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이를 둔 엄마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절에 기도하러 가는 것은 항상 마음만 앞서는, 내게는 참으로 먼 현실이었다. 통도사 울산포교당 해남사를 재적사찰로 삼고 한 달에 한 번 내지 두 번은 법회에 동참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천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에 가는 날을 차일피일 미루며 하루하루 바쁜 일상만 반복하기를 꽤 오랜 기간 보내야 했다. 5년 전 즈음일까, 나와 주변의 일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쳐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을 마주했다. 지푸라기라도 붙들어야 되겠다는 심정일 때 주변에 계신 분들이 100일 기도를
저의 일상은 죽음과 매우 친근합니다. 신도나 가족, 이웃 등 인연들은 그물망처럼 이어져, 그들의 병고(病苦)와 죽음을 함께 합니다. 병문안을 시작으로 장례식장, 입관 등 항상 기도를 하게 됩니다. 가장 가까이 보기에, 죽음은 항상 제 옆에 붙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의 고통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제 기도가 모자란 듯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때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듣고 싶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죽음'이란 그림자가 짓눌러 숨을 쉬기 힘들면, 새벽빛이
간다라 초타 라호르(Chota Lahore. 파키스탄 북서지역)의 ‘길리 마을’ 바라문 집안에 성스러운 아들이 태어났다. 거듭된 유산에도 스님을 간호한 공덕으로 낳은 마라난타(摩羅難陀) 스님이다. ‘분드 마을’의 절에서 수행하던 스님은 368년 고향을 떠나 대장정에 올랐다. 간다라에서 시작된 발길은 스왓트(Swat), 길기트(Gilgit)를 지나 천산산맥(天山山脈)을 넘어 쿠처(Kucha, 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돈황(敦煌), 동진(東晋)을 거쳐 16년 만인 384년 호남의 한 항구에 닿았다. 백제 땅에 처음으로 법음이 전
매일 아침 일어나 천수경과 함께 신묘장구대다라니 7독 기도를 시작할 즈음, 남편과 아이들은 절이 아닌 집에서 아내의 그리고 엄마의 기도 소리를 듣고는 오히려 무척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훗날 웃으며 듣게 된 바로는, 나에 대한 염려 이전에 ‘과연 저 기도가 며칠이나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는 얘기였다. 돌이켜보면 가족들은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고 점검하며 한편으로는 응원해 주었던 셈이다.그러한 가족의 무관심한 듯한 관심이 나에게는 수행의 큰 자극이 됐다. 초반에는 어떻게 해서든 매일 아침 기도를 이어가고자
어릴 때는 언제나 계절이 우리들의 감성보다 더디게 흘렀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봄은 쉬이 오지 않았고, 여름, 가을 또한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유독 봄을 많이 기다렸던 것 같다. 3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를 외우고 또 외우며 봄을 기다렸던 생각이 새록새록 하다. 입김으로 호호/ 유리창을 흐려 놓고/ 썼다가는 지우고/ 또 써 보는 글/ 봄 꽃 나비/봄 꽃 나비/ 봄아 봄아 오너라 어서 오너라/ 봄이 되면 나는 나는 새로 사학년 (‘봄 꽃 나비’)교실청소로 유리창을 닦으며 이 글들을 써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글을 쓴
28대 진덕여왕은 즉위 8년(654) 3월에 사망하고, 김춘추가 뒤를 이어 29대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되었다. 김춘추는 진덕여왕대 국내정치와 대당외교의 실권을 장악했던 최고의 실력자였으나, 왕위계승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김춘추에게는 강력한 경쟁자로서 알천(閼川)이 있었는데, 귀족세력을 대표하는 상대등(上大等)의 직위에 있었다. ‘삼국유사’ 권2 진덕왕조에 의하면, 진덕여왕 때에 귀족세력을 대표하던 알천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왕의 시대에 알천공・임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무림공(武林公)・염장공
