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배에게 8·15의 추억은 귀찮은 학교 소집일로 남아있다. 늦잠과 게으름에 이골이 난 터에 이날은 꼭 학교엘 가서 광복절 기념식을 마치고 출석점검을 받아야만 했던 날이었다. 친척집에라도 가있을 때면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의 기념식전에 참석하고는 출석증명서를 받아가야만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광복절 기념식엘 좇아 다녔으면서도 막상 그때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가 하고 되돌아보니 애국가와 광복절 노래를 불렀던 것 말고는 별다른 기억도 없다. 그토록 우리를 들볶아 귀찮게 기념식으로 내몰았던 교사들이 일제 때도 역시 교사의 신분으로 꽤나 열성들여 유창한 일본말로 “천황폐하를 위하여 반도의 학생을 계몽”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 자란 뒤였다. 홍수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
화 염 길 박찬 지난 겨울 화염산을 다녀왔네 붉게 익다 못해 검게 타들어가는 화염산을 지나며 천축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을 수많은 사람을 생각했네 한여름 지표 온도 80도, 지글거리는 화염을 온통 받으며 먼저 간 사람들의 하얀 해골을 이정표 삼아, 붉은 먼지밖에 일지 않는 화염길을 호올로 걸어가는 머리 위로 불길 날름대는 하늘 까마귀도 해 비껴 날으는 곳 시집 《화염길》
불교를 건학 이념으로 하는 조계종립 동국대는 훼불로부터 안전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동국대에 재학 중인 스님이나 학생들에 따르면 대형 훼불을 제외한 ‘화장실 벽에 스님과 불교를 비방하는 내용의 낙서’나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 및 폭언’ 등 생활 속에서의 훼불은 집계조차 어려울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6월 5일 새벽 5시께 동국대 서울캠퍼스에서 일어난 ‘석가모니청동불상 십자가(十) 훼불’을 계기로 동국대 서울-경주캠퍼스 석림회와 본지가 지난 88년부터 2000년 6월 현재까지의 훼불 사건을 각각 조사해 집계한 결과, 지난 10여 년간 해마다 대형 훼불 사건이 한 건 이상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92년 이후에는 97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이교도들에 의한 훼불이
△88년 12월 경주캠퍼스 - 도서관 정각원 방화로 전소. △92년 경주캠퍼스 - 전소 후 다시 조성된 정각원 선실 방화 재발. △93년 7월 23일 밤 11시 30분 경주캠퍼스 - 정각원 방화 미수. 정각원 건물 뒷편의 보일러와 인접해 있던 승용차를 대상으로 방화가 8월 23일 잇따라 발생. △94년 10월 31일 서울캠퍼스 - 본관 앞 불상에 걸터 앉아 있는 국문과 학생 7명이 이를 나무라는 교수 스님을 집단 폭행함. 스님 전치 15일 진단. 3명 제적, 4명 무기정학 일단락. △94년 서울캠퍼스 - 제등행렬에 쓰일 코끼리 장엄물 방화. △ 95년 경주캠퍼스 - 기숙사 법당 방화. △95년 4월 28일 새벽 서울캠퍼스 - 제등행렬에 쓰일 예정이던 코끼리 장엄물 화재 전소
"원(願)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오. 원을 이루려는 노력은 훌륭한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아름다우며 그런 이들이 모이면 신나는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정토포교원을 세워 신행운동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한국불교환경연구원을 설립해 환경 이론의 불교적 대안을 창출하는 성과를 일으켰으며, 최근에는 부처님의 땅 인도에서 교육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실천적 종교인 법륜스님이 `신나는 세상만들기'를 수상집같지 않은 수상집을 통해 제창하고 나섰다. `발상의 전환', 법륜스님은 이것이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열쇠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의 이름을 《그냥 살래? 바꾸고 살래?》라는 다소 옥죄는 듯한 뉘앙스를 주는 쪽으로 정한 것같다. 어쩌면
질문-모든 종교는 그 나름대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가르치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잘 납득이 가지를 않아 질문을 드립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요.(김천시 모암동:김정호) 대답-질문하신 내용은 《육조단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즉 육조혜능(六祖慧能)스님께서 스승인 오조홍인(五祖弘忍)스님으로터 의발(衣鉢)을 전수받고 전법의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신수(神秀)스님의 제자인 혜명 스님이 의발을 빼앗고자 뒤쫓아 갔으나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육조스님에게 법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육조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선악 그 어느쪽도 생각하지
