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선센터 주지 에교꾸 로시 스님과 L.A. 선센터에서 두 달을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이곳 사람들의 헌신적 봉사와 자신의 소임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 그리고 서로에 대한 염려와 배려에 종종 감탄한다. 누구나 살고 싶은 커뮤니티, 이곳은 어느 곳에 있어도 생각나는 고향과 같이, 늘 그리운 곳이라고 이곳을 거처간 사람들은 말한다. 굳이 역사적으로 캘리포니아에 내린 일본선불교의 근본 뿌리라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스함과 끈끈함이 확실히 이곳에는 있다. 과연 이런 건강하고 이상적인 승가를 이루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주지 에교꾸 로시의 지도력이다. 에교꾸 로시는 일본인 어머니와 포르투칼인 아버지 밑에서 하와이에서
▲사슴동산의 입구. 프랑스의 프롬빌리지에서 열리는 가족캠프에는 1주일에 천명, 1달간 6천명의 사람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틱낙한 스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어떻게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2박 3일 수행프로그램 참가를 통해 조금이라도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곳 사슴동산의 아침은 새벽5시부터 시작된다. 먼저 영어로 새벽종성을 하는데 그 소리가 새벽 산공기 만큼이나 청아하다. 특이한 것은 모든 예불의식이 영어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원래의 베트남 예불을 영어로 번역한 다음, 전문음악가들이 영어의 음률에 맞는 리듬를 만들었다고 한다. 함께 새벽예불을 하고 그 자리에 앉아서 아침 명상을 한다.
▲샌디에고의 사슴동산사원. 틱낙한 스님의 수행센타가 샌디에고 근처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뷰와 숙소 예약과 관련된 사항을 크리스가 했다. 크리스는 서른다섯살의 청년이다. 그는 내가 LA에 머무는 동안 나의 시자로 미국불교 연구를 돕겠다고 자원을 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LA에서 3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한 사슴동산사원(Deer Park Monastry)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보아온 보통사원들처럼 어느 건물을 사찰로 만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산전체가 사원이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다람쥐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그런 곳이다. 이곳을 건립한 100권이넘는 책을 저술한 틱낙한 스님은 영상법문으로도 세계적으로
▲다르마비자야 사원. LA반야사 주지 스님의 도움으로 크렌쇼우 거리의 스리랑카 사원 다르마비자야(Dharma Vijaya)로 향하였다. 입구의 하얀 파고다와 부처님 좌상이 반갑다. 스리랑카에서 석사를 마친 연고로 나의 마음은 스리랑카라는 말만으로도 따뜻해진다. 주지스님인 피야난다 스님을 만나고 “헬로우, 함두루(안녕하세요, 스님)”하니까 어떻게 스리랑카 말을 아느냐고 놀라신다. 스님은 아주 부드러운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런데 마침 상담중이니 조금 기다리라고 양해를 구하신다. 호기심에 살짝 보았더니 젊은 미국인 여성 2명이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스님께서 합장하시고 긴 실을 잡고 축복의 염불을 하신다.
