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권독서만리행(萬卷讀書萬里行).’ 세상을 깊이 이해하고 견문을 넓히려면 만권의 책과 만리를 여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책과 여행은 즐거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외려 낯설고 불편할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넓어지고 사유도 깊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실크로드는 그 길을 걷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만리행’이다. 혹한과 무더위, 갈증과 굶주림, 도적과 맹수들…. 목숨이 열 개라도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극한의 길. 그럼에도 그 길을 통해 동서 문화가 이동했고 온갖 사상이 확산됐다. 지금도 결연한 각오 없이 그 길에 발을 들여놓기는
오늘날 인류는 재난에 대비한 다양한 방재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지진, 홍수, 태풍, 가뭄, 전쟁, 전염병 등 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는 한다. 지금도 그러한데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했을까. 이런저런 자구책을 마련했겠지만 불교국가였던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인왕호국경(仁王護國經)’에 의지해 재난 극복을 기원하고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인왕호국경’이 오늘날 불자들에게 낯설 수 있으나 장구한 한국불교사에서 ‘인왕호국경’은 ‘법화경’ ‘금광명경’
조계종 총무원장은 조계종의 행정을 총괄한다. 3000여 사찰 주지 임명권을 비롯해 사찰 재산 감독 및 처분권을 갖는다. 조계종·천태종·진각종·관음종 등 30여 종단이 가입해 활동하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당연직 회장도 맡게 된다.총무원장은 선망의 자리일 수는 있지만 존경받기는 쉽지 않다. 숱한 이해관계가 모이고 그 최종 결정권자가 총무원장이다. 그 결정과 행보에 따라 찬사와 원망이 뒤따르고는 한다. 때로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다.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는 일도 적지 않았다. 1962년 4월11일,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하고 지금까지
승조 스님(僧肇, 384~414)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연을 접었지만 그가 남긴 ‘조론(肇論)’은 불멸의 경지에 올랐다. 승조가 서역에서 온 거장 구마라집 스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중국 전통의 무(無) 개념을 공(空)으로 녹여 반야와 열반의 참뜻을 제시한 논문 모음집이 ‘조론’이다.‘조론’은 ‘중국불교의 교과서’로 일컬어진다. ‘조론’으로 인해 반야의 공사상을 근간으로 삼는 삼론종이 싹 텄다. 선의 전성시대 기라성 같은 선사들도 ‘조론’을 인용해 언어 이전의 세계를 노래했다. ‘오랑캐의
우리의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의식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불교에서는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들 감각으로 사물과 세상을 인식하고 어쩌면 진실이라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고구정녕으로 이들 감각이 진실이 아니기에 결코 집착하거나 매몰되는 것을 경계한다. 특히 ‘반야심경’은 이들 감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실이 아니기에 공(空)임을 체득하면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다고.독실한 불자로 대학시절 감각이란 무엇이며, 감각이 세상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깊이
고전평론가 고미숙씨가 쓴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평전이다. 제목의 ‘청년붓다’는 청년시절의 석가모니부처님만을 다뤘다는 뜻이 아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청춘’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말한다. 고미숙 평론가는 초기경전 ‘숫타니파타’를 동반자로 삼아 ‘청년 붓다’의 여정과 사상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불자가 아니다’로 서문의 첫 머리를 시작한 저자는 고전평론가로서 동양고전이 유불도(儒佛道)의 교차이며 특히 2017년 감이당에서 진행한 ‘불경세미나’를 통해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접하면서 ‘붓다와 마주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인
만해 스님(1879~1944)의 삶과 사상을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은 오랜 세월 이어져왔다. 만해 스님을 주제로 다룬 논문과 저술도 2000여편에 이르고, 만해학회와 만해연구소 등 학술연구단체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매년 만해문학상, 만해백일장, 만해축전 등이 진행 중이며 백담사, 만해마을, 남한산성, 홍성에 각각 만해박물관이 건립됐다. 이렇듯 전 국민적 차원에서 한 인물의 사상을 계승·실천하고 있음은 만해 스님을 제외하고 다른 사례를 찾기 어렵다.근현대불교사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만해 스님이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역사
‘돈오입도요문론’은 마조(馬祖, 709~788) 스님의 제자 대주혜해(大株慧海) 스님의 저술이다. 혜해 스님은 마조 스님 문하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 스님을 6년간 모시고 살았다. 그 후 월주 대운사로 돌아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살며 ‘돈오입도요문론’을 직접 기록했다. 뒷날 가필이나 삭제한 글이 없는 온전한 수행자의 생생한 저술이다. 마조 스님도 생전에 이 글을 극찬하며 인가하셨다고 전한다. ‘육조단경’ ‘신심명’ ‘증도가’와 함께 선종의 필독서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송광사 인월암에서 주석하며 경전과 선어록 번역에 진력해
