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대표사찰이자 말사를 관장하는 본사 주지 소임을 보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들이 많다. 절 안의 대소사도 챙겨야 하고 지역 사정도 살펴야 하며 종단의 현안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본사주지로서 어쩌면 당연한 의무일 수 있다.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선운사가 문화와 복지, 수행과 포교의 도량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모든 대중들이 마음을 모아 달려가고 있지만, 숨을 돌리며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지 못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신년이 되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찰경영이다. 그간 선운사는 노후수행마을 조성, 불학승가대학원, 사회복지관 운영 등을 하면서 수행과 함께 지역포교를 위한 투자를 해왔다. 많은 불자들의 지지와 격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어처구니없는 정부라는 생각을 한 지는 꽤 되었지만, 특히 요즘은 인터넷이나 신문을 볼 때마다 얼마 안 남은 어처구니들마저 자꾸자꾸 사라진다. 청와대와 여당 국회의원 비서관들이 모여 돈을 주고받으며 선거관리위원회를 디도스로 공격하는 모의를 하고, 누가 봐도 뻔한 그 사실을 경찰이 앞서 감추고 은폐한 것에 비하면, 그걸 엄정수사하겠다던 검찰이 “누가 시킨 건 아니었다더라”는 수사결과를 내놓은 것은 차라리 누구나 예상하던 모범답안이었다. 그러나 트윗에다 쓴 ‘농담’ 혹은 ‘패러디’를 문제 삼아 1월11일 사진작가 박정근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것은 다시 한 번 ‘정말 깨네’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정도의 놀라운 일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데도 다시 또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을 보았다.
새 해가 밝았다. 두루 알다시피 2012년은 조계종에 뜻 깊은 해다. 통합종단 출범 50년을 맞기 때문이다. 1962년 4월 이후 조계종이 걸어온 반세기는 종단 안팎의 누구도 허투루 볼 수 없을 터다. 조계종은 한국불교 전체를 아우르고 대표하는 교단으로 커왔다. 같은 시기 한국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조계종 각 사찰의 재정도 50년 전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풍요롭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누구도 조계종 50년에 갈채만 보내지는 않을 터다. 지난 가을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조사한 ‘종교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에 따르면, 종교계는 대기업보다 국민 신뢰도가 낮다. 대기업에 대한 시민사회의 싸늘한 눈길을 감안하면 충격이다. 더구나 불자들은 다른 종교인에 비해 소수자에 대한 배려에 인색하고, 공익적 가치 실
2012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임진년이지만 음력으로 환산한 간지(干支)로는 아직 신묘년(辛卯年)이고, 임진년은 1월 22일부터 시작된다. 임진년은 육십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 하여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1592년 임진년엔 왜구가 침략했고, 1952년엔 6.25동란이 한창이었다. 지난 세밑에 김정일이 사망하여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데, 올해엔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송구영신이란 말 속에는 지난 일을 반성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한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아 이런저런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긴다. 나는 1999년 제야를 맞아 새해에는 담배를 끊어볼까 생각했고, 지금까지 휴연(休煙)하고 있다. 중간에 여러 곡절이 있었고, 지금
겨울은 겨울다워야 제 맛입니다. 대웅전에서 예불을 올릴 때면 하얀 입김이 제법 나오는 것을 보니 이제 겨울이 맞나 봅니다. 겨울이면 ‘설창(雪敞)’이라고 불리는 고창에도 꽤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경내 마당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앞으로도 몇 달 동안은 눈 속에 묻혀 살아야 할 것 같아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눈 덮인 선운산을 보니 제 마음도 눈처럼 맑고 깨끗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올해 저 개인적으로는 선운사 주지 소임을 두 번째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임기 동안 본사 대중스님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언제나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으로 살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가끔 시내에 나갈 때면 눈에 띄는 성탄트리를 보면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 바틀비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류를 손으로 베껴 쓰는 일을 한다. 그런데 변호사가 필사한 문서를 검토하자고 불렀지만, 그는 매우 상냥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동일하게 대답한다. 우체국에 심부름을 보내도, 다른 어떤 일을 시켜도 마찬가지였다. 호의적인 관심으로 출생지를 물어도, 자신에 대해 아무거나 말해달라고 부탁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해고하고 나가라고 하지만 그때에도 그의 응답은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을 뿐인 그를 견디지 못해 변호사는 사무실을 옮겨버린다. 그러나 그 사무실에 새로 입주한 변호사가 찾아와서 떠나지 않는 편을 택한 바틀비를 처리
종교를 비교해서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옳지 않을 뿐더러 당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더구나 종단이든 재가모임이든 불교의 고갱이와 달리 아집으로 인한 갈등이 툭툭 불거지고 있기에 이 글을 쓰기까지 망설임이 더 컸다. 하지만 쓰기로 했다. 듣그럽겠지만, 천주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불교 종단들이 배울 게 있어서다. 기실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다른 종교와의 열린 대화는 바람직한 미덕이기도 하다. 천주교는 개신교와 달리 신자들이 지며리 늘어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 천주교회는 2011년 12월 4일부터 10일까지를 제1회 사회교리주간으로 선포했다. 올해 처음 시작하는 사회교리 주간에 천주교의 모든 교구들은 전국에 걸쳐 신자들에게 사회교리를 보급하는 행사와 교육을 시행한
