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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결사 인도순례 27일차] 비하르주 지나 ‘열반의 땅’ 쿠시나가르까지 이제 ‘하룻길’

3월7일, 열반지까지 24km…주민들 천막·카페트 설치하고 환영
비하르~유피 이어진 길은 열반 상징하는 맑은 냇물 흐르던 현장
수문 스님 “길 위에서 신심·원력 살아있는 정진의 시간 갖고파”
제민 스님 “내딛는 걸음 참회의 자리라고 생각하며 힘 내겠다”
보월 스님 “탐심·집착·아집 모두 내려놓고 본래자리 찾아갈 것”

이날 순례단은 비하르주의 경계를 넘어 이번 인도순례의 첫발을 내디뎠던 우타르프라데시주로 복귀했다.
이날 순례단은 비하르주의 경계를 넘어 이번 인도순례의 첫발을 내디뎠던 우타르프라데시주로 복귀했다.

인도 속담에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신이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인도인은 집에 들어오는 개나 소, 염소라 해도 함부로 대하거나 내쫓는 경우가 없다. 동물에게도 이럴진대 사람에게는 오죽할까. 어느 집이나 불쑥 들어가도 환한 미소로 반겨줄 뿐 아니라 물과 의자를 내어주며 잠시 쉬어갈 것을 권한다. 오늘도 인도인들의 이런 마음이 꽃비가 되어 내리는 길을 걸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7일 두바울리야를 떠나 마다착, 마쵸아, 바하르커드를 거쳐 27일차 회향지인 삐뻐라까낙에 도착했다. 이날 순례단은 성도성지 보드가야, 전법성지 라즈기르, 사부대중이 완성된 바이샬리, 대열반의 시작 케사리야 등의 불적이 있는 비하르주의 경계를 넘어 이번 인도순례의 첫발을 내디뎠던 우타르프라데시주(유피주)로 복귀했다.

새벽 행선 중인 순례단.
새벽 행선 중인 순례단.
한국과의 경도 차이였을까? 인도의 음력 보름은 오늘인 듯 새벽 행선 길을 비추는 달은 보름인 어제보다 더욱 둥글고 밝았다.
한국과의 경도 차이였을까? 인도의 음력 보름은 오늘인 듯 새벽 행선 길을 비추는 달은 보름인 어제보다 더욱 둥글고 밝았다.
3시간여를 걸어 15km를 행선한 순례단은 비하르주의 마지막 마을인 마쵸아에서 아침 공양을 했다.
3시간여를 걸어 15km를 행선한 순례단은 비하르주의 마지막 마을인 마쵸아에서 아침 공양을 했다.

한국과의 경도 차이였을까? 인도의 음력 보름은 오늘인 듯 새벽 행선 길을 비추는 달은 보름인 어제보다 더욱 둥글고 밝았다. 3시간여를 걸어 15km를 행선한 순례단은 비하르주의 마지막 마을인 마쵸아에서 아침 공양을 했다. 새벽길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은 이틀 전 봉은사에서 보시한 컵라면이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어 마침내 바하르주와 우타르프라데시주 경계에 닿았다.

20여일 동안 순례단의 안전을 책임졌던 바하르주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쿠시나가르 입구인 삐뻐라까낙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더했다. 우타르프라데시주에 들어서자 지역 경찰과 대표, 주민들이 모두 나와 꽃을 뿌리고 음악을 연주하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삐뻐라까낙에서 쿠시나가르까지는 24km, 순례단의 하룻길이다.

새벽길의 허기는 이틀 전 봉은사에서 보시한 컵라면이었다.
새벽길의 허기는 이틀 전 봉은사에서 보시한 컵라면이었다.
평소 좋지 않았던 허리통증이 다리까지 내려와 힘겹게 걸음을 이어온 제민 스님이 이날 처음으로 부처님을 품에 안았다.
평소 좋지 않았던 허리통증이 다리까지 내려와 힘겹게 걸음을 이어온 제민 스님이 이날 처음으로 부처님을 품에 안았다.
아침 공양을 마친 순례단이 다시 힘을 내 행선하고 있다.
아침 공양을 마친 순례단이 다시 힘을 내 행선하고 있다.

쿠시나가르로 향하는 길, 병든 몸의 부처님은 나무 아래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을 찾으셨다. 그러나 아난다는 방금 500대의 수레가 지나간 흙탕물을 부처님께 올릴 수 없었기에 조금 더 이동해 카쿠타강의 물을 마시길 청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거듭 물을 찾으셨다. 아난다는 어쩔 수 없이 발우를 들고 냇가로 갔다. 그런데 수레에 의해 흙탕물이 되었을 것이라 여겼던 시냇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깨끗했다.

아난다가 물을 뜨러 간 사이 말라족의 아들 푸쿠사가 나무 아래서 쉬고 계신 부처님을 보고 찾아와 예경했다. 부처님은 열반을 앞두고 힘든 상태임에도 그를 친절하게 맞이한다. 그는 스승인 알라라까라마가 500대의 수레가 지나가는 혼란 속에서도 명상에 들었음을 이야기했다. 이에 부처님은 그저 고요 속의 명상이 아닌, 진정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사성제와 팔정도를 자세히 설명했다. 근기가 있었던 푸쿠사는 이를 바로 이해하고 곧바로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인도의 어린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회주 자승 스님.
박수로 순례단을 응원하는 주민들.
박수로 순례단을 응원하는 주민들.