부처님오신날마다 친정어머니 손을 잡고 절에 다녔고, 친정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봉사활동을 보며 자랐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 기도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는 둘째아이의 동자승 출가를 계기로 부산 홍법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지금 고3인 둘째가 6살 되던 해였다. 다른 때와 같이 부처님오신날 친정어머니와 홍법사를 방문했다. “동자승 한번 해보면 좋겠다”라는 주지스님 말씀과 친정어머니 권유로 7살에 동자승 3기에 참여했고, 그 인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3년째 홍법사와 함께 하고 있다.‘정말, 해도 될까…?’ 막상 동자승을 신청했
얼마 전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일자리 포럼을 비롯해서 저희 기관을 후원해주는 봉사그룹 KLC 회원들의 모임, 미술관 신인작가전 ‘이날생전’, 사회복지행정학회 등을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책상을 벗어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는 일들이 참 좋았습니다. 특히 강릉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온 것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학회를 다니면서 사회복지 환경의 변화를 알아보고, 배운 것을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들이 우리가 만나는 클라이언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면서 각자의 분상에서 열심히들 일을 합니다
경전을 펴면 글자가 나옵니다. 이를 경문(經文)이라고 합니다. 경문을 보다 보면 연결되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경의(經義)라고 합니다. 그 밑에는 경에서 가리키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경지(經志)라고 합니다. 이렇게 경에는 경문이 있고 경의가 있고 경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공부하는 것이 경전공부입니다. 불교는 흐르는 물이 바다로 가듯이 말이나 행위나 생각이 다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을 견성이라 하고, 성불이라 하고, 해탈이라 하고, 입도(入道)라고도 합니다. ‘화엄경’에서는 입법계(入法界)라고 합니다. 도라는 것은 무엇이
‘여기 어디쯤일터인데!’봉선사 16대 주지 임명장을 받고 운악산을 올랐다. 깊은 산 속의 토끼가 ‘너무 맑아 세수는 못하고 입술만 살풋 대고 갔다’는 그 옹달샘 어제도 찾아 나섰지만 허사였다. 오늘도 벌써 두 시간째 운악산을 헤매고 있지만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옛 기억을 떠올리면 고작해야 큰법당에서 서쪽으로 20여분 거리의 산기슭에 있을 법한데 눈에 띄지 않는다. 하긴 행자 시절 단박에 뛰어 넘은 작은 나무들도 30여년을 더했으니 그 가지들이 오목한 작은 샘 하나 가려 숨기는 건 헐할 것이다. 물맛이라면 큰법당 옆 샘물이 일품이
여래사불교대학에서 ‘법화경’ 독송기도는 매주 화요일 오전 사시예불에 이어 진행됐다. 부처님 전에 사시마지를 올리고 예불을 마치면, 동참 대중이 함께 ‘우리말 법화경’을 독송했다. 독송이 끝나면 축원이 이어졌다. 독송할 때에는 경전 길이를 미리 정해두기 보다는 대략 1시간30분 정도 우리말로 풀이된 ‘법화경’을 소리 내어 읽어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법화경’ 전체를 다 읽는 데에는 대략 14~15회 정도 기간이 소요됐다. 매주 한 차례씩 100일에 한 권을 회향하는 셈이었다. 매주 화요일에는 ‘법화경’을 독송했고 목요일에는
오늘 법보신문 임직원들이 약사사에서 워크숍을 한다고 해서 저 또한 기쁩니다. 법문을 부탁해서 무슨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초심’이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함께 생각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스님들이 출가해서 절에 들어오면 처음으로 배우는 책이 있습니다. 출가수행자로서 첫 걸음을 뗀 스님들이 꼭 익혀야 할 책인데, 바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입니다. 저는 출가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초발심자경문’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초발심자경문’은 처음 절에 들어온 출가대중은 물론 이미 절에 들어와 살고 있는 스님들도 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