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종 교육원 종학연구실은 4월 15일까지 제 4회 ‘진각 논문대상’을 공모하고 있다. 진각논문대상은 불교와 밀교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진각종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사업으로 올해는 특히 종조 회당 손규상 대종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 사상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논문은 불교일반 3편과 밀교 3편, 진각교학 3편으로, 당선작에 대해서는 200만원씩의 상금이 수여된다. 또 진각종 교육원은 불교 및 밀교 관련 대학원생들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연구 소모임을 모집한다. 접수 마감일은 3월 30일. 02)913-0133
불교포럼(공동대표 박승원 김연규)은 지난 2월 27일 동산불교대 강당에서 제21차 열린토론 마당을 개최했다. 서울대 규장각 박해당 특별연구원의 사회로 중앙승가대 유승무 교수가 “21세기 포교 변해야 산다 “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또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정진우 목사와 조계종 포교원 김관태 연구과장이 각각 토론자로 나서 새로운 환경의 포교대처방안에 대해 토의했다. 윤우채 기자
남한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주민 600명 중 불자 수가 12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통일부가 이탈 주민 교육 기관인 ‘하나원’을 거쳐간 탈북자 600명을 대상으로 사회 적응 실태에 관해 조사해 발표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불자 비율은 2.3%인 것으로 집계됐으며 ‘개신교인’이라고 답한 이탈주민은 무려 330명(61.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이라는 이탈주민 수는 20명(3.8%)으로 나타나 불교보다 약간 높은 수치를 보였다.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이 3월 7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운산 스님은 지난 해 11월 21일 제83회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후 종단 분규를 종식함은 물론 종헌종법 개정을 통한 제도개혁을 추진해 종단 안정의 토대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운산 스님은 선출 직후부터 지금까지 전국 주요 사찰과 종무원을 직접 방문, 1000여명의 스님을 만나 종단 발전을 위한 여론을 수렴했다. 스님의 이러한 행보는 지난 분규의 아픔을 씻겠다는 의지를 넘어 종단 미래 청사진 마련을 위한 것이기에 무게가 실린다. “종단은 이제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 사부대중이 원하는 종단은 어떤 것인지, 총무원에 바라는 대중의 기대는 무엇인지를 직접 듣고자 했습니다. 태고종은 태고종 사부대중이 이끌고 나간다는
최근 한국불교의 기복문제와 관련해 ‘기복이 불교인가 아닌가’하는 논쟁이 일면서 기도를 통해 복을 기원하고 불교적 삶을 희구하던 많은 불자들이 자신의 신행을 놓고 불교적인가 아닌가를 의심하거나, 자신이 찾는 사찰의 스님은 왜 기도를 강조하는지 혼돈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학계를 중심으로 불교계 인사들에게 기복불교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교계 인사들이 말하는 주요 요지를 정리했다.(편집자) "기복은 삶-믿음 문제 상처뿐인 논쟁 무의미” 종범 스님 (중앙승가대 총장) 기복이라는 것이 불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논쟁으로 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해인사는 6월 17일 오는 2005년부터 10월 준공 예정인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설계 도면으로 건축가 조성룡씨(서울건축학교 교장/조성룡도시건축 대표)와 프란시스코 사닌 교수(미국 시라큐스대 건축학과)가 공동 설계한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치열한 공개경쟁을 통해 채택된 이 작품은 전통적 사찰 구조와 기법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21세기 현대적 사찰의 창조성이 가미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해인사는 문화재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 경남도청, 합천군청 등 관계기관의 심의,허가를 받아 오는 10월께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해인사 신행도량은 2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오는 2005년 10월 완공할 예정이며구 해인초등학교, 해인사 박물관, 상가건물 일대를 포함한 2000여 평의 부지에 법당,
조계종 포교원장 도영 스님 최근 불자들을 혼돈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는 기복불교 논쟁과 관련, 종단 차원의 입장정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 포교정책의 행정수반인 도영 스님은 “기복불교를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며 “일종의 방편을 전체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논쟁의 극단적 흐름을 지적했다. 또 “기복불교에 치중한 사찰이 줄어들고 있으며 각 사찰이 법회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복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들어 절을 찾는 불자들이 단순하게 불공드리고 기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법회를 보러간다고 할만큼 의식이 변하고 있다는 게 도영 스님의 설명이다. 따라서 논쟁을 통해
기복(祈福)은 복을 얻기를 기원하고 빈다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다. 그렇다면 복(福)은 무엇이고 빈다(祈)는 것은 무엇일까. 또 복을 빈다는 것은 불교적인 것인가 그렇지 아니한가. 먼저 복은 불교에서 뿐 아니라 유교, 도교, 민간신앙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 만큼 그 기본적인 사상에 따라 복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복을 흔히 행복이나 길운(吉運), 부귀영화·장수·안녕 등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불교에서는 복(덕)을 공덕(功德)과 선행 등 가치 있는 행위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부처님을 ‘자비와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 분’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일반적으로 기복을 타력적인 행위, 복을 짓는 작복(作福)과 복을 구하는 구복(求福)은 자력적인 행위로 얘기된다.
