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때 즈음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께서 절에 다니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결혼 후 ‘나도 절에 가고 싶다’는 원을 갖게 되었다. 마침 이웃의 보살님께서 부산 사하구 당리동에 있는 관음사에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함께 가고 싶어요”하며 반가움에 말씀을 드렸다. 마침 다음 날이 음력 보름이니 같이 가자고 하는 보살님을 따라 관음사에 첫발을 딛게 된 것이 어느새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의 이야기가 되고 보니, 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불교 교리와 예절도 몰랐지만, 사찰을 향하는 발걸음은 마냥
가히 세기말적 상황이라 해야 할 것 같다.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사망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경각심이 더해만 가고 있다.균과 인류와의 싸움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다. 누군가는 하루 자살자가 40여명으로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은 것을 빗대어 ‘너무 호들갑 떠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이런 비교로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놀란 마음을 쉬이 진정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류 전체는 바이러스의 공포를 유전자 속에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집단적 사망
‘막막한 세상의 끝/ 천지에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홀로/ 돌담을 마주하고 선다/ 조용히 돌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내가 길이 되어 누워있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한 줄기/ 길이 되어 외롭게 누워있다.’(김영석 시 ‘돌담’ 전문)가끔, 새벽녘에 일어나 담 너머를 우두커니 바라보곤 했다. 마을 제일의 부호로 소문난 집안이었지만 아버지가 별세한 직후부터 살림은 급격히 줄어들어 갔다. 이 형편대로라면 7남매의 막내인 자신에게 돌아올 몫은 고사하고 중·고등학교 입학도 장담할 수 없을 듯싶었
어느덧 미타선원 명상 지도사 과정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전생부터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바르지 못한 습관들이 ‘나’라고 믿으면서 어리석음을 무한 반복하며 살다 보니 업은 누구보다 두터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명상을 통해 그러한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맑게 깨어있음을 당부해 주신 스님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는 수업을 매 순간 열려 있는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에 집중했다. 생각과 고정된 관념을 시나브로 내려놓게 되면서 ‘나’ 스스로에게 위로받고, 용서하며 정화와 치유를 하는 과정에
신라 ‘중고’시기의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자장과 함께 원광(圓光)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자장이 27대 선덕여왕대(632〜647) 불교의 상징적 인물이라면, 원광은 그보다 한 세대 앞선 26대 진평왕대(579~632)의 불교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들 두 사람은 13세기에 편찬된 ‘삼국유사’ 가운데 불교 교학승들을 다룬 ‘의해(義解)’편에서 ‘자장정률(慈藏定律)’과 ‘원광서학(圓光西學)’이라고 각각 제목을 부치어 자장에게는 계율을 정비한 업적을 강조한 반면, 원광에게는 중국에 유학한 선구자로서의 업적을 내세움으로써 차이
오늘은 명상법회를 하는 날입니다. 명상이라는 것은 지금 여기, 지금 눈앞에 있는 이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들, 여기서 경험되는 모든 것들, 내가 삶이라고 여기는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 일어나도록 완전히 허용해주는 것입니다. 해석,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허용해주는 것이지요. 마치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은 어떤 대상이 앞에 오더라도, 좋은 대상이 오든 나쁜 대상이 오든, 좋은 사람이 오든 나쁜 사람이 오든 전혀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출 뿐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는 “있는 그대로 보라
“네 형부가 미타선원에서 명상 지도사 과정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알려주는구나. 나보고 한번 도전해 보래.”지난해 나는 결혼 후 10여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쉬고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던 하루하루에 쉼표를 새기며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언니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언니의 이 말에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식을 만난 것 같은 무엇인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언니야! 나도 해 볼까?”라는 답이 불쑥 튀어 나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돌이켜보면 필연적으로 미타선원 명상 지도사 자격 과정에 입문하게 되었다. 미타선원 명상 지도사
“진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 삶의 한 가운데 있다!”불교총지종은 원정 대성사의 일갈과 함께 1972년 12월 24일 세워졌다. 총지(總指)는 지혜·삼매, 진언·다라니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여, 사원의 본당인 서원당(誓願堂)의 불단 중앙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인 ‘옴마니반메훔’이, 그 양 옆에는 불보살의 깨달음 세계를 상징하는 금강계 만다라와 태장계 만다라가 조성돼 있다. 진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 안락과 법열을 얻겠다는 원력이 불단에 표출돼 있다.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주창한
자장은 최고귀족인 진골출신으로 25세에 벼슬길에 나오라는 왕명을 거부하고 출가하였다. 선덕여왕 7년(638) 당에 유학을 떠나서 장안과 종남산을 오가며 다양한 스승을 찾아보았다. 선덕여왕 12년(643) 대내외의 국가적 위기상황에 처한 본국의 소환 명령에 따라 귀국한 그는 새로 창건된 분황사에 주석하면서 ‘섭대승론’을 강의하고, 뒤에는 황룡사의 사주(寺主)가 되어 ‘보살계본’을 강의하면서 계율을 정비하였다. 마침내 대국통이 되어 전국의 교단을 통솔하면서 수계의식을 거행함으로써 나라 안 사람으로서 그에게 계를 받고 불법을 받드는 이가
다라니 기도를 하기 전 108배 참회 기도를 하는 것과 그냥 다라니 기도를 바로 하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참회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면서 기도 집중이 훨씬 잘 되었다. 다라니 기도 3년을 회향하고 나서는 참회 기도에도 마음을 쏟았다.‘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108배를 하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 과거를 들여다보았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직장 시절, 결혼 후 생활, 부모님께 어떻게 하며 살았는지, 남편에게, 자식에게, 이웃에게, 도반에게, 인연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별
지난 휴일 어느 날, 예쁜 부부가 세심청심에 나오는 저의 글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독자가 직접 찾아오기는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부부는 불교공부도 같이 하고, 틈 날 때마다 전국 사찰을 순례할 정도로 신심이 깊었습니다. 함께 나들이 하는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간단히 차 한 잔을 놓으니 의외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절에서 차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찰이든 참배만 했지, 보살님이나 스님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답니다. 스님을 만나 차를 마시는 설레는 장면은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모든 번뇌를 완전히 여의시어 온갖 공양과 예경 받으실만한 분이자, 사성제 진리를 비롯한 모든 법을 올바르게 스스로 깨달으신 존귀하신 부처님께 절합니다.”이 예경문은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예경문은 길이는 짧지만,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부터 예경을 했던 내용으로 그 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확실하게 새기면서 예경을 올리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아무에게나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예경문에서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