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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불교는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에 가장 적합한 과학적 종교”

‘관찰’이라는 현대과학 방법 통해 발견한 진리가 불교
불교·과학 접목은 불교학 외연 확장 위한 시대적 과제
현대물리학의 난제도 불교서 해결 실마리 찾을 수 있어

먼저 우리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 반야학술상을 제정함으로써 불교학자들을 격려해 주시는 존경하는 요산 지안 큰스님과, 제10회 반야학술상 수상자로 저를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는 13권의 저서와 4권의 번역서, 그리고 85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저서 가운데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붓다의 과학이야기(참글세상, 2014)’ 그리고 논문 가운데 ‘생명공학에 대한 불교윤리적 조망(불교문화연구, 2002)’ 등 여덟 편의 논문을 통해 불교와 과학의 접목을 시도해보았습니다.

이들 저서와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제에 대한 연구를 담았습니다. 첫째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불교윤리적 분석, 둘째 진화생물학에 대한 불교적 해석, 셋째 현대 뇌과학의 연구 성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화엄학에 근거한 ‘마음’ 이론의 제시, 넷째 명상수행의 과학화를 위한 기계장치 제작과 실험에 대한 것입니다. 이들 네 가지 주제의 요점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줄기세포 연구는 체세포복제 수정란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살인’의 악업(惡業)과 관계됩니다. 율장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수정란 이후를 인간의 시작으로 보셨고,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하여 중죄로 취급하셨습니다. 그러나 줄기세포의 경우 몸 밖에서 체세포복제를 통해 만들어지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줄기세포가 인간의 범위에 포함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율장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렇게 애매한 문제의 경우 행위자의 동기에 따라서, 그 행위의 선악 여부가 달라집니다. 과학자가 줄기세포를 해체하려는 동기와 목적이 순수한 자비심과 같은 선(善)이라면 줄기세포는 ‘인간’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 동기와 목적이 돈이나 명예를 위한 탐욕이라면 줄기세포는 인간의 범위에 들어온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즉 줄기세포가 인간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그것을 해체하는 사람의 동기와 목적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식의 극한에서는 가치가 존재를 변화시킵니다. 줄기세포연구는 인식론과 존재론과 가치론의 교집합, 이들 세 가지 이론이 모두 만나는 접점입니다.

둘째, 진화생물학은 두 가지 점에서 불교의 가르침과 흡사합니다. 하나는 생명체 형태의 변화에 대해 연기적(緣起的)으로 설명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진화 이론이 불교의 핵심인 고, 집, 멸, 도 사성제 가운데 고성제와 집성제의 실천적 이해라는 점입니다. 

12세 싯다르타 태자는 벌레가 새에게 먹히고, 그 새를 다시 큰 새가 채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식욕의 집성제와 약육강식의 고성제 현장이었습니다. 그 후 출가해 35세에 보리수 아래서 깊은 사유에 들어가셨다가 도성제의 수행을 통해 멸성제를 발견하십니다. 찰스 다윈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고, 집의 두 진리만 발견했지만, 싯다르타 태자는 그곳으로부터의 탈출구인 멸, 도를 발견하셔서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비정한 진화의 세계를 넘어선 영원한 평화의 길을 발견하신 겁니다. 불교와 진화생물학을 비교할 때 고, 집성제에 대한 통찰에서 공통점이 있는 반면, 멸, 도성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불교의 특장(特長)이 있습니다.

