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기도는 생각만 할 뿐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새벽마다 범어사 대웅보전에 불 밝히며 기도하는 14년 지기 언니가 부러웠다. 하지만 아직 인연이 아니었는지 절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금정사에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며 교리토론은 했지만 경전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막내 아이가 다니던 음악학원 선생님이 홍법사 일요어린이법회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참여를 넌지시 권했다. 오가며 보던 아미타대불이 있는 곳이 홍법사라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막내는 일요법회를 마치고 리듬체조, 댄스, 합창 등으
“지심귀명례 보광불, 지심귀명례 보명불….”새벽이면 작은 기도방에서 남편이자 도반 태성 거사와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살아있음에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며 한 배, 한 배 절을 하다보면 등줄기엔 땀이 흐른다.18년 전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큰스님 열반주기에 평소 무척이나 나를 아끼던 보살님의 손에 이끌려 생에 첫 삼천배를 했다. 가끔씩 108배를 하던 나는 긴장감에 절의 전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밥도 먹지 못했다. 서툰 몸짓으로 절을 시작했다. 억겁의 때가 녹아내리는 듯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책장을 넘길 힘조차 없었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꿈속에서도 생각한다. 잠과 사투를 벌이다 깊은 잠도 못 잔다.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난 뭐하고 있나.’ 이따금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다시 도약하고자 삼배로 하루를 연다. ‘기도를 중단하지 않고 여법하게 잘 이어가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차려야겠다.’ 이렇게 다짐한다. 그동안 몇 차례 게으름을 피워 기도를 생략하곤 했다. 그럴때도 마음은 늘 기도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반야심경’ 사경책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친구 권유로 시작한 기도내용·뜻도 모
부산 홍법사와 인연은 2009년, 큰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러나 사찰터이기 전 농원으로 있을 때부터 이곳이 너무 좋았다. 가끔 들러 산책을 즐기던 장소이기도 했다.그래서 홍법사에 어린이법회가 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매주 일요일마다 어린이법회에 결석 없이 6년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 문화관(플루트와 어린이 사물) 수업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역시 기본적인 예법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불교대학에 입학해 공부하고 졸업했다. 선생님 가르침에 따라 마음 맞는 소띠 친구들과 21일 동안
정말 안하무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줄 알았다. 오만방자하게 살았고, 가시 박힌 언행으로 주위를 찔러가며 살았다. 변화는 ‘금강경’으로부터 시작됐다.2011년 11월3일 1만독을 회향했다. 1차 공부를 끝내고 뜻까지 함께 읽는 2차 공부 중이다. 2차 공부에 들어가니 1차 공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글에 입이 적응해야 했고, 다른 말에 호흡이 달라졌다. 글이 길어 느낌상 해석 1독을 해놓고 나면 1차 공부하던 때와 비교돼 자꾸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느려진 느낌에 당황하기도 했다. 극복해야할
남편의 시간은 멈췄다. 2013년 4월 오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오토바이 교통사고였다. 남편은 뇌출혈로 사지마비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말도 할 수 없고, 먹을 수도 없다.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다. 두 눈만 껌벅이고 있다. 목을 절개해 산소를 공급받으며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에 삶을 지탱하고 있다. 재활 요양병원에서 만 2년이 지났고, 3년째 그렇게 누워있다. 사람 목숨 살려내기 위한 노력과 오토바이 사고 원인 규명, 산재보험 소송 등 동분서주했던 지난날에 눈물이 쏟아진다. 오로지 부처님 전에 기도로
오빠 장례로 만나게 된 선원장 스님을 아들 일로 다시 뵙게 되는 복을 누렸다. 스님의 기도로 아들이 오랜 방황을 접고 건강해져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후 간간히 법회에 나가는 수준이었다. 일을 해야 하는 형편이라 무엇 하나 꾸준히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집과 가까운 일산에 도량이 개원하면서 퇴근 후에 그나마 기도할 수가 있었다.드디어 2004년 4월부터 스님께서 대비주 수행결사를 시작하시니 처음으로 대비주수행을 시작했다. 스님께서는 21독씩 21일 기도를 시작으로 108독을 5시간이 넘도록 직접 목탁 집전을 하시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지난 인생을 생각해 보니 젊을 때에는 생업에 종사하느라 항상 시간에 쫓기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물론 나름대로 열심히 살기위해 노력도 많이 했다. 하지만 노년기에 접어든 뒤 하던 일도 그만두고 나니 회한과 아쉬움만 가득했다.무엇보다 척추 장애를 갖고 있는 까닭에 마음속에는 항상 ‘왜?’ 라는 의문이 따라다녔다. 몸의 장애보다 장애를 갖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 의문을 풀려고 나름대로 절에 다니는 틈틈이 혼자 경전도 읽고 명상도 해 보곤 했다.대광명사와의 인연은 6년 전 어머니의 천도재로 시작되었다.
