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등록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판이 시작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헌정사 속에서 선거판을 돌이켜 보면 굴절된 정치문화가 판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공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이데올로기, 정경유착 등이 야합한 금권·관권선거가 난무하였다.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여전히 후진성에 안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후진적인 정치풍토는 자신의 당적을 순식간에 바꾸는 '철새정치인' 마저 양산해 왔고, 서구적인 정당정치가 뿌리내릴 수 없도록 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정치수준이 이처럼 후진적·야만적 모습에 머물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책임이 크다. 민주주의적 이성에 입각하기보다는 정치세력들이 형성해온 정치적 상징조작에 쉽게 휩쓸린 것이 지금과 같은 후진적 정치문화로 이어졌다는
불교 성산인 영축산이 아예 폐허로 변했다. 허리가 움푹 패여 시름에 젖어 있다. 나무와 돌, 풀을 파헤쳐 돈을 벌겠다며 양산시와 개발업자가 똘똘 뭉쳐 영축산 중턱 1만 3000여 평을 마구 훼손해 이젠 본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앙상하게 그 속을 드러내고 있다. 1년여간 산을 파고 부수어 완전히 복구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통도사 대중들은 현재 양산시에 완전 복구와 함께 더 이상의 개발은 안 된다며 공사 중지를 요청한 상태이다. 영축산을 훼손하는 일은 비단 이 산이 불교 성지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자연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털끝만큼의 훼손도 없이 고스란히 돌려주어야 할 자원이라는 이유도 함께 있다. 영축산은 우리 불자들이라
독자 여러분이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조계종 포교원은 올해를 '군 포교 진흥의 해'로 지정했었다. 포교원과 군불교위원회가 지난달 26일 군불교 진흥을 기원하며 개최한 후원의 밤은 불자들의 군 포교 활성화에 거는 기대와 지원이 구두선으로 그치지 않을 것임을 그나마 확인 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여간해서는 주머니를 열지 않는 깐깐한 이들이 이 날 만큼은 흔쾌히 보시금을 내는 모습을 보며 제대로 공부한 불자들은 역시 마음씀씀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각 종교계가 군복무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포(선)교 행위에 주력하는 근본적인 이유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불교는 여기에 한가지가 더 추가된다. 어린이포교-청소년포교가 아무래도 취약하다보니 많은 젊은 세대들이 입대 후 군법당을 통해서 비로소 불교와 만나게
'깨침의 소리 나누는 기쁨' 불교방송이 '비난의 잡음, 나 홀로 방송'으로 추락하고 있다. 불교방송은 인터넷 홈페이지 청취자게시판이 낮 12시대에 방송되는 간판프로그램 '백팔가요'의 진행자를 둘러싼 네티즌들의 무차별 '싸움판'이 되면서 해당 게시판을 폐쇄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비난으로 채워지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마침내 '폐쇄'라는 불행한 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본지 682호 보도〉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번 사태를 대하는 불교방송의 태도이다. 불교방송은 분명 피해자이며 이 피해는 비단 불교방송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교계와 청취자들에게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기보다는 게시판을 폐쇄하는 소극적 방법으로 청취자의 귀를 막아버린 불교
인간의 냉혹함이 보일 때 온몸에 가득찬 분노가 뻥뚫린 가슴에 서서히 타오르며 그분은 나에게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심어주었다 절대적이고 맹복적으로 당신을 외쳤을 적에 무엇인가 나에게 다가와 겁주며 휘감으로 속삭인다 거기에 허덕이며 낮은 신음소리를 내어 멍청하게 넋을 읽고 새로운 번뇌가 자리잡았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 쭉쟁이 같이 빈껍데기만 두른 삶을 정리하고 싶어 현실의 외로움이 가슴 밑바닥에 자리잡은 가슴앓이에 흐느끼며 고통의 사연을 지워버릴려고 손톱이 찢어지랴 염주알을 헤아려야 했다 자성을 슬프게 부러들인 것은 측은한 결심을 낳고 배덕(背德)을 느끼며 강철같은 결심을 한쪽 구석에 몰