셋째, 현대의 뇌과학 이론에서는 마음이란 뇌에서 창발한(Emergent)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진화과정에서 생명체의 신경계에 뇌가 생기면서 마음이 새롭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체의 진화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는 잘못된 이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일까요? 저는 ‘불교와 뇌과학으로 조명한 자아와 무아’라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 해답을 ‘화엄경’ 법성게에서 찾았습니다. 법성게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먼지 한 톨 속에 온 우주가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일미진’은 마음의 객관적 측면이고, ‘함시방’은 마음의 주관적 측면입니다. 남이 나를 바라볼 때, 나의 마음은 뇌 속에서 요동하는 하나의 점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든 정보가 마음의 주관적 측면인 의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음이란 진화과정에서 창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 물리적 우주 어느 지점에든 빨려드는 시방의 모든 정보를 의미합니다. ‘화엄경’을 보면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이라는 경문이 있습니다. “마음과 부처와 생명체, 이 세 가지는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는 온 우주이신 비로자나부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 어느 지점이든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이고, 그 지점은 시방 모든 정보의 정신성을 내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뇌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뇌에서 창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물리적 우주 어느 지점에든 존재하는 함시방의 측면입니다. 마음의 정체에 대한 불교적 통찰이자 화엄적 통찰입니다.

넷째, 세친에 따르면 1찰나는 75분의 1초로 계산됩니다. 이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인지 가능한 시간의 최소 단위입니다. 수십 년 전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부터 구사론의 가르침을 접하고선, 찰나의 길이를 재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6년 전 안식년을 받아, 촉각의 영역에서 인지 가능한 시간의 최소 단위를 측정하는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위빠사나 수행의 원리를 이용한 명상기계 사띠미터(Sati-Meter)를 제작하였고 한국연구재단의 융합연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00여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고, 실험결과를 논문으로 완성하여 학회지에 발표하였습니다. 

서구에서 명상 붐이 일어나면서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명상의 심리적 효과, 명상 후 나타나는 뇌조직의 변화와 같이 명상의 결과에 대해서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명상하는 과정, 즉 명상수련과정은 전혀 객관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명상의 과정을 객관화, 과학화하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인데, 사띠미터는 명상과정을 객관화, 수량화, 과학화한 세계유일의 장치입니다. 사띠미터의 훈련 효과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며, 치매예방, 노화에 따른 기억력 감퇴 예방, 주의력 결핍 회복 등을 위한 장치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상 네 가지가 지금까지 제가 불교와 과학을 접목하면서 시도했던 연구들입니다. 이번에 제가 반야학술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불교와 과학의 접목을 주제로 다양한 논문을 발표한 연구업적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교를 젊은 세대에게 전할 때, 과학의 언어로 불교를 설명한다면 가장 설득력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학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입니다.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전통종교가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에게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 과학의 언어로 불교를 가공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 비해 희망적인 것은 불교라는 종교가 ‘발견된 진리’라는 점에 있습니다. 세상을 여실지(如實知)해 발견한 진리가 불교입니다. 현대 과학 역시 연구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이론을 도출합니다. 따라서 생물학이든, 물리학이든 그 가운데 불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이론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연각은 불교도 모르고 부처님의 존재도 모르지만 세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서 깊은 사색에 들어가 연기법을 관찰함으로써 홀로 깨닫는 수행자를 말합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불교를 모르지만 전제없이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연각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뉴턴이든, 찰스 다윈이든, 아인슈타인이든 모두 ‘익명의 불교도(Anonymous Buddhist)’인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와 과학을 접목하는 일은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불교를 설득력 있게 전하고, 깨달음의 학문인 불교학의 외연(外延)이 과학을 포함한 현대의 모든 학문의 영역으로 확장되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런데 현대과학 가운데 아직 제가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이론 물리학 분야입니다. 현대물리학의 경우, 완벽한 이해를 위해서는 고도의 수학적 소양이 요구되기에 일반인 범접하기 쉽지 않은 분야입니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난제 몇 가지에 대해서는 불교학자로서 그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굵은 얘기를 몇 가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늦지 않은 시점에 현대물리학과 불교이론을 본격적으로 비교하는 연구에 들어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10회 반야학술상의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모든 분들과, 반야학술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주신 모든 분들께 재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강의는 11월1일 통도사 반야암에서 개최된 반야불교문화연구원(원장 지안 스님) 주최 ‘제10회 반야학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김성철 교수의 수상 기념 강연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1561호 / 2020년 11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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