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회의를 진행했다. 그동안 조사하고 방문한 곳들과 지금부터 방문해야 할 곳들의 정보를 모아 정리하고, 지원 방향을 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오늘부터 팀을 3개로 나눠 활동을 진행키로 했다. 2팀은 지원을 시작하고 1팀은 계속 조사를 진행하고, 2팀은 지원을 맡는 방식으로 활동하기로 했으며, 굿월드팀 또한 직접 지원을 시작했다.우리가 찾아간 곳은 지난 21일 방문한 가지안테프로부터 약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마라하쉬’시 이다. 다른 지역처럼 모든 아파트와 집들 그리고 건물들이 다 무너져 적게는 5~10여 동 많게는 50
중견 작가인 조동수(70·통녕) 거사가 그동안 자신의 참선공부를 담은 ‘오등일지’를 보내왔다. 강원도 산중의 한 사찰에서 기거하던 중 ‘색즉시공’이라는 말에 걸려 밤새 씨름하다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그가 이후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이어가다 오등선원 조실 대원 스님 회상에서 오도송을 쓰게 된 내용을 담고 있다. 편집자*오도송이 있느냐?계룡산 학림사 오등선원의 대원 스님이 내게 오도송 쓴 게 있느냐고 물었다. 많은 대중들 앞에서 나의 상태를 점검하면서였다. 그리하여 며칠 후, 예전의 메모를 정리하여 보여드렸다.색즉시공 한 마디에
2월20일 새벽, 시차적응도 제대로 못하고 일찍 잠에서 깬 우리 활동가들은 서로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인사를 나눴다.오늘 일정의 시작은 시리아 민간 구호단체 ‘화이트 헬멧’과의 실무 미팅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보고 전달방식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화이트 헬멧’ 사무실에서 사무국장, 지원팀장, 전략팀장, 대외협력팀장과 회의를 시작했다. 그들은 “튀르키예를 비롯한 시리아 정부조차도 신경써주지 않는데 이렇게 찾아와 준 한국 NGO에 감사드린다. 한국 국민들에게 늘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길 기도드리겠다”라고 말했다.우리는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 ‘꽃’ 중에서이름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이 있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되 차별과 독립성을 인정받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콜사인 같은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래서 옛 선인들이 ‘이름값 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뇌가 먼저냐 아니면 의식이 먼저냐 그리고 (자율적 주체로서의 자아가 아닌) 우리를 머무는 무엇이 아닌 스스로 영속하는 패턴으로 보는 시스템 이론에 따른 인공지능의 가능성 유무 등 깨달음의 측면에서 보면 단순할 수 있는 문제들이 불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화제이자 논쟁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런 측면에서 의학계에서 줄기세포 최고 권위자이자 혁명적 사상가로 유명한 로버트 란자 박사가 그의 저서 ‘바이오센트리즘’에서 보여준 문제 제기와 방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당시에도 출간되자마자 과학계를 충격에 빠뜨리며 물리학자와 생물
세계문화유산이자 화엄종찰 영주 부석사의 전성기 사역은 어디까지였을까. 현재의 부석사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 남쪽 산기슭에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남북 축선상에 이어져 있다.그래서 부석사와 관련된 연구나 조사는 주로 현재의 사역에 국한에 이루어져 왔지만 구전에는 무량수전 동서 10리에 걸쳐 있었다고 한다. 부석사 동쪽 보물 제220호 석조여래좌상이 있었던 북지리 179번지 일대는 한때 동방사지(東方寺址)로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동방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부석사 동쪽에 있는 절터라는 뜻이 와전돼 그렇게 불렸다
경기도 광주 천진암은 스님들이 초기 가톨릭 신자들을 도왔던 절이었지만 지금은 온통 가톨릭 성지로 뒤바뀐 곳이다. 이에 대해 불교계 내부에서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글은 월간 ‘대중불교’ 편집장이었던 김희균씨가 ‘천진암터에서 천주교가 벌이는 백 년 동안의 시위’라는 주제로 해인사가 발간하는 ‘해인’ 1995년 12월 166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해인사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지난여름에 불자 김환봉씨가 ‘대중불교’를 찾아왔다. 십여 년 만의 만남이라 반갑게 안부를 묻고 나니 그는 뜻밖의 주