부처님 친설 고집은 시대착오적 주장 ‘잡다한 신앙’치부는 대승의 참뜻 외면한 탓 본지 3월 20일자(648호) 16면에 게재됐던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의 ‘대승의 다신적 신앙, 불설과 모순’이란 제목의 기고문에 대해 불교저술가인 진현종 씨가 다시 반론을 보내왔다. 이에 대한 의견이나 또 다른 반론이 있다면 다음 호에 게재한다.(편집자) 홍사성 선생의 반론에 이견을 제시하기 앞서 용어 문제를 짚어본다. 김용표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가 먼저 제시하고 홍 선생이 그대로 답습한 ‘역사주의’라는 말은 ‘실증주의’ 혹은 ‘역사적 실증주의’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홍 선생이 지금까지 역설하신 모든 주장은 ‘서구학자들이 실증주의와 합리주의에 입각해 구성한 초기
저는 초등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는 초보 불자입니다. 초등학교에 몸을 담고 있을 때는 그 절실함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는데 전문직에 나와 여러 학교, 특히 다양한 학교를 살펴보면서 안타까움이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부처님말씀을 기본으로하고 한국적 사고와 가치를 바탕으로 한 ‘우리 학교’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를 세웁시다. 부처님의 말씀을 근본으로 하고 한국적 교육정서에 맞으며 우리식 교육을 하는 초등학교를 세우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언제 학교가 세워질지는 모르지만 우리 후대에서 개교를 하더라도 ‘우리 학교’를 세워 대한민국 교육의 나아갈 바를 알리는 모범적인 학교로 만들어 가기를 희망합니다. 산속에 불사도 중요하고 다양한 불교 행사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철선사는 근세 우리나라 불교계의 특출한 선지식이었다. 산청 단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단성일대의 한학자들에게 노자·장자의 사상을 질문하고 산청 일대에 신동으로 아무도 상대를 아니하여 가르치려고 하는 한학 선생이 없었다. 일본 선생의 추천으로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영어 공부를 하여 서양철학을 배우고도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지 못하고 2∼3년이란 세월을 지나 고국에서 모친의 신병을 듣고 관부연락선을 타고 생을 마칠 생각도 내었으나 참고 모친의 안질병을 전남여수로 가서 고쳐드려 아들로써의 보답을 하셨다고 한다. 당시 진주 대원사 주지로 있던 오호산 스님은 신동이신 이영주(성철 스님)를 대원사로 초청해 휴양을 권해 대원사로 가서 사리탑전에 있게 됐다. 무서움이 많아 저녁에는 100m가 넘는 절 화장실도 혼
이천만 불자들은 이번 홍제동 화재 참사로 순직하신 여섯분의 소방관 여러분의 명복을 발원합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살신성인하는 모습은 각박한 시대에 참으로 존귀한 모습이었으며, 종교인들에게 조차 자신의 생활들을 반성하게 하는 보살행(菩薩行)이었습니다. 순직하신 분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있는 개인주의와 물신주의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불교의 자비와 보살의 실천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천만 불자들은 순직하신 소방관 여러분의 극락왕생을 부처님 전에 발원하며, 우리 모두가 그분들의 보살행을 본받아 서로 하나되어 남을 아끼고 서로 돕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것입니다. 또한, 소방관 여러분들처럼 남을 위해 봉사, 희생하는 분들이 좀더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이 시행되어야
‘나눔의집’ 전 원장 혜진 스님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가 지난주 종결되면서 사건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초기부터 담당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최영애 소장의 태도는 이번 사건을 정확히 조사해 마무리지을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최 소장은 혜진 스님의 양심 고백에 대해 이번 사건을 ‘성폭력의 전형’이라고 단정하며 ‘성적 위안부화’라는 발언을 공공연히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건의 진위를 밝히겠다고 공언한 시민단체의 책임자가 어떻게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건을 단정하는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거세게 일어났다. 일부에서는 최 소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며 잘못이 지적되는 부분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
