄경』에는 온갖 불교사상을 아우르는 심오함과 함께 문학적으로도 탁월한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대승불교 국가에서 화엄사상을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고 우리나라의 자장, 의상, 원효, 균여, 의천, 지눌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 또한 화엄의 대가였다. 그러면 『화엄경』이란 어떻게 이뤄졌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화엄경』은 중앙아시아와 서역지역을 중심으로 유포되어 읽혀지던 것을 모아서 편찬해 놓은 경전으로 사상적으로도 대단히 복잡하고 광대하다. 『화엄경』에 40권본, 80권본, 장역화엄 등 여러 종류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행복한 화엄경』은 화엄의 방대함을 한껏 고려한 바탕 위에서 쓴 책이다. 특히 『
미국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동양학과 박성배 교수가 50년에 걸쳐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오랫동안 펼쳐온 불교를 한권에 담아냈다. 저자 박성배 교수는 이력부터 독특하다. 유학자인 집안 어른들의 영향으로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했지만 대학에서는 불교학을 전공했다. 또 동국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해인사로 출가해 전 조계종정 성철 스님의 상좌로 3년 동안 수행하기도 했다. 이후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종교학 석사, 불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76년부터는 스토니부룩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러한 다양한 이력을 지닌 저자는 현재 미국 내에서 한국불교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하는 저명한 학자로 손꼽힌다.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두 나라 사이에서 느껴야 했던 인간적 고뇌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글은 짧고 간결
함께 암송하고, 나뭇잎에 적고, 목판에 경전을 새겼던 고난의 세월.붓다의 가르침이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낱낱이 전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역대 조사와 옛 선인들의 이런 인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고통의 시절은 끝이 났다. 문자의 홍수라 할 만큼 많은 불교서적들이 쏟아지고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세상에서 불법의 대의를 논하는 세상이 됐다. 목판에 경을 새기고 코피를 쏟으며 경전을 필사하지 않아도 지폐 한 장이면 서점에서 쉽게도 붓다의 가르침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경전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방황하는 불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고 붓다의 참된 가르침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끊이질 않는다. 더욱 더 많은 이들이 선지식을 찾아 산사를 헤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