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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결사 인도순례 29일차] 열반당 부처님 앞에서 ‘세상에 이익 주는 불교’ 발원

3월9일 쿠시나가르 열반당서 ‘열반지 기도법회’ 봉행
‘석가모니불’ 장엄염불 속 순례단 감격의 눈물 더해져
“중생계 다하고 허공계 다해도 발심 원력 안 물러날 것”
열반당 가네시와르 스님, 자승 스님에 진신사리 보시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9일 쿠시나가르 열반당 앞 광장에서 ‘열반지 기도법회’를 봉행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9일 쿠시나가르 열반당 앞 광장에서 ‘열반지 기도법회’를 봉행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의 공덕으로 저희의 부족한 면이 변화되고, 더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는 전환점 되기를 발원합니다. 가는 곳마다 수행하고 봉사하며 생활불교, 자립불교, 세상에 이익을 주는 한국불교가 되길 발원합니다. 중생계가 다하고 허공계가 다 할지언정 저희의 발심 원력이 물러나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 나무석가모니불.”

부처님께서 두 그루 사라나무 아래서 적멸에 든 바로 그곳, 열반당 앞에 순례단이 가지런히 섰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9일 쿠시나가르 열반당 앞 광장에서 ‘열반지 기도법회’를 봉행했다. 순례단은 하루 전 쿠시나가르에 도착해 부처님의 법체를 다비한 람바르스투파를 참배했다. 그리고 이날은 드디어 부처님께서 적멸에 든 열반당에 들었다.

하루 전 쿠시나가르에 도착해 부처님의 법체를 다비한 람바르스투파를 참배한 순례단은 이날 부처님을 선두에 모시고 열반당을 참배했다. 
하루 전 쿠시나가르에 도착해 부처님의 법체를 다비한 람바르스투파를 참배한 순례단은 이날 부처님을 선두에 모시고 열반당을 참배했다. 
 고운사 회주 호성, 청계사 주지 성행, 도선사 주지 태원, 개운사 주지 보림 스님, 이영경 동국대 WISE캠퍼스 총장을 비롯한 신도 등 300여 불자들이 열반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법회까지 함께하며 순례단을 격려했다.
고운사 회주 호성, 청계사 주지 성행, 도선사 주지 태원, 개운사 주지 보림 스님, 이영경 동국대 WISE캠퍼스 총장을 비롯한 신도 등 300여 불자들이 열반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법회까지 함께하며 순례단을 격려했다.

법회에 앞서 순례단은 열반당 안에 누워 계신 부처님께 올릴 6m가 넘는 황금빛 가사를 조별로 넓게 펼쳐 들고 경건하게 들어섰다. 그리고 부처님의 법체를 덮는 가사를 차례차례 올렸다. 순례단이 가사 공양을 올리는 동안 열반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염송하는 염불 소리와 함께 부처님의 열반을 직접 목도하는 듯한 감격과 눈물로 숙연했다.

순례단이 올린 가사에는 ‘한국불교 중흥발원’ ‘상월결사 정진발원’ ‘차별없는 세상발원’ 등 순례단이 부처님 성지를 두 발로 순례하며 서원했던 순례단의 다짐들이 적혀 있어 이날 공양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이윽고 순례단 모두는 지극정성으로 ‘신묘장구대다니’를 독송했다. 가사에 담은 발원들이 반드시 성취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독송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순례단은 열반당 안에 누워 계신 부처님께 올릴 6m가 넘는 황금빛 가사를 조별로 넓게 펼쳐 들고 열반당으로 향했다.
순례단은 열반당 안에 누워 계신 부처님께 올릴 6m가 넘는 황금빛 가사를 조별로 넓게 펼쳐 들고 열반당으로 향했다.
순례단은 ‘신묘장구대다니’를 독송하며, 한국불교중흥의 원력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처님께 가사를 공양했다.
순례단은 ‘신묘장구대다니’를 독송하며, 한국불교중흥의 원력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처님께 가사를 공양했다.

열반당 앞마당에서는 기도법회가 봉행됐다. 이날 법회에는 순례단뿐 아니라 한국에서 찾아온 많은 스님과 불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고운사 회주 호성, 청계사 주지 성행, 도선사 주지 태원, 개운사 주지 보림 스님과 이영경 동국대 WISE캠퍼스 총장을 비롯한 신도 등 300여명의 불자들이 열반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법회까지 함께하며 순례단을 격려했다.

사회를 맡은 총도감 호산 스님은 “순례단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길에 오른 지 오늘로 29일이며 총 이동거리는 689km”라며 “인도 현지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환희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하고 정진하며 방일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가슴에 새기며 다시 한번 일심 정진의 의지를 다지자”며 힘을 불어넣었다.

순례단을 대표해 법원 스님이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낭독했다.
순례단을 대표해 법원 스님이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낭독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남긴 마지막 유훈이자 당부를 법원 스님이 순례단을 대표해 낭독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내가 열반한 후에 그동안 설한 가르침이 곧 스승이 되어줄 것이다.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동하라. 수행자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불제자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화합할 것이요, 물 위에 기름처럼 겉돌지 마라. 함께 내 교법을 지키고 함께 배우며 함께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도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법회에는 순례단뿐 아니라 한국에서 찾아온 많은 스님과 불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법회에는 순례단뿐 아니라 한국에서 찾아온 많은 스님과 불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진오 스님이 참회와 발심의 내용을 담아 직접 작성한 발원문을 낭독했다.
진오 스님이 참회와 발심의 내용을 담아 직접 작성한 발원문을 낭독했다.

