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지 보름을 지나고 있다. 전쟁의 동기부터 그리 객관적이지 못하더니 평화를 갈구하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전쟁으로 인해 저마다 분열하고 긴장의 국면을 맞고 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명분도 약하고 결국엔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통치자의 어리석음은 선량한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 연일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전쟁의 정보들은 이미 우리도 전쟁의 한 복판에 서있음을 부정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유도 모르는 포탄의 파편에 신음하는 어린이의 사진들이 공개되면서 더욱 전쟁이 빨리 끝나야한다는 당위성에 공감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어린이’를 가공할 파괴력의 원천인 포탄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범죄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일수록 부처님의
현대에 들어 불교학 연구의 한 경향은 기존 전문가 집단에 한하여 이루어진 불교학 연구독점의 탈피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문적으로 불교 공부를 하려면 불교학 관련 대학이나 강원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배울 수 있는 곳도, 방법도, 학습자료도 다양해 졌다. 인터넷을 통해 공부에 필요한 중요한 원전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중요 개념에 대한 세계 각지의 전문학자나 수행자들의 설명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공부환경의 덕택인지 국내외적으로 다른 전공을 하면서 불교를 공부하는 새로운 전문가 집단, 즉 비전공출신 불교학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탈독점화된 불교학 연구의 한 특징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전공출신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꽃피기 위해서는 교계 스스로 힘없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최근 불교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종교로 꼽히는 두 종교의 사회복지법인들의 부끄러운 문제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적이 있다. 하나는 세계적인 청년 조직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빈민 구호단체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공히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정부의 보조금과 일반인들의 후원금을 함부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다른 종교에서는 많은 보조금을 정부로부터 받아서 사용하는데 불교계가 정부로부터 받아오는 사회 복지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불교도들 역시 똑같이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계종을 비롯한 모든 불교 종단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물의 하나인 바퀴를 어떤 바빌로니아의 귀족이 독점 생산하였다고 가정해보자. 그 귀족은 한 때 그 바퀴를 단 마차 위에서 영달을 누렸을 것이나, 인류의 대부분은 아직도 그 바퀴를 혐오하며 수레나 끌고 있을 것이다. 요즘 인터넷 서핑을 할수록 공허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터넷의 발견이 바퀴의 발명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바퀴 시대에는 없었던 정보 소유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불과 2, 3년 전만해도 무료로 운영되던 컨텐츠들은 유료화 되기 시작했고 유익했던 개인 연구자들의 홈페이지는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마음대로 논문을 다운받았던 외국의 저널들은 불필요한 접속수를 막고 정보 매매율을 놓이기 위해 회원제나 유료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쓸만한 정보들이 방화벽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4苦)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천리(天理)이고 대자연의 섭리요, 불변의 가치이다. 이 중에서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는 것의 상대적 개념이고, 늙음은 젊음의 대칭개념이며, 신병의 고통은 건강의 쇠약으로 형성되는 증후이다. 사회학의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만약 인간이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면 사회는 재생산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정체와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흐름은 오히려 사회를 진화시킨다는 결과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노인은 '사회문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늘날의 노인들은 이 나라의 건국과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역사의 주역들이다. 그러면 현재의 노인에 대한 국가의 복지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 나라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를 기념해서 세계 최대 불교 학술회의가 내년에 서울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 학술회의는 일본과의 공동 개최로, 이틀 동안 10개 분과 250여명의 발표자가 참여하는 유례없는 초대형 학술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학술회의를 통해서 ‘한국불교의 세계화의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한국 주최측의 의도는 기대와 동시에 기본적인 몇 가지 점을 생각하게 한다. 학술회의는 말 그대로 학술적인 주제에 대해 토의하기 위한 자리이다. 그래서 학술회의는 보통 특정주제에 대한 발표와 이 주제에 대한 공동탐구의 취지를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탐구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모든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역사성 내지는 연속성을 전제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번 불교 학술회