사업실패와 방황으로 남편은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4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힘겨운 가정 살림을 꾸려 나가느라 버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운 나날이었다. 남편을 원망하며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앞에 나도 모르게 모든 걸 놓아 버리고픈 마음이었다. 아파트 베란다를 내려다보며 자꾸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아무에게도 말도 못한 채 참고 또 참고 꾹꾹 누르며 지냈다.그러다 2014년 1월, 갑상선암 악성 판정을 받았다. 0.1cm 암덩어리가 3개, 0.3c
지난날을 돌아보면, 나는 수많은 생중에 불교와 인연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시기 전에 큰 절에 올라가 기도를 하시고, 스님께서 잘 키우라는 꿈을 꾸셨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절을 좋아했고, 자주 다녔다. 주중에도 혼자 절에 가기도 하고, 주말에는 어린이법회에 참석했다.초교 입학 전 성철 스님 친견백련암 아비라기도 첫 체험절·능엄주 3독 일과수행도부처님과 대화하는 듯 느껴해인사 백련암과 인연이 닿은 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이다. 당시 외숙모를 따라 멋도 모르고 아비라기도에 참석했다. 사실 지
의정부에서 개봉동에 있는 절에 다니면서 지장기도를 하였다. 집과 가까운 곳에 인연 있는 절이 있으면 다니려고 도봉산 자락에 있는 절을 찾았다. 스님은 대비주 100일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접수를 하고 기도비도 냈으나 기도는 하지 않은 채로 그 인연은 지나갔다.혼자 대비주 독송하며 기도덕양선원 만나 체계적 수행13개월 만에 10만독 성취자신과 가족에 좋은 일 생겨몇 개월 뒤, 집에서 혼자서라도 100일 기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07년 3월30일부터 7월7일까지 했다. 이것이 대비주 기도를 하게 된 첫 동기이다. 하루 108
지금 내 곁을 지키는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다니던 절이 있었다. 그런데 사이비였다. 그것도 모르고 다니다 마음고생하며 몇 년을 힘들게 보냈고, 종교는 잊고 살았다. 왜였을까. 돌이켜보면 지금도 의문인데, 요동치는 간절한 마음이 불교검색으로 이어졌다. 그때 ‘법보신문’에 실린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마음에 해뜰 무렵’이라는 ‘금강경’ 인터넷 카페를 찾아갔다.잘못된 종교로 마음 고생 ‘금강경’ 독송 만나 새 삶하루 50독 2년만에 1만독독송 10년간 큰 행복 찾아인생 최고 보물 된 ‘금강경’그전부터 내게 맞는 수행법을 찾아 꾸준하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1월이었다. 인근의 대원정사라는 절 주지스님의 조언으로 공인중개사를 준비했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공부에 필요한 비용과 소요시간을 생각하니 불합격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다짐을 공고히 했다. 제일 먼저 금주와 금연을 시작했고 그런 다짐으로 임한 시험에 통과했다. 늦은 도전에 성공했던 경험을 바탕 삼아 내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삶의 기둥을 세웠다. 절수행이다.삶의 마지막 선택 절 수행아비라카페서 3천배 철야매일 천배 백일 정진 회향가벼워진 심신에 금주도 언제부터 3000배를 시작한 건지
대광명사에 다닌 지 2년이 흘렀다.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기회는 여태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소중한 시간이고, 새로운 안목을 얻게 해 주었다. 예전에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많이 괴로워했지만 이제 그런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법문을 듣다보면 갑갑했던 부분이 확 뚫리는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참선은 주위 사람들께 필히 권하고픈 수행이다.처음 해본 참구에 매력 느껴‘부모미생전’화두 받아 수행화두 들다 망상에 속기도 해마음흐름 알게 돼 삶에 큰 힘참선은 1년 전 함께 교리수업을 듣던 도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항상 부정적으로 살아왔다. 주변 환경부터 시작해서 내가 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거나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면 항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들이 신체,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부정적 생각으로 삶 나빠져대광명사 사경반 만나 변화‘지장경’ 한권 사경 뒤 독경매일 남에게 도움되길 발원그러다보니 무엇보다 건강이 나빠졌다. 한동안 일을 쉬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부정적인 사고