올해 3월부터 시작한 3차 통합 연수와 해당 사찰에서의 2차 추가교육을 마친 템플스테이 자원봉사자들은 우려와 기대 속에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지만 사찰 투숙 인원은 예상을 훨씬 밑돌았다. 템플스테이 참여가 저조한 첫째 원인으로 꼽힌 것은 홍보 부족이다. 신문에서는 예산이 9000여만 원이었기 때문에 역부족이었다고 분석했지만 잘 안되면 예산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편의적인 진단일 뿐이다. 홍보예산이 적었다는 따위의 얘기는 오로지 봉사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손수 교통비 들여가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어디 다른 나라 얘기이다. 그러니 예산이니 홍보니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현장에서 뛰면서 느낀 점과 개선책을 제시하고 싶다. 우선 참여율이 저조했기 때문에 이번 프로그
올해 불교학계의 가장 굵직한 행사의 하나였던 ‘한일 공동 인도학불교학 학술대회’가 막을 내리면서 그 성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긍정적인 측에서는 대규모 국제학술대회를 국내에서 유치함으로써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됐으며, 세계 불교학의 흐름도 알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비판은 이번 행사가 일본의 학술대회 장소를 단지 한국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이번 행사는 한·일 두나라의 공동 개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 쪽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점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비록 한일 공동학술대회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일본’ 인도학불교학회 제 53회 학술대회라는 타이틀로 진행됐다. 아무리
"맥빠진 대응이 빌미 줬다”지적도 정부가 불교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산 관통도로와 천성산-금정산 구간의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터널 공사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월 11일 오전 북한산 관통도로 반대를 위한 송추 농성현장에서 승복 차림의 폭력배 150여 명이 농성장 법당인 철마선원을 침탈하기 위해 집결한 가운데 LG 건설 직원들이 공사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했는가 하면 불교세가 강한 부산 지역에서 한나라당의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 6·13 지방자치단체-광역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안상영 부산시장은 7월 2일 취임식에서 “금정산 고속철 건설을 조기에 착공하겠다”고 밝혀 후보 때의 대 불교공약을 사실상 파기했다. 또 지난 6월 11일 오후 건설교통부 관계자가 청와
눈을 감으면 아직도 불안한 마음으로 거리에 서있는 꿈을 꾼다. 갑자기 길이 사라지고 낭 떠러지가 나타나기도 하고 커다란 거인이 앞을 막고 있는 꿈을 꾸기도 한다. 거리는 쓰레기로 덮여 있고 여기저기 달리는 차에 치어 피 흘리는 짐승들의 모습도 보인다. 깨어나도 한동안 가슴이 두근거린다. 산중에 은거하던 수행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전단을 뿌리며 거리를 걸어야 할만큼 환경은 무너져 있고 시민들은 대체로 무관심하다. 결제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5명의 스님들이 25일 동안 추운 거리를 걸어 올라가 고속철도 관리공단 이사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우리가 들어야 했던 이야기는 “천성산의 이야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냉담한 반응이었고 “늦어도 6월부터는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포교사 배출문제의 발단은 대략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우리 종단에서 금년에 개정 시행하고 있는 '신도전문 교육 시행령'은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급속한 사회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고 있다. 종단만의 입장에서 승가의 눈높이로 개정한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아비달마식 교리 강화교육은 재가 전법사는 명기만 해 둔 채 사실상 종단 승려만이 교수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방의 여건은 고려치 않은 입학·졸업 정원의 규제화나 정규대학보다 강한 출석의무 규정, 종단 신도만의 입학자격 제한 등 여러 가지가 재가의 입장에서 보면 지원은 없고 통제만 하는 식의 관련 법규 개정이다. 법안의 당초 기조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시행성의 유지조차 우려되는 부분이다. 둘째, 작금의 법 개정