‘군 대체복무제 추진’에 대한 종교계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관련세미나 장소로 종로성당을 빌려주는 등 내심 찬성에 가까운 제스처를 내보였고, 불교계에는 동국대 조국 교수 등 관련 학자들이 군 입대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할 스님들의 어려움을 처음으로 거론함으로써 무작정 반대할 일만은 아니라는 시각의 단초가 제공된 상태입니다. 다만 개신교계는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의의 성명을 통해 ‘기독교계에서 이단시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위한 제도이므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군 대체복무제에 대한 본지의 심층보도 이후 불교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남의 일로만 여기던 이 문제가 불교계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또 그에 앞서 인권 문제를 가장
“아아, 돈, 돈! 이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슬픔들이 이 세상을 젖게 하는가!”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외친 탄식이다. 비단 톨스토이만은 아니다. 돈에 대한 경고는 동서고금에 두루 퍼져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우리 속담은 돈의 부정적 힘을 여실히 깨우쳐 준다. 요컨대 돈은 삶을 병들게 한다는 교훈이다.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돈은 삶을 병들게 한다” 최근 미국의 한 의학연구소에 따르면 1달러 짜리 지폐 94%에서 박테리아 등 세균이 우글우글 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책임자는 “1달러 지폐는 널리 사용되고 사용빈도도 높다”며 돈을 통해 병이 번질 위험을 우려했다. 현재 미국에서 돌고 있는 1달러 지폐는 수십
“승려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심각한 종단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승려 개개인이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기보다는 노후에 대한 불안함으로 인하여 사설사암을 지어 개인 소유화하는 경향이 확대되어 종단의 삼보정재가 수행과 교육, 포교, 사회사업 등 종단목적사업으로 회향되지 않고 개인 노후대책 자금으로 유출되고 있으며, 매년 증가하고 있다.”지난 5월 29일 조계종 중앙종회 사회분과위원회 회의에 제출된 ‘승려노후복지’ 문제에 대한 연구보고서 내용 일부입니다. 승려노후복지 문제가 종단의 안정과 발전을 해치는 중대한 해악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등 보고서 내용은 우려 일색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생계유지, 상좌 교육비용 등 경제적 비용과 질병에 대한 치료 및 간병, 그리고 거주할 곳 등에 대한 부담과 걱정 때문에
5월을 맞아 불교계는 전국 규모의 청소년 행사를 마련해 주말에도 쉬지 않고 분주한 한 달을 보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교계의 청소년 행사가 극히 드물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흡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 포교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 역시 전국의 청소년 불자들이 모여 펼치는 전통문화 경연대회나 부처님을 찬탄하는 각종 백일장-사생대회, 세미나까지 거의 매주 열리는 행사에 직접 참석해 청소년 불자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청소년 행사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불교 청소년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 불자들의 소속 학교를 보면 많은 종립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3개 학교가 도맡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7일 각기 다른 장
석조 문화재는 돌로 이루어진 문화재를 말하며, 기록매체로서의 석조문화재, 장례문화유적, 고대 도시유적, 신앙 관련 유적, 암각화 등 그 범위가 실로 다양하다.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동굴이나 화산 등도 자연문화재로서의 석조문화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하천가나 산야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듯이 보이는 돌들도 알고 보면 지구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돌 내부에는 나이를 알려주는 방사성동 위원소로 이루어진 시계를 가지고 있어 암석이 탄생한 후 흐른 시간을 말해주기도 하며 당시 지구상에 살던 생명체들의 흔적을 화석으로 간직하기도 하여 지구의 역사를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서기 414년에 건립된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비 또한 1600년이 지난 현재까지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우리들에게 전하고
어느 국회의원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출동한 경찰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아직 살아있으니 구급차를 빨리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국회의원 말을 어떻게 믿어?”라고 했단다. 이는 국민들이 정치판을 어떻게 보는지를 풍자한다. 왜 정치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해야하는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정치’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치기 소년이 된 국회의원 자신을 버리고 참으로 국민을 위하여 소신을 펼친다면, 언제나 떳떳할 터이니 구태여 거짓말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무아를 자각하고 실천하는 것에 해당하며, ‘국민을 위한다
윤달에는 많은 사찰에서 예수재(預修齋)를 지낸다. 윤달은 평년보다 역일수(曆日數) 또는 역월수(曆月數)가 많다. 복덕 쌓기 위한 방편 중 하나 이를테면 태양력에서는 2월이 평년보다 하루 많고, 태음력에서는 평년보다 한 달을 더하여 윤달을 만든다. 태양력에서는 1년을 365일로 정했으나, 지구의 회귀년(回歸年)은 정확하게 365일 5시간 48분 46초이다. 그런데 나머지 시간인 5시간 48분 46초는 대략 4년이면 1일이 되기 때문에 4년째 해의 2월을 29일로 하여 1년을 366일로 정하여 윤년이라 하며, 그 해의 2월을 윤달이라고 한다. 한편 태음력에서는 1년을 약 360일로 정했으므로 5년에 두 번의 비율로 1년을 13개월로 하고, 그 해는 어떤 달을 두 번 반복하고