황금빛 단풍잎이 비처럼 내리는 운문사 은행나무, 학인들은 논강이 끝난 뒤 은행나무로 달려가 ‘잎비’를 발로 흩으며 가을을 만끽한다. 그 은행나무는 이맘때쯤이면 그 장관을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한다. 지금 운문사 도량에는 황금빛보다 더 빛나는 회주 법계명성스님이 계신다. 내가 회주스님을 처음 뵌 것은 1978년 만추의 계절, 은행나무가 찬란한 빛을 내뿜는 10월, 치문 방부생으로서였다. 당시 회주스님께서 1977년 최초로 학장과 주지를 겸직하시게 된 지 얼마 안 된 시기로 운문사 학인들 건사하랴, 도량보수 및 불사를 계획하고 추진하시랴,
잘 만들어진 품격 있는 녹차를 만나면 생각나는 감사한 인연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였다. 선배와 경복궁 동문 쪽에 있는 법련사(法蓮寺)에 간 적이 있다. 승보종찰 송광사의 서울 국제선원이었다. 절은 두 채로 이어져 있었다. 아래채는 대웅전으로, 돌계단을 몇 개 올라가는 위채는 관음전과 옆에 객방 등으로 이루어져 이곳에서 청년법회(法會)가 열렸다. 어느 여름날 위채 관음전 쪽에서 연세가 있어 보이는 어른 세 분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스님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차를 마시는 그 스님의 모습은 먼발치에서도 내가 만난 사람들과
자신들의 선대인 ‘천주학쟁이’들이 쫓겨 다닐 때 스님들이 숨겨주고, ‘강학’ 장소를 제공했던 절터를 ‘천진암 한국천주교 성지’를 만들고도 성이 차지 않는 듯, 불교 수행의 상징체계의 하나인 ‘법계도’ 문양을 무단 도용하여 나전칠화를 제작해 바티칸 성당에 헌납하고도,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어쩌고 하며 억지를 부리는 횡포를 서슴지 않고 있다.‘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얼치기 먹물들도 혀를 찰 ‘곡학아성曲學阿聖’(학문 지식을 비틀어서 천주님의 환심을 삼)의 꼼수의 끝은 어디까지일지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일이다.불가 수행의 중요한 방편
“적음화 집보고 있을 거지?” 하시며 주지스님께서 외출을 나가신 기해년의 어느 날. 큰스님께서 전에 없이 승복을 단정히 입으시고 불편한 걸음으로 나오셔서 “죽비맞이를 해야겠다. 같이 가자.” 하셨다. 아직은 기억이 남아있고 걸으실 수 있는 때였는데 큰스님을 모시고 법당에 들어가자마자 어쩐지 지금이 마지막일 것 같아서, 동영상을 촬영했고 그렇게 간신히 큰스님의 마지막 죽비맞이를 기록할 수 있었다.큰스님 곁에서 머무는 시간동안 하루가 다르게 필자의 이름을 묻고 또 묻고, 오늘이 며칠이냐고 지금이 몇 시냐고 물어보시고, 승려로서의 일과를
2006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조사 결과 ‘1995~2005년 천주교 신자는 295만명에서 516만6000명으로 크게 증가한 데 반해 개신교 신자는 876만명에서 861만명으로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몇 달 뒤(2006년 11월30일) 개신교계 연구 모임 ‘목회사회학연구소’와 ‘일상과초월’ 공동 주최로 천주교 신자의 급증 원인을 분석하는 포럼이 서울 종로5가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개신교 목회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발표자와 논평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천주교의 교세 급등’ 배경과 원인을 궁금하게 여
때는 을미년, 7년 전 초여름이다. 막 개종을 하고 반년쯤 되었을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필자가 고기와 술을 끊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어느날 고기를 계속 먹지않는 자식이 너무 걱정되신 모친께서 김밥에 야무지게 햄을 크게 잘라 넣어 만들어 케이크처럼 쌓아놓으셨다. 생각 없이 집어먹다보니, 김밥에 들어있는 고기가 보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절로 뛰어들어갔는데, 가자마자 큰스님을 붙들고 급하게 여쭤봤다.“스님 제가 김밥에 들어간 햄을 먹었어요! 고기먹었어요!”그러자 큰스님께서는 “그것은 햄이여, 고기가 아니여”라고 하셨다.큰
외세를 믿고 행패를 부리던 천주교에 저항했던 제주도민들의 억울한 넋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의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를 읽었거나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이재수의 난’을 본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현기영은 소설가의 상상으로만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 조선 말 정계의 주요 인사로 프랑스와의 수교 교섭 책임자였던 김윤식이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 쓴 일기 ‘속음청사(續陰晴史)’를 기본 사료로 하고 천주교 측에 보관된 관련 자료들도 꼼꼼하게 살폈다고 한다.프랑스(당시 법국) 신부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일부 천주교인들 행패가 심해져서
