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백중 때까지 49일간 기도를 시작합니다. 백중은 잘 알다시피 ‘목련경’에서 목련존자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목련존자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제도하기 위해 백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대중에게 공양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런데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목련존자와 같은 아들이 있어서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런 아들이 없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설령 지옥에 가더라도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49일간 기도를 하는 것은 지옥에 빠지더
신라 ‘중고’기 국가불교의 최대 상징물인 황룡사의 9층목탑이 조성된 때는 선덕여왕 14년(645)이었다. ‘황룡사구층탑찰주본기(皇龍寺九層塔刹柱本記)’와 ‘삼국유사’ 황룡사9층탑조에 의하면 선덕여왕 14년(645) 3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4월에 찰주를 세웠으며, 다음해에 준공하였다. 9층탑은 오늘날의 건축물로는 20여 층의 높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내부에 계단이 있어서 탑신부의 정상부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김극기(金克己)가 읊은 시구에 의하면 탑에서 내려다본 경주는 벌집이나 개미집처럼 작게 보였
한문 독송과는 다른 한글 독송의 묘미도 배우게 되었다. 우리말로 풀이된 ‘금강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문득문득 떠올랐다. 어느새 경전의 말씀은 중생의 세간살이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고정관념이 스르르 사라지고 없었다. 매일 ‘금강경’을 독송해서인지 경전반에서 공부했던 내용은 더 와 닿았다. 그대로 상을 비우라는 ‘금강경’의 가르침이 이전에는 그저 경전의 한 구절이었다. 그러나 100일 기도를 마칠 즈음에는 삶의 이정표로 온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100일 기도를 회향하며 법우들의 가피 소식도 전해져 왔다. 딸
모처럼 맘 편히 휴가를 다녀왔다. 자연이 선사하는 힐링의 시간들이 일상의 피곤함을 녹여주는 듯했다. 여유로운 마음과 도반들이 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번 여행은 복지시설에 종사하는 시설장 스님 및 재가 시설장들과 함께한 여정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 도반들과 같은 원력으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느끼는 시간들이다.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보면서 도란도란 마음을 나눴다. 어려운 점을 공유했고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했다. 이 귀한 추억들이 나의 일상에 더해져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 나아가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그래서 동산불교대학에서 이 힘든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야기를 좀 해 달라고 해서 이렇게 여러분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갈등의 시대로 불리는 이 시기에 평화를 위해 해야 할 일, 그러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불자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시대를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그래서 두 가지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하나는 이 세간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나는 늘 불교에 관심은 있었지만, 불교 공부를 할 기회는 접하진 못했다. 이전에는 집 근처에 있는 사찰에 다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시불공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냥 의식을 따라 할뿐이었다. 사시불공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그냥 절에 다니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늘 답답함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우연인지 필연인지, 시절인연이 닿았다. 그러던 중 2010년이었다. 당시 서예학원을 다녔는데 그 학원에서 여래사 주지 종우 스님과 인연이 되었다. 스님 덕분에 여래사불교대학을 알게 되었고, 불교대학
곧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절에서는 템플스테이가 열립니다. 기대를 갖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친구를 데려오라고 하면 곤란해합니다. 친구들 대부분이 교회를 다니니 자신이 절에 다닌다는 말도 잘 하지 않게 됩니다.어린이 법회 날이면 1시간 이상 일찍 오는 10살 여자 어린이가 있습니다. 절에 오는 것을 좋아해서, 법회 준비나 청소까지 모든 일을 즐겨 합니다.이번 법회에도 일찍 와서 법당 좌복과 기도책을 미리 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머뭇거리다 결국 법회가 다 끝나고 나서야 말합니다. “스님,
강의에 앞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찰숲은 나라 전체 산림면적 중 얼마나 될까요? 짐작하기도 어렵나요? 먼저 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은 남한의 전체 면적인 1000만 헥타르(ha, 1ha=1만㎡) 중 634만 헥타르입니다. 63%가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조계종 소유의 산림은 전체 면적의 1%인 6만3000헥타르 정도가 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1%가 ‘별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만한 산림을 갖고 있는 기관은 국가기관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이야기를 국립공원으로 좁혀서 보면 사찰이 소유한 산림을 뺄 경
진안과 마령 경계선에 희유한 모양의 두 봉우리가 마주한 산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신라시대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 용출산(聳出山)을 거쳐 조선 초에는 속금산(束金山)으로 불렸다. 계절에 따라 봉우리 이름도 다르다. 안개 자욱한 봄날에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대를 닮아 돛대봉, 녹음 짙은 여름 수목 사이에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 단풍 때 말의 귀처럼 생긴 봉우리가 유독 두각을 나타내 마이봉, 화선지(설산)에 묵화를 치는 붓(봉우리)과 같다 하여 겨울에는 문필봉이라 한다. 지금은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
27대 선덕여왕대(632〜647)는 내우외환이 겹친 국가적 위기를 맞은 시기였다. 우선 선덕여왕은 즉위과정부터 순탄하지 못하였다. 부왕인 진평왕이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맏딸인 덕만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진평왕 54년(632) 정월에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기 바로 8개월 앞서 이찬 칠숙(柒宿) 등의 반란 모의가 발각되어 9족이 멸망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삼국사기’ 진평왕조에서는 반란의 이유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왕위계승과 관련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선덕여왕 말년인 16년(647) 정월 상대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 살아 숨 쉬면서 삶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땐 회상을 하고, 미래를 경험해보고 싶으면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과거와 미래로 간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예전의 기억을 재생하거나 미래의 장면을 추측할 뿐이죠. 잠시 눈을 깜빡이는 찰나,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본 그것, 했던 생각, 들렸던 소리는 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게 뭐였더라?’하며 자꾸 뒤로 가다 보면 현재를 놓치게 됩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질 때
그동안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내용을 한 달에 한 번 큰스님들의 법문을 통해 들어오셨습니다. 오늘은 십회향품(十廻向品)의 열 가지 가운데 마지막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을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이라고 합니다. ‘법계’에 들어가는 한량이 없는 회향, 그래서 ‘화엄경’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한마디로 법계가 됩니다. 법계라고 하는 말에서 법은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계는 공간을 뛰어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고, 공간은 동, 서, 남, 북, 상방, 하방, 중방 등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