명상지도자의 열정에서 미국불교의 희망을 목격 ▲ 비스타선센타의 지도자인 지유로시와 그의 제자들. 어느 날 법회 때 주지 스님이 내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대중들이 도와 줄 것을 주문하셨다. 법회가 끝나자 키가 크고 시커먼 구레나룻을 기른 젊은 친구가 그가 다니는 샌디에이고 선센터의 방문을 권유했다. 마침 일일 수련회가 있으니 참석하여 LA선센터와의 다른 분위기를 경험해 보는 것이 어떨지 의향을 묻는다.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라 전날 저녁 출발하여 센터 근처에 있는 그의 고모 집에서 하루를 자고 참석하기로 했다. 샌디에이고로 가는 하늘이 참으로 넓다는 것을 느낀다. 멀리 바다도 보인다. 미국에
▲베단타 사원 입구.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달리 아침을 밖에서 많이 먹는다. 이른 아침이지만 시내곳곳의 식당이 열려있다. 오늘은 유도(Yudo)와 조타이(Jotai) 그리고 무진 스님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러 나갔다. 특별히 유도가 아침 공양을 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얀 커튼이 드리워진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점원이 밝은 미소로 상쾌하게 아침인사를 건넨다. 자리를 잡고 한번 둘러보고는 내심 놀랐다. 벽에 여러 가지 그림들이 걸려 있는데 대부분이 불교적인 것이다. 부처님 두상만 있는 사진, 보살의 두상만 있는 그림. 왠지 낯설다. 우리에게는 경배의 대상인데 음식점 벽에 걸려 있다니 받아들이기 불편하다. 이것이
▲서래사에서 만난 미야오시 스님. 고속도로를 거처 하시엔다 하이츠에 있는 대만절 서래사(西來寺)로 향했다. 중국말로 시라이 쓰(Hsi Lai Temple)라 불리는 이 사찰의 명성은 한국에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규모와 시스템이 너무 잘되어 있어 미국에서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찰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서래사를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서는 영어로 된 불교 책을 많이 제작해 해외포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서래사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베이징의 자금성을 방문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그 규모에 놀라 그저 ‘아~’하는 감탄사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커다
▲티타쵸가 사는 오두막. 아침을 일찍 서둘러 먹고 오전 7시에 출발. 오늘 가는 곳은 미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처음부터 살았던 곳이다. 지금도 인디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LA에서 1시간을 가면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도 부유층들이 사는 베니스(Venice)가 나온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멋지게 다듬어진 정원을 가진, 영화 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그런 집들이 즐비해 있는 동네다. 이곳에 무진 스님의 친구 제니퍼가 연로하신 어머니를 돌보면 살고 있다. 그녀의 안내로 베니스를 벗어나면서 펼쳐지는 커다란 사막 언덕들,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산과 곳곳에 나타나는 평온한 집들, 그리고 멕시코 노동자들, 햇볕에 반사된
▲ LA선센터를 가득 메운 참석자들. 일요일 아침11시. 오늘은 무진 스님의 법문이 이곳 LA선센터에서 있는 날이다. 스님이 여러 해 LA선센터를 방문하였지만 공식 법문요청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조심성이 많아서 스님이라도 좋은 수행자라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법문요청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님은 좋은 법문이 될지 걱정했다. 한국에서 매년 10월 창립기념일마다 스님을 초청해 법문을 들었던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스님의 법문은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일요일 아침예불을 평소와는 달리 8시30분에 한다. 상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 다니는 것을 배려한
▲산타모니카 성당의 제임스 핀리. 오늘은 산타모니카해변 근처에 있는 카톨릭 성당을 방문하는 날이다. 산타모니카는 태평양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아름다운 해변으로 아주 유명하다. 태평양의 시원한 바닷바람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가는 도중 무진 스님은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으로 말씀하신다. 내가 좋아할 만한 분이라고 장담하신다. 그는 오랫동안 가톨릭 신부였다가 재가자로 돌아가 현재는 가톨릭 신자들의 종교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종교를 초월하여 열려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아름다운 성당과 끝이 보이지 않는 부속 건물이 나를 놀라게 했다. 먼저 성당 안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왠지 들
▲ UCLA대학 교정에서.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는 무진 스님은 참 특이한 분이다. 영국인 아버지와 캐나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님은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심리학자 피아제를 지도교수로 심리학 학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어린이 발달심리를 전공해 인간교육에 탁월한 지견을 가지고 있다. 십대 때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인도의 요가 수행자 수피에게 영향을 받아 마음수행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졸업 후 싱가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사찰에서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더 집중된 수행을 위해 출가를 결심하고 스리랑카로 가서 사미니계를 받는다. 얼마 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당시 스리랑카에서 유학중인, 지금은 작고하신 성
▲재가수행 지도자인 대진 센세이. LA선센타의 토·일요일은 참선 수행하러 온 사람들로 일찍부터 북적인다. 특히 아침 6시30분이 되면 상가홀에서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존(John Buksbazen), 법명은 대진(大眞)이다. 처음 이곳 선센타에 도착한 이후 내 궁금증을 가장 강하게 자극한 인물이었다. 제일 먼저 “안녕하세요?”라며 유창한 한국말로 건넨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늘 미소 짓고 있으며, 내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으면 언제든지 먼저 인사를 건네고 공양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이야기를 한다. 그를 만날 때마다 과연 어떻게 불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불교수행지도자가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유대교 법당 경전반 사람들. 새벽 예불 중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으로 하는 축원이다. 축원은 주지 스님이나 예불을 집전하는 지도자가 한다. 축원카드는 주소와 이름이 적혀있는 명함이다. 명함철에 명함을 꼽아 이 시간에 읽음으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 개인적으로 수행의 공덕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각자가 소리 내서 축원한다. 대부분이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과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기도이다. 참 신기하다. 이런 생각을 내다니. 오늘은 무진 스님과 함께 스님이 설립한 더글라스 재단의 회계사를 만났다. 스님이 재단을 운영하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스님의 외삼촌은 미국에서도 부유층들이 사는 비버리힐즈에 사시던 분으로 자식이 없었다.