조계종 총무원은 문화체육부의 협조를 얻어 오는 1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조계사에서 경주 나원리 5층석탑과 용당리 감은사 동탑(3층석탑)에서 출토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 친견법회를 봉행한다. 그리고 친견법회를 마친 사리는 새로운 장엄구(莊嚴具)에 안치하여 8월과 9˙10월에 복원되는4원리 5층석탑과 감은사 동탑에 각각 봉안될 예정이다. 문화체육부가 불교도의 염원을 수렴하여 사리친견법회에 협조한 것은 백 번잘한 일이다. 그러나 보다 더 잘하는 것은 사리를 불교계에 완전히 돌려주는 것이다. 다 아는 바와같이 사리는 부처님의 유골과 고승대덕의 유물로서 불교도에게 있어서는 예배의 대상이지만 정부로서는 소유하거나 관리할 아무런 의무가 없기 때문에 불교계에 돌려주는 것이 순리이다. 또 정부 이
해남 땅끝 마을에 자리한 달마산 미황사에서 지난 11일 제1회 작은 음악회 ‘달이랑, 별이랑, 사람이랑’이 열렸다. 수원, 광주, 경북 등 전국에서 찾아온 6백여 관객들과 대둔사 주지 보선 스님, 일지암 주지 여연 스님 등이 자리를 함께 한 이날 음악회는 아주 별난 제목처럼 많은 별과 밝은 달, 그리고 달보다 별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아래에서 모두 함께 주인공이 되었다. 음악회는 미황사가 자랑하는 남해 바다의 노을 감상, 참가 대중의 저녁 예불 후 시작됐다. 가수 한치영 씨가 아들과 한 무대에 서서 노래를 선사하고 박남준, 김태정, 김경윤 시인이 시낭송을 했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땅끝 마을에 사는 가객들이 선보인 무대. 절 아래 마을의 대표 소리꾼 정기열, 박용금 옹, 최옥란
인문학 맥락에서 불교탐구…특유의 논리 돋보여 일지(一指) 스님 지음 해인사출판부 펴냄 가는 곳 곳곳마다 주인이 되라 -임제, 《임제록》 《떠도는 돈황》(해인사 출판부, 1993)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떠도는 돈황》의 부제는 `불교문학과 선으로 본 오늘의 불교인문주의'이다. 나는 이 책에서 사용한 `불교인문주의(佛敎人文主義)'라는 용어를 항상 애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얼마나 반(反)인문주의적인 풍토에서 씌여진 책이기에 가히 인문주의의 정점인 불교가 스스로 인문주의임을 강변하고 있다니 아하, 그 얼마나 가슴쓰린 단어라는 말인가. 선과 화엄, 중국문학, 때로는 교계와 우리 사회의 현안들을 연속적인 과제인식으로 삼고 있는 이 책의 원고들은 주로 월간
대한불교진흥원이 발행하는 교계 유일의 종합 학술정보 잡지 계간 《다보》 통권 18호가 나왔다. 이번호에서는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도선 스님의 삶과 풍수를 다룬 특집이 돋보인다. 김승호 동국대 강사의 `도선 스님의 삶과 풍수지리의 현대적 조명'과 이철교 동국대 경주캠퍼스 사서과장의 `도선 및 풍수 관계논저 종합색인'이 마련됐다. 특히 `종합색인'편은 `풍수지리의 대가'로 인식돼 온 도선 스님의 행적과 선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도서목록을 국내에서 발표된 논저를 중심으로 1천2백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기획으로 평가된다. 지상논쟁란에서는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한 조선왕조의 건국으로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정도전과 함허 득통 스님의 유불관(儒佛
대둔사는 전남 해남 대흥사의 옛이름이다. 순 우리말로는 "한듬절"이다. 최근 이 절은 옛이름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대흥사라는 이름을 일제가 강제로 사용케 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 하겠다.대둔사는 《동다송》과 《다신전》의 저자인 해동다성 초의聖대사와 일지암으로도 유명하지만, 서산대사가 의발을 남긴 곳으로도 이름이 높다. 전하는 말로는 서산대사가 이곳을 일러 "삼재(삼재)가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며, 만년(만연)간 부서지지 않을 땅"이라고 했다 한다. 그래선지 대둔사가 자리한 두륜산은 산세가 매우 독특하다. 도량에 들어서면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그려면서도 신기하게도 동쪽과 서쪽에는 재가 있어 해가 일찍 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