500대의 수레가 지나갔음에도 시냇물이 맑았다는 내용은 부처님께서 이루신 깨달음의 본질을 상징한다. 모든 번뇌를 여의고 갈애로부터 벗어난 부처님은 500대의 수레바퀴에도 흐려지지 않는, 고요하고 여여한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셨다. 부처님의 첫 스승이었던 알랄랄까라마의 명상이 그저 세간의 번뇌를 잠시 끊고 고요함에 머무는 유한한 선정이었다면, 부처님의 깨달음은 절대로 흐려지지 않는 열반의 경지임을 시냇물로 상징하고 있음이다.

부처님께 귀의한 푸쿠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황금색 옷을 공양했다. 아난다는 그 옷을 부처님께 입혀드렸다. 하지만 유독 밝게 빛나는 부처님의 피부에 황금색 옷마저 빛을 잃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침내 바하르주와 우타르프라데시주 경계에 닿았다.
마침내 바하르주와 우타르프라데시주 경계에 닿았다.
우타르프라데시주에 들어서자 지역 경찰과 대표, 주민들이 모두 나와 꽃을 뿌리고 음악을 연주하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우타르프라데시주에 들어서자 지역 경찰과 대표, 주민들이 모두 나와 꽃을 뿌리고 음악을 연주하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아난다여! 여래는 두 가지 경우에만 특별히 여래의 피부색을 하얗고 청정하게 빛나게 하느니라. 그것은 어떤 때인가? 하나는 여래가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때이고, 또 하나는 여래가 남김없이 완전한 열반의 세계에 드는 때이니라. 아난다여! 이 두 가지 경우에는 여래의 피부색이 유달리 청정하여 하얗게 빛나게 되느니라.​ 아난다여! 오늘 밤 최후의 야분(夜分)에 쿠시나가라 근교 ‘역사(力士)가 태어났던 곳’인 사라나무 숲속의 한 쌍의 사라나무(娑羅雙樹) 사이에서 여래는 완전한 열반의 세계에 들 것이니라.​ 자, 아난다여! 우리들은 이제 카쿠타강으로 가자.”

대열반으로 향하는 최후의 선언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날 밤 대열반에 드셨다. 열반당의 부처님에게 금란가사를 공양하는 전통은 아마도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삐뻐라까낙에서 쿠시나가르까지는 24km, 순례단의 하룻길이다.
삐뻐라까낙에서 쿠시나가르까지는 24km, 순례단의 하룻길이다.

수문 스님은 이번이 16번째 인도 방문이다. 1998년 첫 성지순례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 기회가 되고 시간이 나면 바랑을 메고 보드가야로 향한다. 스님은 “부처님 성지, 특히 보드가야는 신심과 원력의 공간이자 불제자로서 새롭게 거듭나는 정진과 환희심, 간절함의 도량”이라며 “언제 이 길을 직접 걸어볼 수 있겠느냐는 마음으로 순례에 동참했다. 부처님의 길 위에서 신심과 원력이 살아있는 기도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좋지 않았던 허리통증이 다리까지 내려와 힘겹게 걸음을 이어온 제민 스님이 이날 처음으로 부처님을 품에 안았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아 마음으로만 함께했던 부처님 이운에 동참할 수 있어 기뻤다”며 “강화 적석사는 사부대중이 매일 팔만대장경의 경전명을 기록한 전장법회를 통해 참회의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내가 내딛는 걸음이 전장법회의 연장이고, 사부대중이 마음을 모으는 자리라고 생각하며 더 힘을 내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마을마다 주민들이 순례단을 환영했다. 
마을마다 주민들이 순례단을 환영했다. 

보월 스님은 부처님께서 왜 이곳에서 태어나 깨달아 법을 전하고 입멸했는지를 사유하며 걷는다고 했다. “뿌리 깊은 계급제도로 인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도의 모습에서 부처님께서 이곳을 선택하신 이유를 조금은 짐작하게 됐다”며 “출가해 승복을 입었지만 권위에 젖어 사람 귀한 줄 모르고 탐심과 집착, 아집만 키웠다. 이 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본래 자리에서 스님답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삐뻐라까낙 학교에 마련된 숙영지에는 텐트 위 천막이 드리우고 바닥에 카페트가 깔렸다. 오랜만에 그늘과 흙먼지 없는 숙영지를 보며 순례단은 주민들의 배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박수로 화답했다.

삐뻐라까낙 학교에 마련된 숙영지에는 텐트 위 천막이 드리우고 바닥에 카페트가 깔렸다.
삐뻐라까낙 학교에 마련된 숙영지에는 텐트 위 천막이 드리우고 바닥에 카페트가 깔렸다.
그늘과 흙먼지 없는 숙영지를 보며 순례단은 주민들의 배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박수로 화답했다

순례단은 3월8일인 내일 24km를 행선해 쿠시나가르에 닿는다. 그곳에는 부처님의 법체를 다비한 다비장과 열반상을 모신 열반당이 있다.

“아난다야, 등이 아프다. 등 좀 주물러다오.”

천이백오십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쿠시나가르로 향했던 부처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헌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열반으로 향하는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내일 쿠시나가르에서 보게 될 것이다.

삐뻐라까낙=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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