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도 첫 눈이 내리고 있다. 마치 철없는 나비떼들이 허공 가득 군무를 펼치고 있는 듯 펄펄 날아오르고 있다. 어느덧 나뭇가지에는 살포시 내려앉아 눈꽃을 피우고 몽돌밭에는 목화솜을 깔아 놓은 듯 은빛 파도와 만나서 동색을 이루어 세상은 온통 바다가 되었다. 섬들은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어 일체 생멸인연이 사라진 법성의 바다에 하얀 연꽃으로 피어오른다. 마침 오늘은 구들방이 완공되어 처음 군불을 때는 날이라서 축제라도 벌어진 것 같다. 저녁연기는 매서운 바람을 가르고 힘차게 굴뚝으로 솟구쳐 올라 하늘 끝에 닿았고 아궁이에는 일체 번뇌의 티끌을 태우고 있다. 그러나 티끌은 몸을 바꾸지 않고 바로 광명으로 화하여서 이글거리는 불덩어리들이 오색 사리인양 지혜를 나투고 있다. 냉랭했던 돌 속에 어느덧 피가 흐르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에 전해 내려온다는 다음의 이야기는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음을 먼저 기억하고 읽으시라. 차분하고 과묵한 성격의 한 농부가 한가롭게 풀밭에서 소 두 마리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또 하나의 다른 농부가 근처에 앉아 쉬다가 물었다. “저 소들은 먹이를 잘 먹습니까?” “어떤 것 말이오?”그 농부가 약간 당황해하다 뜸을 들인 후에 말했다.“저 흰 소요!” “흰 소는 잘 먹습니다.”“그럼 검은 소는요?” “검은 소도 잘 먹습니다.”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앉아서 풍광을 바라보았다. 그 지나가던 농부가 입을 열었다.“저 소들은 젖이 잘 나옵니까?” “어떤 것 말입니까?”“흰 소 말입니다.” “흰 소는 젖이 잘 나옵니다.”“그럼 검은 소는요?” “검은 소도 잘 나
숲에는 스산한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빈 가지들 사이 고욤나무에는 붉은 감 하나마다 부처님, 온통 진실을 드러내며 거룩한 만다라를 펼치고 있다. 항구에는 정박해 놓은 크고 작은 배들이 물결을 따라서 오르고 내리면서 부딪혀 내는 소리가 마치 오케스트라를 듣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뜰 앞에는 국화가 지고 있는데 한 줄기 차가운 서풍은 웬일로 처마 끝 풍경을 자꾸만 흔들어대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스쳐가는 모든 인연들은 성품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지나간다. 그래서 『신심명』에서는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 가지 일에 허물이 없다”고 했는지 모른다. 온 종일 하는 일은 범부와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때론 바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본분사를 드러내는 일이어서 한 치의 오차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직 남아있
세계불교도우의회(WFB)가 진각종의 지역본부 가입을 승인했다. WFB는 11월 14~17일 일본 도쿄에서 제24차 세계총회를 열고, 진각종의 지역본부 가입을 공식 승인했다. 특히 올해는 진각종 창종주인 회당 대종사가 1958년 방콕에서 열린 제5차 세계총회에 처음으로 참석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로 그 의미를 더했다. WFB는 이 자리를 통해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열반종 등의 17개 지역본부 가입도 함께 결정했다. 이번 총회에는 진각종 통리원장 회정 정사를 비롯해 16개국 62개 지역본부에서 400여 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한편, WFB 팬 와나메티 본부회장은 이번 총회에서 진각종에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 구호성금 지원에 대한 감사장을 전달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내가 살고 있는 절은 노지(露地)에 약사대불이 모셔져 있다. 조석으로 다기에 물을 올리고, 사시에는 마지(摩旨)를 올리지만 이곳에는 일부러 생미를 놓고 있다. 지난겨울, 며칠을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참새 몇 마리가 눈에 들어 와서 그 날부터 화단 안쪽의 돌을 헌식대 삼아 쌀 몇 주먹씩을 놓아주었다. 처음엔 며칠이 지나도록 입질이 없었다. 그러다 점점 없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여름에 접어들면서는 마지를 올리기 위해 통로의 문을 열고 나가는 시간쯤이면 수 십 마리의 참새들이 기다리곤 했다. 그렇다고 헌식대에 무턱대고 날아들지는 않았다. 가지의 높은 곳에서부터 몇 단계를 거쳐 내려앉고서야 먹이에 입을 댔다. 그리고 주위에 누가 있건 없건 한 번에 오래 머물러 있지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자비명상 여행을 다녀왔다. 천안 만일사에 이르니 오색단풍은 그윽하게 대웅전 뜨락을 장엄하고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새와 청량한 석간수의 맛이 뼛속까지 시리다. 오랜만에 젖어드는 자비스러운 기운이 온통 감각을 드러내 놓는다. 여러 수행자들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서 노래를 하고 모든 감각을 스스럼없이 열어 놓고 그대로 바라보는 수행을 하고 있다. 거친 감각과 기운을 신나는 노래로 헹구어 내고 난 다음에는 심체를 드러내는 플롯연주가 시작되고 있다. 하늘의 별을 보고 청량한 공기를 맛보며 온통 감각을 있는 그대로 살피다 보면 어느덧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성품이 드러나는데 이제 여기에 일체를 회광반조 하는 수행이다. 우리는 누구나 깨달으려고 하지만 이러한 순수한 감각을 덮어두거나 드러내지 않