‘신심명’의 첫 구절은 ‘지극한 진리는 어려울 것이 없다[至道無難 唯嫌揀擇]’이다. 그러나 경험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깨달음, 삼매, 해탈, 열반, 참된 진리 등 그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인생을 바쳐 그것을 찾으려는 이들에게조차 어렵고도 어렵다. 도법 스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확철대오’라는 허수아비 앞에서 벌벌 떨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고 서글펐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정곡을 찌른다. “붓다는 일관되게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도 어렵게 되는 까닭은 중도실상에 대한 무지와 착각이 조작해낸 양변
‘법구경’은 가장 오래되고 널리 읽히는 경전이다. 수행자가 지키고 새겨야할 수행 지침과 모든 이들이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지혜와 윤리규범이 담겨 있다. 형식도 게송이어서 읽기 쉽고 기억하기 좋아 예로부터 불교 입문서로 간주돼 왔다. 남방 상좌부에서는 ‘법구경’을 외우지 못하면 비구계를 수지할 수 없었다고 할 정도다.흔히 ‘법구경’은 저자가 없다거나 오나라 지겸으로 간주해왔다. 한역경전에 “오부(五部)의 사문(沙門)이 제각기 경전에서 4구 또는 6구의 게송을 채취해 베껴 그 정의를 따라 품목별로 품을 만들어 12부경을 참작하지 않
저자는 건축, 선불교, 한국 고대사, 불교교육, 고려불화, 율장의 6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뛰어난 학승이며 지식인이다. 유튜브, 네이버 밴드 등 대중적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불자들과 소통하고 있는 전법사이기도 하다.많은 사람이 불교를 생각하면 ‘사찰’과 ‘탑’을 떠올린다. 허나 오늘날 볼 수 있는 사찰은 후대에 등장한 것이며 초기불교의 사원과도 확연히 다르다. 부처님 당시부터 오랜 세월 인도의 불교수행자들은 길거리나 나무 아래 혹은 석굴 안에서 수행했고, 탑은 사찰의 장엄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 세워진 최고 건축물이었다.그
운허 스님(1892~1980)은 20세기 최고의 역경승으로 꼽힌다. 평북 정주가 고향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1921년 강원도 봉일사에서 삭발했다. 비교적 늦깎이에, 예기치 않았던 출가였지만 곧바로 불교에 심취했다. 출가 전부터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스님은 금강산 유점사, 부산 범어사, 서울 개운사 강원에서 불경을 익혔다. 1936년 봉선사 홍법강원에서 강사를 시작으로 동학사·통도사·해인사 등에서 강사를 지내며 강백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1년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간행했으며, 1964년 동국
교학의 역사는 깊다. 그러나 고증과 분석적 고찰이 중심이 되는 서구의 학문방법론으로 불교학을 연구한 것은 1910년대다. 권상로의 ‘조선불교약사’(1917),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1918) 등 한국불교를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마련됐다. 현재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불교’를 검색하면 학술논문 3만4988건, 학위논문 1만1192건이며, ‘한국불교’로 검색해도 국내학술논문 1만5610건, 학위논문 4099건에 이를 정도로 국내 불교학 연구는 괄목한 성장을 해왔다.도서출판 민족사는 세존학술연구원장 성법 스님의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은 ‘살아있는 한국 시사(詩史)’ ‘시선(詩仙)’ ‘두보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일제에 저항해 퇴학까지 당한 미당에게서 친일시가 발견되며 평가가 엇갈렸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 아래 곳곳에서 미당의 시비(詩碑)가 철거됐다. 시인 김춘수는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작가 박완서도 “서정주 시인이 생전에 겪은 칭송과 폄하, 영예와 치욕에 동의하여 고개
부처님 가르침을 대기설법이라고 한다. 듣는 사람의 이해능력과 마음상태를 살펴 최적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다.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나 부처라는 믿음 속에서 진행된다. 무명에 가려진 불성을 몰록 올라오게 하거나, 번뜩이는 깨달음은 그래서 각자의 몫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불성을 일깨우고,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은 온전하게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이런 부처님의 대기설법과 비슷한 것이 코칭(Coaching)이다. 코칭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하고, 이를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일련
‘반야심경(般若心經)’은 팔만대장경 중 가장 중요시되는 경이며 전 세계의 불교도들이 가장 많이 외우는 경이다. 반면 경전 중 난해해 번역하기가 가장 어려운 경이기도 하다.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해석이 어려운 반야심경의 확실한 이해를 돕기 위해 15년이라는 대장정의 집필 기간을 거쳐 발간된 두 권의 책이 있다. ‘반야심경 정해’와 ‘반야심경,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이 두 권은 이른바 반야심경 번역 및 분석을 응집한 ‘반야심경 종합서’다.무엇보다 이 책은 반야심경의 ‘사라진 퍼즐’을 맞춰서 경문의 본뜻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축
‘부처님의 입멸’ 키워드로초기·부파·대승 경전·논서통시적 연구·결집 첫 성과입멸하신 붓다는 어디에 계시는가. 이는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 붓다의 거처’에 대한 질문이다. 싯다르타가 성불해 붓다가 되던 날, 붓다가 증득한 최고의 법은 열반이었다. 그렇기에 붓다의 입멸 후 주처를 확인하는 문제는 ‘열반’, 즉 깨달음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다. ‘붓다의 입멸 에피소드 연구’를 통해 동국대 강사 명오 스님이 던진 이 과감한 질문은 붓다 입멸 후 이를 둘러싸고 수백 년 동안 교단 내에서 이어진 논의와 고민에 대한 방대한 자료의 확인으로
[1634호 / 2022년 6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부산 해인정사 수진 스님이 현토역주를 진행하는 ‘청량국사화엄경소초(淸凉國師華嚴經疏鈔)’ 3차분 13권(18~30)이 최근 출간됐다. 전체 100권으로 진행 중인 ‘청량국사화엄경소초’는 1차분(2020년) ‘화엄현담’ 10권과 2차분(2021년) ‘세주묘엄품’ 7권에 이은 것으로 제2품 여래현상품부터 보현삼매품, 세계성취품, 화장세계품, 비로자나품, 여래명호품, 사성제품, 광명각품, 제10품 보살문명품까지 실렸다.‘청량국사화엄경소초’는 80권본 ‘화엄경’에 소(疏) 60권, 초(鈔) 90권을 붙일 정도로 분량이 방대하다. 대소승 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