채 돌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곤히 자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고 눈을 뜨더니 해맑게 웃는다. 엄마를 본 모양이다. 엄마가 옆에 있어 행복한 표정이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금세 눈을 감는다.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고 웃곤 다시 잠이 드는 아이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미국 CNN 방송의 유명 앵커들은 물론 수십만 명을 파안대소하게 했다. 아이의 웃는 얼굴처럼 맑고 아름다운 게 달리 또 있을까 싶다. 웃음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웃는 집에 만복이 깃든다(笑門萬福來)”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동물학자에 따르면 침팬지나 개도 웃는다고 하지만, 사람만큼 웃는 동물은 없다. 그래서 J.호이징하는 ‘웃는 동물(animal ridens)’이란 개념이 ‘사회적 동물(homo
어느 덧 2011년도 저물어 간다. 추수를 끝낸 시골의 논과 밭은 다시 겨울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안거에 들어간 선운사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보다 알찬 내년을 준비해 가려 한다. 올해를 돌이켜 봤을 때 종단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고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자성과 쇄신 결사’를 꼽을 것이다.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조계종은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까지 구성해 의욕을 보였다.그러나 최근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발표한 대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며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지만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계종이 수행, 문화, 생명, 나눔, 평화 등 5대 분야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성과 쇄신 결사운동에 대해
지난 15일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여 한미FTA 처리를 부탁하고, 민주당은 16일 6시간에 걸친 격론 끝에 그의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이제 한나라당은 강행처리를 향한 본격적 행보를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며칠 뒤, 아니 이 글이 인쇄되어 나가기 전에라도 국회의원들이 몸싸움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비준안이 처리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 ISD조항이 논란의 중심이 되어버렸지만, 단지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한미FTA는 지금도, 처음 협상안이 나왔던 노무현 정부 때도 한국의 ‘미래’를 위해 추진해야 한다고들 말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그 미래는 아직 ‘오직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미래가 이미 과거에, 혹은 현재에 속하는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 바로 그 미국에서 시작되어 지금 유럽연합
인터넷시대가 열리면서 신조어들이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블로그에 이어 트위터와 페이스북, SNS라는 말이 넘쳐난다. 비단 과학기술의 변화만이 아니다. 2040세대라는 조어도 이미 널리 퍼졌다. 20~40대 연령층을 뜻하는 2040세대는 50대, 60대와 가치관이 다르다는 담론도 쏟아진다.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SNS와 2040세대라는 말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SNS혁명 또는 뉴미디어혁명이라는 말도 곰비임비 등장한다. 기실 그럴 만도 하다. 서울시장 선거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세대 단절 현상이 또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선거가 있던 10월26일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출구조사에 나타난 세대별 투표 성향을 톺아보자. 20대 69.3%, 30대 75.8%, 40대 66.8%가 무소
어느 덧 11월이다. 지난 여름의 폭우와 무더위는 자취도 없고 온 산야는 홍엽황운(紅葉黃雲)으로 물들어 있다. 예년에 비해 날씨가 푸근해 가을 정취가 덜 느껴지지만, 지금 전국은 단풍과 국화가 한창이다. 때맞춰 11월5일과 6일 전북 고창에선 미당문학제와 국화축제가 열렸다. 그곳에 미당 서정주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기 때문이겠으나, 사실 고창은 선운사와 동백꽃, 고인돌로 더 유명한 문화 공간이다. 선운사 동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수령(樹齡)도 오래려니와 그 자태가 무척 빼어나다. 하지만 동백이 지는 모습은 너무 처연해 마음이 짠하다. 그 광경을 송창식은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이라 노래했지만, 실제 동백의 낙화를 보노라면 그보다 더 잔인한 정경이 떠오른다. 참수당한 모가지가 땅에 떨어지듯 무참
온 산이 울긋불긋하다. 산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얼마 전까지 꽃무릇이 경내를 뒤덮었던 선운사에도 조금씩 단풍의 기운이 찾아오고 있다. 계절에 따라 다른 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산에 사는 사람들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선운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 하루 종일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선운사가 지역에서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산을 내려와 보면 세상은 어지럽기만 하다. 며칠 전 막을 내린 서울시장 선거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후보자들은 서울시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의 공약을 놓고 토론하기보다 상대방을 헐뜯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정잡배들이나 사용하는 말들이 튀어나오고, 상대진영에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무리 더러워도 더러운 줄 알기 어렵고, 아무리 나쁜 짓이어도 나쁜 짓인 줄 알기 어렵다. 심지어 남들이 ‘나쁜 일’이라고 비난하거나, 법적으로 금지된 것에서조차 나쁜 짓임을 느끼기 어렵다. 가령 위장전입을 하는 것이나 남의 돈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뜯어내는 것, 남의 명의를 빌어 금융거래를 하거나 이름을 조작하여 자식에게 증여나 상속을 하는 것이 일상사만큼이나 빈번한 사람들은 그런 일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최근에 이명박이 수십억의 경호실 예산을 들여 아들 명의로 내곡동에 집을 사주었다가 들통 난 사건을 보면서 그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 공기 속에서 살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수십억의 국가예산으로 아들에게 집을 사 준 것이나, 거기 동원된 방법, 투기적 성격 등 모든