겉으로 보이는 나와 내안의 나는 많이 달랐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다보니 얼굴은 웃지만 속에서는 스트레스로 화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울증처럼 기분 좋다가 갑자기 울고, 우울해지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감정통제가 되지 않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 상기가 되어 죽을 것만 같았다. 과민성대장염도 겹쳐 1년에 두 차례는 응급실을 가야했다.서비스업 종사로 화병 생겨100일 간 오로지 절·염불온 가족 절 수행하며 건강모든 사람 행복 위해 수행생활 습관을 당장 바꾸지는 못했다. 입이 즐거운 피자와 빵 등 밀가루 음식만 먹고살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자 이제까지 삶에 대하여 고민해 봤다. 직장생활하면서 퇴근하면 가족, 동료, 친구들과 지내고 주말에는 취미생활 하면서 동호인들과 어울리는 게 내 생활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하며 건강과 재산을 관리하고 노후를 즐기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몰라서 답답한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 마음을 어디에서 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 조계사를 찾았다.왜 사는지 의문 생겨 귀의불교 교리 공부한 뒤 참선‘이뭣고’ 화두로 매일 정진완전 인격체 소망&hell
2년 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던 당시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때는 암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밀려왔다. 매일같이 밤잠을 설쳤고 불안함과 걱정 속에서 수술도 세 번이나 미뤘다. 다행히 주위 권유로 가까운 사찰에서 108배를 하면서 어느 순간 ‘이제는 수술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 후 한 달 동안 요양병원에 머물면서 수술 전 잠깐 맛본 수행의 기쁨을 떠올렸다. 진작부터 언니는 절에 갈 것을 권유해 온 터였다. 때마침 9월을 맞아 대광명사의 불교대학 개
2007년. 계속되는 장거리 운행 누적으로 무릎 통증이 생겨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다니면서 물리치료, 침 등 다양한 치료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통증은 떠날 줄 몰랐다. 그러던 중 업무 스트레스 누적으로 목까지 붓게 되어 이비인후과를 추가로 다녔다. 일정기간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서 큰 병원을 찾아 무릎과 목을 정밀 진찰한 결과 퇴행성관절염과 역류성 식도염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목에는 물혹 두 개가 확인되어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장거리운전으로 무릎 통증스트레스로 물혹까지 생겨3000배 철야·매일 108배죽음 빗겨나간 가피 체험
매일 새벽 5시, 알람소리에 잠이 깨면 정갈하게 씻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광명진언을 사경한다. 오늘도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항상 행복한 마음 느낄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란다.광명진언 사경은 우연인 듯 운명처럼 인생 한가운데로 성큼 다가왔다. 6월 어느 날, 백중을 며칠 앞두고 있던 때였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장유정 이사장이 조심스럽게 권유를 했다. ‘영가천도기도를 하기 전, 광명진언을 사경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평소 어머니 영향으로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터였다. 단지 마음 한구석에 두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