한국에서 기복신앙을 놓고 불교다 아니다라는 논쟁이 일고 있는 지금 유럽불교는 어떠한가. 유럽불교엔 기복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가, 아니면 일정정도의 기복이 존재하는가. 일단 한국 스님들이 상주하는 대부분의 유럽 사찰은 기복을 배제한 가운데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독일에서 10년째 포교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베를린 보문사 주지 병오 스님은 “초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현재는 기복에서 완전히 탈피한 상황”이라며 “법회를 중심으로 사찰을 운영하고 보시의 생활화가 정착됐다”고 현황을 전했다. 또 “인근 대부분의 한국사찰에서도 기복신앙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기복불교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 기
“360개 뼈마디와 8만4000여 개 털구멍으로, 온 몸으로 의단을 일으켜 밤낮으로 ‘무(無)’자를 참구하라. 그러다 갑자기 뭉쳐졌던 의심 덩어리가 대 폭발을 일으키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관우 장군의 대도를 빼앗아 손에 넣은 것과 같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 것과 같고, 생사의 기로에 섰을지라도 자유자재를 터득하여,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든지 마음대로 행하여도 해탈무애(解脫無애)한 참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남송 무문 혜개 선사 65년 종달 노사에 의해 시작 수행도 이제는 하나의 상품처럼 고르는 시대가 됐다. 스승이 제자에게 비밀스럽게 전해 주던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전통은 고리타분한 옛 유물이 돼 버렸다.
지난 90년대 이후 불교학자 층이 두터워지고 불교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불교관련 논문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알리는 작업은 극히 미비했으며, 불교 관련 학자들마저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가운데 고려대장경연구소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한국불교학 네트워크’ 구축 사업은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논문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교학이 일부 몇몇 식자층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대중과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그동안 불교 관련 논문들 중 상당수가 연구사에 대한 정확한 검토 없이 이루어져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거나, 알게 모르게 표절시비에 곧잘 오르내렸던 것이
우리는 끝없이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 세상이 이런저런 모습인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세상의 모습을 그렇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 우리가 자신에게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을 멈춘다면, 세상은 더 이상 이런저런 모습이 아니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서서히 세상과 연결된 자신의 끈을 풀기 시작해야 한다. 돈후앙- 인디언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게 되면 그 세계가 이름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의 이름은 사바세계이다.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곳은 극락세계, 앞으로 오게 될 미륵 부처님의 세계는 용화세계이다. 이렇듯 부처님마다 당신의 가르침과 뜻이 전해지는 세상이 각각의 이름을 갖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름은 사바세계이다. 뜻
태고종 분규가 그치기는커녕 점점 거세지고 있어 불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제 2종단, 한국불교 정통종단이라는 태고종이 사부대중에게 보이는 것이 결국 분규라는 데 실망감을 감추지 않을 수 없다. 태고종은 그 동안 천태, 진각종이 나름대로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다 할 변모를 보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태고종의 현실에 대해서는 이미 태고종 내부에서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승려대회를 앞 둔 시점에서도 종단 중진급 스님들은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승려대회를 기점으로 1종단 2총무원 체제로의 태고종을 만들겠다는 뜻을 양측 모두 가진 게
사주팔자라 하여 사람의 운명을 감정하는 방법이 있다. 태어난 생년, 월, 일, 시간을 중심으로 서로의 상관관계를 오운육기(五運六氣)를 이용하여 해석하는 방법이다. 흔히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나쁜 일은 하지말고 위험한 경우는 피하며, 올바른 일을 하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니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듯 하나, 자신의 운명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거나 약자를 대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의학 서적 가운데 하나로 『황제내경(黃帝內經)』이라는 책이 있다. 2000여년 전부터 서술되기 시작하였는데, 방대하고 심오한 한의학의 원리를 설명한 책으로 전설상의 인물인 황제의 이름을 빌려 신하들과 문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역대 한의학의 모든