이어 순례단을 대표해 진오 스님이 참회와 발심의 내용을 담아 직접 작성한 발원문을 낭독했다. 스님은 “이른 시간부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따가운 햇살에 인도순례를 너무 쉽게 생각했음을 참회한다. 소통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주장만 내세움을 참회한다”며 “마음의 가난을 느꼈고, 부처님 유적지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음을 뉘우친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걷지 않았다면 이론으로 헤아릴 경전을 몸으로,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어 감사하다”며 “부처님의 부모님 같은 유훈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님의 발자취 따라 온 저희 순례단과 언론매체로 동행하는 불자들이 비록 먼 곳에 있더라고 부처님과 함께 심장이 뛰기를 발원한다”고 말했다.

기도법회는 대변인 종호 스님이 부처님 열반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스님은 “부처님께서 마지막 25일 동안 말씀한 내용을 정리한 게 ‘열반경’이고, 이 ‘열반경‘의 핵심은 법신은 생멸변화하지 않고 항상하며 모든 중생은 부처의 성품인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 모두 스스로의 불성을 발견해 부처의 모습, 부처의 마음, 부처의 말씀, 부처의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하는 열반을 구현하자”고 당부했다.

열반당을 책임지는 가네시와르 스님이 회주 자승 스님에게 부처님 진신사리와 열반상을 보시하며 순례단의 남은 여정을 축원했다.
열반당을 책임지는 가네시와르 스님이 회주 자승 스님에게 부처님 진신사리와 열반상을 보시하며 순례단의 남은 여정을 축원했다.
자승 스님은 가네시와르 스님에게 세계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 반야심경 경판과 죽비를 선물하며 감사를 표했다.
자승 스님은 가네시와르 스님에게 세계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 반야심경 경판과 죽비를 선물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날 법회에는 열반당을 책임지는 가네시와르 스님이 함께했다. 가네시와르 스님은 회주 자승 스님에게 부처님 진신사리와 열반상을 보시하며 순례단의 남은 여정을 축원했다. 자승 스님은 가네시와르 스님에게 세계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 반야심경 경판과 죽비를 선물하며 감사를 표했다.

남북으로 길게 놓인 열반당은 건물 정면과 측면에 각각 둥근 창문이 있고 그 아래로 건물을 떠받치는 네 개의 기둥이 서 있다. 1927년 미얀마 불자의 보시로 지은 것으로 1956년 인도 정부가 수리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열반당 뒤편에는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높이 55m의 대열반탑이 있다. 이 탑 역시 발굴 당시 심하게 훼손돼 있던 것을 미얀마 스님들이 1927년과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고 증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실상 신축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1900년대 이전까지도 열반지는 황량하고 허물어진 유적지에 불과했다. 4세기 초 이곳을 방문했던 중국의 법현 스님은 “성의 북쪽 쌍수 사이 희련하(希連河·히라냐바티)에 세존께서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반열반에 드신 곳과 수밧타가 최후에 득도한 곳, 금관에 모신 세존을 7일간 공양한 곳, 금강역사가 금강저를 놓은 곳, 여덟 왕이 사리를 나눈 곳에 모두 탑과 승원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또 200여 년 후 이곳에 도착한 현장 스님은 “벽돌로 만든 큰 정사 안에 여래의 열반상이 있다.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누워 있다. 옆에 아쇼카왕이 세운 스투파가 있다. 기단은 허물어져 기울고 있으나 높이는 아직도 200여척(약65m)이 된다. 옆에 돌기둥이 세워져 있고 ‘여래가 적멸(寂滅)한 사적’이라고 적혀 있는데 글은 있으나 적멸한 날짜는 적혀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때 인도의 불교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음이다.

8세기 신라의 혜초 스님은 배를 타고 왔다. 그리고 첫 번째 예배한 장소가 쿠시나가르였다. 이미 폐허가 된 쿠시나가르를 보면서 혜초 스님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한 달 뒤에 쿠시나가르에 도착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곳이다. 성은 이미 황폐해져서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자리에 탑을 세워 두었는데 스님 한 분이 그곳을 청소하면서 물을 뿌리고 있다. 해마다 팔월 초파일이 되면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도인과 속인들이 탑 있는 곳에 모여 크게 공양을 베푸는 행사를 치른다. 탑이 사방에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다. 매우 거친 숲만이 남아있다. 주위 사방으로 사람이 잘 가지 않는 곳에 거칠게 우거진 숲이 있다. 탑으로 예배를 하러 가는 자들이 무소나 호랑이에게 해를 입기도 한다고 한다.”

지금의 열반당은 옛 스님들이 방문했던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유적은 잘 보존되고 있으며 비록 시골이긴 하지만 주변에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오늘 순례단이 부처님께 올린 가사 공양은 부처님의 열반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게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인도에 불교가 되살아나고,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반드시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겠다는 서원이었다. 법신이 되신 부처님께서는 듣고 계시리라.

눈시울을 붉어진 비구니스님들을 위로하려는 듯 하얀 개 한마리가 나타나 스님들과 눈을 맞추고 있다. 
눈시울을 붉어진 비구니스님들을 위로하려는 듯 하얀 개 한마리가 나타나 스님들과 눈을 맞추고 있다. 
열반지 기도법회 중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순례단 정유림 불자. 
열반지 기도법회 중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순례단 정유림 불자. 

쿠시나가르=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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