해외서 개종 권하는 한국인 그들에게 무엇 해줬나 반성 ▲ 선센터에 봉안돼 있는 관세음보살님. 오늘 새벽 참선에는 전날과 달리 가사 장삼을 입고 선방에 들어섰다. 그랬더니 주지스님 자리가 있는 어간으로 안내를 받았다. 미국에서 한국 스님들의 승복은 일반인 옷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미얀마나 태국처럼 옷 그자체로 가사를 대변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삭발도 미국에서는 불교수행자의 의미보다는 머리스타일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한국에서야 승복입고 삭발하면 누구나 스님으로 자연스럽게 인정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미국에서 의식에 참여하거나 선방에서 수행할 때도 가
▲붓다에센스템플의 소박한 법당. 새벽 참선이 끝나자 사람들이 방석을 정리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묵언이다. 한 줄로 선다. 모든 사람들이 나오자 안행을 하여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특이한 것은 지도자일수록 뒷줄에 선다는 것이다. 모두가 법당에 들어갔지만 주지스님은 설법전 앞에서 모든 대중들이 법당으로 들어갈 때 까지 기다린다. 법당 안에서는 도우미가 법회지를 나누어준다. 인상적인 것은 매일 의식 때 마다 지금 몇 페이지의 무엇을 하는지 안내 멘트를 한다는 것이다. 눈치껏 알아서 따라가야 하는 우리의식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미국문화에서는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왜, 무엇을, 어떤 순서에 따
▲미국 로스엔젤레스 선센터의 선방. 이곳 선센터의 아침은 조용히, 참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새벽 5시가 되면 선원에 있는 불자들이 각자의 거처에서 하나, 둘 선방으로 들어선다. 어제 유도(Yudo)가 안내한, 내가 앉아도 되는 자리중 하나에 나도 동방아를 입고 앉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불교의 영향인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은 입구에 준비된 개인 보조방석을 들고 들어온다. 선방에 들어서며 반배한다. 그 모습은 아주 정중하다. 좌식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은 대부분 아주 높게 보조방석을 이용한다. 반가부좌가 불가능한 사람들은 의자를 들고 들어와서 의자에 앉는다. 평소 시끄러울 정도로 발랄한 이곳 캘리포니아 주 사람들
한국 불교 세계화 고민에무진 스님 미국행 권유로낯선 L.A 선센터에 첫 발 ▲미국 로스앤젤레스 선센터의 외관은 일반 가정집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국제포교의 원력을 가지고 다양하게 포교해온지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많은 분들이 언급해 왔지만 사실 한국불교는 아직 세계화를 위한 체계적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이 문제를 영국, 캐나다, 스위스 국적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한국에서 출가해 비구니계를 받은 무진 스님과 자주 의논해왔다. 스님은 나에게 미국로스앤젤레스의 선센타에 머물면서 연구해볼 것을 제안하셨다. 많은 나라의 사찰을 방문했지만 이곳이야말로 가장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