좋은벗들이 지난 7월 13일 유엔 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UNHCR)와 협의를 마치고 한국으로 유입되는 세계 각국 난민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사형제 폐지를 비롯한 중국 정부의 티베트 인권 탄압 문제, 탈북 난민 지원 활동 등 국내외 인권 운동에 이렇다할 활동력을 보이지 못했던 불교계에는 좋은벗들의 이번 성과는 분명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탈북 난민을 위한 구호 활동은 물론 대북 지원 활동에도 항상 개신교나 가톨릭에 비해 뒤 처졌던 불교계에 유엔 산하의 국제적인 인권 기구인 유엔 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의 사업을 비공식적으로나마 지원할 수 있는 실행단체가 탄생한 일은 불교계의 인권과 국제 구호 운동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만하다. 우리는
내용과 원을 정리하고 순서에 맞게 정성 담아 초하루 혹은 재일(齋日)인데도 법당에 나가지 못할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땐 각자 가정에서 간단한 불공을 하는 것이 좋다. 집전하는 스님이 없으니 본인이 직접 집전을 해야 하고 불공순서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막연히 벽을 보고하자니 그렇다고 해서 불상을 모시자니 왠지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오래 전부터 부처님 사진을 모시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정결한 탁자 위나 벽에 부처님 사진을 걸어 놓고 가정법회를 보고, 불공과 기도를 생활화함으로써 불심을 끊임없이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에는 인연 있는 절을 찾아 먼 곳에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집에서 가까운
숲 바람에 ‘마음의 눈’ 떠 깨달음의 길 찾아주는 곳 오래된 건축물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음속에 갖가지 감동이 오고간다. 마치 오래된 나무를 대한 듯 신령스럽기도 하고 잘 늙은 노인을 마주하고 있는 듯 외경스럽기도 하다. 어떨 때는 잃어버린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지고지순한 순애보 같은가 하면, 또 어떨 때는 떠나야할 때 떠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때 돌아가지 못한 미련퉁이 같기도 해서 안타깝다. 그러다가도 낡은 기와며 허물어져 가는 바람벽, 아랫도리부터 삭아 들어가는 기둥의 불안한 직립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차라리 허물어졌으면 더 속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종래는 그 버티고 있는 꼴이 잔인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에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개목사(開
언젠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기독교채널에서 한 목사가 강론하는 것을 보게됐다. 그 목사는 기독교계에서 이미 말 잘하기로 소문나 있어서 그 강연테이프가 불티나듯 팔린다는 인물인데다가 언뜻 보니 그 시간의 그의 강연도 흔히 우리가 아는 교회 목사의 설교가 아니고 매우 자연스런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잠시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지도자 중 불교인 드물어’ 지적 마침 그 목사는 우리 불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중이어서 자연 관심있게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그가 말하는 내용이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데다가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인용내용을 구성하고 있어서 그 말을 듣는 기독교인은 물론 다른 종교인의 오해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한국의 불교학 연구가 세계 수준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다. 최근에는 불교학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대안과 현대 불교학이 타파해야 할 과제들이 구체적으로 제시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불교학계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불교학 연구가 한국불교 발전의 첩경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直指人心 見性成佛’만을 신봉 한국의 불교학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요인은 무엇일까? ‘깨달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선불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물론 재가 불자들도 입만 열면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을 외치고 있다. 이러한 선불교의 영향으로 돈오(頓悟), 즉 ‘단박 깨닫는다’는 생각이 불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위산에서 앙산을 거쳐 남탑(南塔)으로 내려오는 위앙종의 법맥을 이은 이에 파초혜청(芭蕉慧淸)이 있으니, 신라 출신으로 당(唐)에 건너가 거기서 일생을 마친 선사다. 그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다음같은 설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네게 주장자가 있다면 나는 네게 주장자를 주려니와, 네게 주장자가 없다면 나는 네게서 주장자를 뺏으리라’ 이 한마디가 선객들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선문염송집』에 십여명의 내로라 하는 선사들의 게송과 논평이 나와 있는데에다가, 후대의 『무문관』까지 이 화두를 다루고 있는 데서도 짐작이 간다. 지금은 죽암사규(竹庵士珪)가 이에 언급하면서 읊조린 게송이 시사하는 바 큰 듯하므로 이를 통해 화두에 다가서 보자. 많으면 조금 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