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찬란히 빛났던 법등이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짓눌리며 그 빛을 점차 잃어갈 때 허응보우(虛應普愚,1515∼565) 스님이 출현했다. 독실한 불자였던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선교양종을 세우며 선종(禪宗) 수사찰(首寺刹)로는 봉은사를, 교종(敎宗) 수사찰로는 봉선사를 지정(1550)하는 한편, 연산군 때 폐지된 승과제도를 부활시켰다.(1552) 승과를 통해 배출된 대표 고승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 스님이 이 절의 주지 소임을 보며 남긴 ‘봉은사기’를 통해 당시의 사격을 짐작할 수 있다.‘아침마다 1만 밥솥에 밥을
27대 선덕여왕(632~647)이 즉위 16년(647) 1월 상대등 비담(毗曇)의 반란 중에 사망하자, 사촌 자매인 승만(勝曼)이 왕위를 이어 28대 진덕여왕(647~654)이 되었다. 승만이라는 이름은 대승경전의 하나인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불경(勝鬘獅子吼一乘大方便方廣佛經)’의 주인공인 승만부인(勝鬘夫人)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그의 아버지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 國芬 또는 國眞安葛文王)의 국반이라는 이름은 석존의 삼촌인 곡반왕(斛飯王)의 이름에서 따온 것임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리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뜻이지요. 유마경에는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以一切衆生病是故我病),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나의 병도 없어질 것이다(若一切衆生得無病者則我病滅)’는 구절이 있습니다. 중생의 삶을 나의 삶처럼, 하나의 삶처럼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불보살의 서원입니다.이를 보면, 불교적 삶이 세간의 삶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추석 합동 차례가 끝난 후, 70대의 노거사님이 봉사하는 보살님들에게 작은 봉투에 용돈을 챙겨주셨습니
2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스님 말씀을 들었다. 이 질문들이 절대 가벼운 것들이 아닌 것도 사실이지만, 첫 수업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어려운 것이라 하면 단연 실천이라고 하겠다.아마 불교대학 수업만 들었다면, 그 실천에 대해서는 도전할 생각조차 내지 못한 채 멀고 험난한 일이라고만 여겼을 것이다. 일상의 변화가 시작된 시기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5년 전인 첫 아이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부산 해운대 대광명사 불교대학에서
가끔 대중 강연을 갑니다. 거기에서는 주로 ‘있는 그대로 나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강의를 다녀보니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것으로 수렴되었습니다. 곧, 나 스스로가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세상이 날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순수하고 깊은 욕구와 동기가 이끄는 삶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부처의 성품을 깨닫고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꿈꾸고 따르는 부처님의 길, 대 자유인의 길과 다름없습니다.‘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았다.”한국 대법원이 내린 이 판결(2018.10)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 손해배상청구권이 지금도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던 아베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강제징용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불만을 터뜨리며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경제도발이나 다름없다. 한국 정부는 한일 사이에 체결된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연장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4년(645) 황룡사의 9층목탑을 창건한 주역은 진골출신의 승려인 자장(慈藏), 신라 왕족 출신의 이찬 용수(龍樹), 그리고 백제의 장인 아비(阿非) 등 3인이었다. 그 가운데 자장이 승려로서 사상적・신앙적 측면에서 9층탑 조성의 필요성과 의의를 마련해준 역할을 담당했다면, 용수는 공사의 총책임자로서 인적・물적 자원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용수는 용춘(龍春)이라고도 불렸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두 명칭이 혼용되고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진평왕 44년(622) 용수,
미소원 이사장님은 봉사가 처음인 나에게도 여러 봉사를 제안하고 체험하게 해주셨다. 인연이 닿는 대로 봉사할 수 있어서 좋았고 고마웠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반찬봉사이지만 오시는 분들의 맑은 미소, 따뜻한 손길, 활기차고 재미있는 웃음이 늘 넘치는 공양간이 좋았다. 어느 날인가 미소원에서 봉사하고 집으로 돌리는 발길에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렇게 행복을 느낄 수 있음에 고마움마저 느낀 날이었다. 그 행복감은 마치 기도하고 수행할 때 느끼는 환희심과 흡사했다.하지만 일상의 삶은 행복과 거리를 좀처럼
오늘은 생전예수재 초재를 모시는 날입니다. 예수재는 말 그대로 미리 닦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내생에 좋은 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미리 복을 짓는 것입니다. 예수재를 두고 ‘기복적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해해서 하는 말입니다. 학생들이 대학입시를 보기 전에 미리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미리 복을 짓고,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평화롭고 안정된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나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미리 닦는 과정이 필요
‘애가 타다 녹아 무너진다. 애간장이 녹아내린다. 눈물로 범벅이 된 내 모습. 부차적인 일상생활에 선 나. 수행의 갈림길에 선 나. 어느 것을 중요한 기점으로 둬야 할지 헷갈리는 시점이 또다시 느껴져 온다. 겪고 지나가야 할 것은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는, 한 점도 오차가 없는 도리가 뼈저리게 와 닿는다. 무릎이 아프고 발등이 까져 아파도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느낀다. 수행에 관해서 오늘은 부처님에게 의문이 생긴다.’ 2018년 6월 어느 날의 기록에 시선이 멈춘다. 지난해 3월부터 지난 3월까지 1년 동안 매일 1000배 기
AI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AI시대가 다가온다는 사실에 흥미로움과 희망보다는 미묘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늘 변화를 두려워하며 살아왔으니 미래가 펼쳐줄 그 어떤 모습이더라도 얼마간 긴장하게 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다.1980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의 물결’이 나왔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냥 공상과학 이야기 같다는 생각들을 했다. 시간은 흘러 성큼 21세기가 도래하고 우리들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자각하든 못하든 정보화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되었다. 지금의
둥그런 디딤돌 하나하나 밟아가며 도량에 들어섰다. 서울 도심의 작은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2층 카페. 이색적이다. 찻집 창문에 새겨진 ‘테이크 아웃’. “자유롭게 거닐어 보시라!”는 주지 스님의 바람을 새긴듯하다.찻집 마당 곳곳에 작은 부처님 앉아 계신다. 언제 저리 고운 부처님들을 품에 다 안았을까. 고찰(古刹) 숨결 배인 낡은 기와로 쳐놓은 담장. 고아해 정감 있다. 그 옆 나무 아래에 키 낮은 벤치 놓여 있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나뭇잎 사이로 들어차는 눈부신 햇살을 담아가라는 뜻일 터다. 두 팔 활짝 벌린 듯, 양 옆으로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