서울시가 최근 재개장한 광화문 광장의 역사물길에 조선불교 중흥조 보우 스님의 죽음을 ‘처벌’로, 김대건 신부의 죽음은 ‘순교’로 편향 기술하고 주요 유적지·관광지마다 가톨릭 성지 간판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소문 역사공원까지 가톨릭 신자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이 ‘한국 천주교의 어두운 역사’에 관한 기고문을 보내와 이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임계점이라는 말이 있다.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상(相) 변화를 할 때 저온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한계 온도와 압력’을 뜻하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오늘날 환경운동과 현대과학, 채식과 비거니즘은 화엄불교의 인드라망과 맞닿아있다. 인드라망은 우주만물의 상호연결성을 나타내는 이미지다. 우주는 다면체의 빛나는 보석들이 이루는 거대한 그물망이며 보석 하나하나는 다각의 거울 역할을 한다. 어떤 의미에서 각각의 보석은 독립된 실재다. 그러나 보석 하나하나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다른 보석들의 반사만을 보게 되고 다른 보석들도 또 다른 보석
지속가능성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소피아의 회복이 요구된다. 우리 안의 마고할미라 할 수 있는 소피아(Sophia)는 인간 본성의 신성한 여성성을 뜻하는 단어로 양육하고 돌보고 배려하는 사람의 본성을 일컫는다.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양육과 풍요의 여신이었고 인간 내면의 여성적 힘 또는 지혜를 상징한다. 철학(Philosophy)이란 단어 PhiloㅡSophia는 ‘소피아에 대한 사랑’이란 뜻이다. 동물을 학대하고 죽여 먹는 육식 행위는 소피아를 억압하며 인간의 지성과 창의성 발현을 근본적으로 막는다. 인간, 동물, 사회 등 모든 살아있
광화문 광장이 근 2년 동안 대대적인 구조조정 공사를 끝내고 8월6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돌아왔다. 그곳에 가면 조선조의 혹독했던 불교탄압의 집단광기와 함께 아직도 진행 중인 이 땅의 불교 차별 잔혹사를 침묵으로 증언하는 연표석을 확인할 수 있다.정부서울청사 정문 부근의 옛날 육조거리 ‘예조(禮曹)터’에서 시작, 북에서 남쪽방향으로 물길이 흐르도록 조성된 ‘역사의 물길’에는 1392년 태조즉위(조선건국)로 시작해서 올해까지 꼭 630년 동안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요사건을 새긴 연표석이 깔려있다. 그런데 이곳을 둘러보며 참담함을 갖지
유목사회 또는 농경사회라 하듯 삶의 전제에 수반되는 음식선택은 심리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문화적 심리 형태를 분석할 때 대상이 동물이냐 식물이냐는 인간 집단의 삶의 양태를 결정짓는 하부구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즉 음식을 선택하고 대하는 인식과 태도에 있어 ‘풍요냐 결핍이냐’는 삶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전제와도 직결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본성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믿음과 현재의 정치 경제의 잘못된 점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결정적이기 때문이다.만약 삶이 정글이라면 실제 정글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큰 국민적 관심사의 하나가 청와대의 활용 방안이다. 청와대를 사적지로 지정하여 일체의 훼손을 방지하자는 안과, 이보다는 청와대 원래 개방 취지대로 모든 국민에게 완전 개방하자는 안, 그리고 사적지로도 지정하고 국민도 활용하는 절충안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이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안은 세 번째 ‘사적지로 지정하여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국민들도 활용하는 절충안’이 아닐까 한다. 청와대 본관이나 춘추관은 원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역대 대통령의 통치 유물과 외국에서 받은 선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