최근 불교계에서 폭력사태가 잇따라 발생해 말썽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동국대 불교학부의 교수로 있는 비구 스님이 역시 교수로 있는 비구니 스님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한 것이고 (본인은 그러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불교방송의 한 간부사원이 신입사원을 교육한다며 술에 취해 폭언과 폭행을 하고 심지어 수습 여사원의 배를 발로 걷어차는 만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몇 년 주기로 일어나는 종단 분규사태의 후유증으로 인해 이처럼 불교계에 폭력사태가 만연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수치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폭력을 행사했거나 폭력 의혹을 받는 당사자들이 모두 불교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중 있는 위치에 있는, 타의 귀감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라
오랫동안 잠잠했는가 싶더니 또 다시 폭력과 폭행이라는 단어가 불교집안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 종립 동국대와 불교방송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것이다. 불미스런 두 건의 사건은 거의 동시에 교계에 전해져 불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혹은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사건을 앞에 두고 담당기자는 일단 사실 확인에 나섰다. 그러나 그 과정은 예상했던 대로 퍽이나 고달픈 여정이었다. 당사자는 반성이나 참회보다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피하거나, 행위 자체를 부인하는데 급급해 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건을 조용히 덮어두어 당사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교육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좀 심한 행위를 했기로 그것이 그리 큰
우리나라에는 국교(國敎)가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종교를 선택해서 믿을 권리와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서양 종교가 마치 대한민국의 국교라도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광신자들이 활보하고 있다. 요즈음도 고속 버스 터미널 근처에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피킷을 들고 있는 광신들이 설치고 있다. 요즘도 지하철 안에 들어와 승객들의 틈을 비집고 다니며 ‘××를 믿으시오! 지옥가기 싫으면 ××를 믿으시오!’를 외치는 광신자들이 있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는 한 마디로 해서 ‘××를 믿으면 천당에 가지만 ××를 믿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종교를 선교하는 선을 넘어서서 선량한 시민을
보육교사에 대해 들어보셨을 줄 압니다. 보육교사란 유아 교육을 담당하는 어린이집 등에서 근무하는 교사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보건복지부의 인가를 받은 보육교사교육원에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후 교사자격을 획득한 전문인력들입니다. 다 알고 계시리라 믿지만, 자녀교육에 있어 유아 시절의 교육이 갖는 중요성은 따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 교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절대적인 것이지요. 자녀를 어린이집 등의 시설에 보낸 경험이 있거나 현재 보내고 있는 분들은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특정종교에서 설립한 시설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특정 종교의 색깔을 드러내는 곳이 많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자녀가 밥상 앞에서 감사의 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는 절집에서 새
가톨릭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이하 교황)의 ‘다른 종교와의 화해’를 위한 순례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교황의 순례는 ‘모든 종교의 반목과 갈등 해소’라는 신념 아래 ‘타종교 끌어안기’의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황은 시리아 등을 방문해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의 화해를 호소했고, 가톨릭이 개신교를 탄압한 것을 사과했습니다. 최초로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교황은 지난 5일, 11세기 가톨릭과 정교가 분열된 뒤 처음으로 정교국인 그리스를 방문해 13세기 십자군이 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하고 약탈했던 사실을 공식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8년 교황에 선출된 후부터 희망해왔던 러시아 방문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오랜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정교와 화해하기 위한 교황의
기자는 지난 4월 4일자 신문 9면에 4월 10일부터 운행되는 도시철도 봉축열차를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기자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넘치도록 많은 기사들 중에서 유독 봉축열차를 주목한 것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봉축열차-달리는 불교미술관의 역사적 사회적 의의를 주목한 까닭이다. 종교색 짙은 구호 대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다소 서정적인 제목이 붙은 이 봉축열차는 어린아이서부터 70대 노년층까지 타본 이들은 모두 좋아라하는 도시의 명물이 되었다. 굳이 불교에 애정이 없어도, 한국불교의 ‘佛’자도 알 바 없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온 몸으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이 봉축열차를 그러나 무척 싫어하는 이들이 있다. 늘, 한국인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전통문화
하루종일 부자집 논밭을 가느라 힘들고 지친 소는 같은 집에 사는 고양이가 부러웠다. 고양이는 빈들빈들 놀면서도 편하게 잘 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외양간에서 쳐다보니 맞은 편 대청마루에 주인이 앉아 있는데 고양이가 주인 무릎 위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이었다. 소의 어리석음을 닮은 이 “옳다구나, 바로 저 도리구나!” 라고 생각한 소는 자기도 고양이처럼 그렇게 주인 무릎에서 재롱을 떨어보려고 주인을 향해 후다닥 달려들었다. 주인이 깜짝 놀라 몽둥이를 들었다. “이 소가 미쳤나보다” 라면서.’ 제 분수를 알지 못한 소의 어리석음을 보인 우화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고생하지 않고 잘 사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주위를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