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강의의 중점은 ‘어떻게 해야 벽화를 잘 볼 수 있을까’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왜 절에 와서도 벽화에 대해 잘 모르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부처님 말씀을 글로 기록하면 경전이고, 형상으로 나타내면 불상이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벽화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벽화를 잘 모른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모른다는 말이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잘 모른다는 것은 경전을 배워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경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체득’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체득이라고 함은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원 성취를 위한 정진’이라는 제목으로 21일 동안 매일 ‘금강경’을 21독 하는 정진법회를 올해로 세 번째 봉행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중생이 살아가는 일상에 항상 존재하는 사상(四相)에 대해 강조합니다. 사상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말합니다. 중생은 욕심이 많은 존재입니다. 아상은 욕심이 많은 존재를 지칭합니다. 두 번째 인상은 나 말고 다른 사람, 그래서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원망합니다. 세 번째는 중생상입니다. 중생은 좋은 것은 내가 갖고 나쁜 것은 네가 갖고, 맛있는
중국 화엄종의 초조인 제심 두순(帝心 杜順, 557~640) 선사는 “화엄경을 어떻게 해야 잘 보고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 “회주(懷州)에서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몇 천리 떨어진 익주(益州) 땅에서 말이 배가 터졌다”라고 말합니다. 화엄의 진수를 묻는 제자에게 그렇게 10조9만5048자의 알맹이 소리를 빗대어 “소가 회주에서 여물을 먹었는데 익주에서 말이 배가 터졌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법문을 들으면서 몇십 년 고뇌를 많이 했습니다.화엄의 세계는 문자나 언어가 끊어진 법계상이기 때문에 칭찬하고 헐뜯고 그런
‘불자는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기도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대답을 할수도 있겠지요. 하지마 어찌보면 이것은 비불교적인 대답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부처님께서 ‘대기설법’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는 가장 일반적으로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대기설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에서 주어진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그 말씀을 하셨을 때의 조건과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조건이 그야말로 천양지차입니다. 중생의 사는
먼저 우리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 반야학술상을 제정함으로써 불교학자들을 격려해 주시는 존경하는 요산 지안 큰스님과, 제10회 반야학술상 수상자로 저를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는 13권의 저서와 4권의 번역서, 그리고 85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저서 가운데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붓다의 과학이야기(참글세상, 2014)’ 그리고 논문 가운데 ‘생명공학에 대한 불교윤리적 조망(불교문화연구, 2002)’ 등 여덟 편의 논문을 통해 불교와 과학의 접목을 시도해보았습니다.이들 저서와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오늘 법문 주제는 삼귀의와 초발심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아주 익숙한 단어일 것입니다. 삼귀의는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고 초발심은 어떤 일을 시작하는 처음의 다짐입니다. 특히 삼귀의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으로, 이 삼귀의가 없으면 불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삼귀의입니다.부처님께서 교진녀 등 다섯 비구에게 사성제를 설하시며 초전법륜을 하신 이후 부처님 법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오라, 비구여!”하며 환영 하셨습니다. 정법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 환영했고, 그
저는 해남 대흥사에 6년 동안 살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전에는 초의 스님에 대해 듣기만 했고 스님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 의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흥사에서 지내며 ‘동다송’을 읽고 초의 스님을 공부하게 되면서 이 책을 꼭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또 ‘동다송’에 대한 번역서가 시중에는 이미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 책이 ‘동다송’ 번역에만 치중되어 있지 초의 스님이 왜 차 생활을 영위했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은 번역서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동다
유튜브불교대학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처음 들어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불교의 4대 상징 꽃’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 이어 ‘연꽃의 여섯 가지 큰 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먼저 ‘불교의 4대 상징 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의 꽃이라고 하면 첫 번째는 당연히 연꽃입니다. 연꽃은 중요해서 연꽃 하나만 갖고도 며칠 동안 설명해도 될 정도입니다. 연꽃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불두화입니다. 불두화는 4월 전후 부처님오신날 즈음 피는 꽃입니다. 꽃말은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불두
백중은 조상님들을 위로하고 조상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또한 나를 위하는 기도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날을 맞이해서 조상과 나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부모님, 조상님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은혜를 알고 갚는 것이 훌륭한 일이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왜 은혜를 알아야 될까요. 찰스 로퍼(Charles Roper) 박사가 쓴 ‘나는 들었다’는 시의 일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다. 우뚝 서서 세상에 몸을 맡겨라. 너그럽고 굽힐 줄 알아라./ 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다. 마음을 열어라
반갑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합장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 성문 스님들께 지성 귀의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여러 생 지은 업장 크고 작은 많은 허물 삼보전에 원력 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데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 언덕 가사이다.”사찰에서 조석으로 올리는 ‘이산 혜연선사 발원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방금 얘기했듯이 “열반 언덕 가사이다.”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 수행을 하는 목적입니다. 열반 언덕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
옛날 어느 무더운 날, 어떤 분이 진정으로 시원한 바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이 사람은 “청량풍 부재선 부재수 부재공 지재심(淸凉風 不在扇 不在手 不在空 只在心)이라, 맑고 시원한 그 바람은 부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부채를 움직이는 손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 허공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당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처럼 날씨가 무더운 날 마스크를 꽁꽁 쓰고도 더워하시지 않는 모습을 보면, 여러분은 마음이 참으로 고요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격적인 여름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제약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하는 것이 시제불교(是諸佛敎)이니라.”비바시불(毘婆尸佛)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과거칠불께서 모든 중생에게 내려주신 칠불통게(七佛通偈)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 자기의 마음과 뜻을 맑고 깨끗히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옛 중국 선사의 일화에 보면, 도림 스님이라는 선사께서 자리매김하고 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인 백낙천 시인이 도림 스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