미국.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다. 이른바 ‘친미사대주의 세력’이란 비판이 나돌 만큼 미국에 대해선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들에게 미국은 삶의 나침반이다. 그런데 보라. 바로 그 미국에서 그것도 중심가인 월스트리트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점거 시위는 오늘의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이 땅의 언론들은 경찰 당국에 강경 대응을 살천스레 주문하면서 언제나 미국 경찰을 보기로 들었다. 미국선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불법 행위를 저지를 때 총을 쏜다고 부르댔다. 그 거친 논객들은 지금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점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더구나 월스트리트의 시위대가 내건 구호들
우리 청소년들은 75초에 한 번 꼴로 욕을 하는데 그들이 불량학생이거나 문제아여서가 아니라 평범하고 얌전한 아이들도 습관적으로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학원 같은 곳에서 청소년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절반이 욕설임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아이들은 ‘×나’(또는 ‘×라’)라는 단어로 시작해 ‘×발’, ‘×랄’, ‘×끼’ 등 욕과 비속어를 두어 마디에 한 단어씩 섞어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화에는 진지한 내용이 담기지 않고 누가 보다 많은 욕과 비속어를 쓰느냐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그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에 대해 지적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큰 발견이나 한 듯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 청소년의 언어가 욕과 비속어로 오염된 것은 십 수년 전의
유엔에서는 65세 이상 인구 구성비가 전체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가파른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한국은 지난 2000년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2018년이 되면 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빠른 진입 속도다. 한국사회가 이렇듯 종단도 더 이상 승려들의 노후복지를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현재 12000여 명의 조계종 승려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는 약 12%인 140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출가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어 승려노후복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종단적 과제이다. 그래서 그동안 꾸준히 논의 되어 왔지만 전무했던
대중이 안철수에 매혹되어 열광하는 것은 그의 삶이 주는 어떤 감동 때문이다. 무엇이 대중을 감동하게 했던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돈의 유혹에 포획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했고 또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을 일관되게 밀고 갔던 것에 감동한 이도 있을 것이고,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 성공을 떠나며 살아온 그의 행적에 감동한 이도 있을 것이다. 또 경쟁이나 적대가 지배하는 기업의 세계에서 상생적인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추구해 온 것에 감동한 이도 있을 것이고, 숫기 없고 수줍어하면서도 사람들의 앞에 나서서 진솔하게 자신의 소신을 펴는 모습에 감동한 이도 있을 것이고, 사람들의 힘겹고 고통스런 삶을 감싸안으려는 마음에 감동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
조계종이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 사설로 평가했듯이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의미가 깊다. 한국 사회에 만연된 갈등을 치유하며 분쟁을 해결해 보려는 고뇌 속에서 선언이 비롯됐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선언 초안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택 교수는 선언 발표 직후 에 기고한 글에서 “종교 간 평화 실현이 주된 내용이지만, 선언문의 저변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종교인의 성찰과 고민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적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자임하는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처럼 선언이 그 “역할의 시작이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분쟁 해
요즘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관심이 심상치 않다. 각종 방송에서 경쟁적으로 벌이는 경연 혹은 오디션 형식 프로그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유럽에선 K-Pop 공연을 더해달라며 시위를 벌인다. 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돔에는 15만 명이 K-Pop 공연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모였다고 한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 K-Pop 차트가 신설된 것은, 최근 한국 대중가요의 위세와 실상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후한서’에 “동이(東夷) 사람들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우리 민족은 ‘흥’의 유전적 형질을 DNA에 지니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유수의 콩쿨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고 세계 일급의 연주가나 성악가로 활동하는 이가 많은 것도 이런 유전적 형질과 무관하지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