고대 페르시아의 카즈윈 사람들은 손등이나 어깨, 혹은 신체의 어느 곳이건 푸른 잉크로 서로에게 문신을 새기며 행운을 비는 관습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이발사를 찾아와서 용맹스런 사자를 어깨에 새겨 달라 했다. 이발사가 벌겋게 달군 바늘에 잉크를 묻혀 찌르기 시작하자 그는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지금 뭐하는 거요?”“사자.”“어디부터 새기는 것이오?”“꼬리.”남자는 꼬리는 필요 없으니 다른 곳부터 새기자 했다. 이발사가 다시 몇 바늘 찌르기도 전에 그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번은 어디요?” “귀.” “귀가 없어도 사자는 용맹하오.”다시 시작, 이번에도 남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그리는 데 이리 아프오.” “배” “나는 배 없는 사자가 좋소.”이발사가 곰곰이 생각하다 바늘을 놓으며 말했다
단비가 오랜 가뭄을 떨치고 지나가니 숲에는 다시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낙엽은 바람을 타고 철새처럼 먼 바다로 여행을 떠나고 산벚나무는 벌써 빈 몸으로 청정법신을 드러내고 있다. 모처럼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더니 도심 거리에도 그윽하게 가을이 내려앉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길을 가리켜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업을 하는 거사님 댁에 들렸더니 요즈음 참으로 힘든 시간이라고 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한 세상에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러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느냐고 했더니 오전에는 업무를 챙기고 오후에는 공장 뒷산에 올라가서 화두를 챙기는데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좌선을 하다보면 화두가 순일하지 못하고 금방 고요한 경계에 떨어져서 혼침에 들
뒷산 봉우리에 벌써 단풍이 내려오고 있다. 예년에 비하여 빠른 것은 아마도 극심한 가뭄 때문인 것 같다. 도량에는 타는 목마름 속에서도 국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고절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밭에는 마을 사람들이 메마른 땅에 물을 뿌리며 뙤약볕 아래서 양파를 심는 모습이 무척 힘겨워 보인다. 지혜로운 사람과 자연은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제 빛깔과 향기를 포기하지 않고 시절인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참으로 신비하고 경이로운 모습이다. 혜초 스님은 신라 성덕왕 3년(704년) 에 출생하여 16살 때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인도의 스님인 금강지에게 밀교를 배우고 그의 권유로 구법여행을 떠났다. 인도의 거친 자연과 낯선 사람들 속에서 목숨을 내건 험한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남아시아 넓은 사막을 횡단하고 히
전국 시대, 위영공(衛靈公)은 미동(美童) 미자하를 곁에 두고 예뻐했다. 어느 날 미자하는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고 급한 김에 왕의 수레를 타고 집에 다녀왔다.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발뒤꿈치를 자르는 중형, 그런데 왕은 “미자하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는다”하며 오히려 칭찬하였다. 또 한 번은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고는 왕에게 먹어보라며 건넸다. 이때도 왕은 “충성심이 대단하구나! 복숭아가 맛이 있으니 제가 안 먹고 과인에게 주다니”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자하는 점점 왕의 신임을 잃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었을 때 왕이 지난 일을 떠올리며 노했다.“저놈은 언젠가 허락도 없이 짐의 수레를 탄 적이 있고, 또 먹다
돌탑 주변에는 꽃무릇이 한줄기 붉은 마음을 토해내고 있다. 마치 꽃술 하나마다 전 우주를 포섭하여 화엄세계를 연출해 놓은 듯 장관을 이루고 있다. 텃밭에는 배추와 무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둘러보는 재미에 더없이 넉넉한 저녁이다. 가을 산사마다 특색이 있어서 풍성하기는 마찬가지일지 몰라도 유달리 잘 정리된 텃밭에 채소가 자라고 있는 절에 가면 왠지 고향에 온듯이 포근함을 느낀다. 근대 한국 불교의 대선지식이었던 학명선사는 반농반선(半農半禪)운동의 깃발을 내걸고 철저히 정진했던 선각자였다. 스님께서는 내장사에 주석하시면서 선원청규의 제일 원칙으로 오전에는 경을 읽고 오후에는 농사를 지으며 저녁에는 참선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아 대중과 더불어 실천하며 철저히 수행을 하였다. 또한 조용히 앉아서 고요함을 지
사람마다 한권의 경전이 있는데(我有一卷經)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不因紙墨成)펼쳐보면 글자 하나 없지만(展開無一字)항상 환한 빛을 놓고 있다네.(常放大光明)『화엄경』 일본 교토의 오바쿠사에는 경판이 모셔져 있는데, 이것이 일본 최초의 목각판이라 한다.신도인 데츠겐은 목판에 불경을 새기는 불사를 하고 싶었다. 대략 7천장이 소요될 것 같았다. 그는 불사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으로 화주를 나섰다. 어떤 이들은 많은 금화를 내놓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시일반의 동참이었다. 그렇게 십년이 지나자 대략의 자금이 모아져 일에 착수하려는 찰나에 ‘우지’강이 범람하는 일이 생겼다.(이곳은 지금도 녹차의 산지로 유명하다.) 데츠겐은 망설이지 않고 수재민들의 구제에 모은 돈을 써버린 후 다시 화주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