"예수쟁이 사회자 설쳐도 되는가 걱정 연꽃 든 불자들 환영에 근심 사르르" 날마다 도끼를 들고 산골짝을 헤매고 다니시는 스님이 계셨다. 산아래 사람들은 이 해괴한 일을 놓고 소곤거렸다. "요새 스님 얼굴이 확 피어 부렀드라고. 도끼로 노루 사슴을 잡아 잡수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음 그렇게 얼굴이 좋아지실 리 없지." 하루는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스님의 뒤를 몰래 밟아보게 되었다. 스님은 늦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옹달샘의 얼음을 도끼로 깨뜨리고 계셨다. 목마른 노루 사슴에게 샘물을 길러주신 스님. 나에게 증심사 일철스님은 도끼스님만 같은 분이시다. 종교의 집안이고 시민사회 단체의 주소고 뭐고 따지지 말고 이 나라 남쪽 백성들의 어머니인 무등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
스님은 1944년 미국에서 태어나 클레에몬트 그레듀에이트 스쿨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84년부터 부디스트 퍼블리케이션 소사이어티 회장을 맡고 있다. 보디 스님이 ‘환경파괴와 게놈해석’에 대해 한국불자들에게 보내온 메시지를 요약 게재한다. 30년 간 세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급진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느슨한 공동체의 관계를 유지해 오던 연방주들은 매우 빠르고, 신속한 교통수단과 통신 기계들에 의해 세계적 공동체로 변하게 됐다. 오래된 경계선이던 시간과 공간은 사라져 버렸다. 이 상황은, 우리를 자기 이해의 새로운 전망에 직면케 하고, 우리 인간이 공동 숙명을 짊어져야 하는 힘든 현실을 강요하게 됐다. 특히 계층, 국가 민족, 또는 종교들은 지금은 허황된 말이 되고 말았다. 같은 지구
훈 할머니! 훈 할머니! 훈 할머니! 이렇게 훌쩍 이역만리 타국에서 돌아가셨군요. 할머니의 비극적인 삶을 근세 민족의 고통과 개인의 불행을 한 몸에 안은 삶이셨습니다. 지난 1998년 9월 영구 귀국 때 저는 할머니 돕기 후원 회장으로 대구 공항에서 할머니를 맞이했고 저희들이 마련한 경산시 백천복지관 앞 아파트에서 손녀 잔이와 함께 잃어버렸던 고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해 부처님 오신날 영천 은해사에서 가진 환영 법회에 수천의 불자들의 환영에 감격해 하시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꽃다운 18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뒤 훈 할머니가 겪은 굴곡 많은 인생역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비극을 한 마디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위안부로 갖은 고초를 겪
장군님께! 먼저 장군님께 사과 드립니다. 불자의 한사람으로 장군님께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한다는게 송구스럽습니다. 장군님! 힘내십시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러나 불보살님은 아실겁니다. 장군님의 정직함을 지금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불보살님은 인정하고 계시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종단에서 아무도 힘써 주지 않는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요. 이제는 스님네들의 가르침이 말법시대가 도래하여, 참 선지식을 어디가서 찾겠습니까. 부처님이 사바세계를 떠나시며 이르신 말씀을 되새기면 그 가르침이 오히려 천스님, 만스님의 법문을 듣는것보다 더 장군님께 힘이 되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부처님의 진리를 등불로 삼아 살아가라시던 부처님의 가르침이, 부처님의
최근 궁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느낌이다. 한국방송공사의 대하드라마 태조왕건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그 여파가 여러 분야에서 다각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혀 생소했던 종간과 같은 여러 인물들이 친숙하게 다가서고 있다. 궁예 불교에 관해서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교 부분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예 불교의 잔학성에 대해 의문이다. 과연 궁예의 ‘미륵관심법’은 비정상적인 광신적 현상이었을까? 실제로 『삼국사기』 등의 문헌에 나오는 미친 궁예에 관한 기록을 그대로 믿어도 좋을까? 이러한 의문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고문헌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찬자의 주관적 요소가 있으므로 그러한 점을 고려해서 믿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궁예와 같은 인물에서는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