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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승랑 연구에 큰 족적 남긴 한국불교학 거목

  • 부고
  • 입력 2023.11.23 17:15
  • 수정 2023.11.29 12:25
  • 호수 1706
  • 댓글 33

김성철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명예교수 11월23일 열반
향년 66세…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10시

'능엄경'에 탄복해 1987년 동국대대학원 입학
중관학 대중화와 고구려 승랑 스님 발굴 업적
모범적인 불자로 살며 신행문화 바꾸려 노력

2000년 동국대에 부임해 올해 2월 정년 퇴임
"평생 살면서 가장 기뻤던 것 경주동국대 부임"
정년 3년 앞둔 2019년부터 연구성과 집대성해
지도교수 법경스님 논문도 엮어 최근 직접 출간

대학원 함께한 57년생 동갑 조성택, 안성두 교수
"틈만 나면 공부…한국불교 향한 애정 남달랐다"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주변 따뜻하게 만든 분"

김성철 동국대 WISE(경주)캠퍼스 불교학부 명예교수가 11월23일 오전 심장마비로 세연을 접었다. 향년 66세.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 발인은 11월26일 오전 10시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1974년 가을 서울고등학교 강당을 전시장으로 사용한 예술제에서 그가 만든 테라코타 작품과 함께. 사진출처=김성철 교수 홈페이지.

김성철 교수는 1974년 고교시절 명동화랑에서 열린 현대조각의 거장 권진규(權鎭圭, 1922~1973) 유작전을 보고 조각가와 미술평론가의 꿈을 품었다. 집안의 반대문제도 있었지만 순전히 다른 일을 겸할 수 있다는 생각에 1976년 서울대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후 미술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 동시에 미학과 철학 관련 서적을 섭렵해 나갔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졸업 후 아내와 개원해 14년 동안 치과의사 생활을 하던 그는 운허 스님이 번역한 '능엄경'을 읽다가 '여래의 지견을 얻으면 생사의 미혹에서 벗어난다'는 구절에 탄복해 평생 불교를 공부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치과의사라는 본업과 함께 1987년 동국대 대학원에 입학해 불교학도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가르주나의 운동부정론’(1989)으로 석사를, ‘용수의 중관논리의 기원’(1997)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 동국대 WISE캠퍼스 교수로 부임한 뒤 동 대학 티벳장경연구소장, 불교사회문화연구원장, 불교문화대학과 불교문화대학원 원장과 한국불교학회 회장, 인도철학회와 불교학연구회 부회장, 전법학연구 편집위원장,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등을 지냈다. 제6회 가산학술상, 제19회 불이상, 제1회 불교평론 올해의 논문상, 제6회 청송학술상, 제10회 반야학술상, 제2회 탄허학술상, 제10회 반야학술상 등도 받았다.

2022년 5월 동국대 전략홍보팀과의 인터뷰 중 촬영한 사진.

특히 ‘중관학의 대중화’와 ‘고구려 승랑 스님의 연구’에 족적을 남겼다.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중관 서적을 꼼꼼히 번역하고 저술해, 중관학의 대중화를 이끌어 냈다. 용수의 ‘중론’을 비롯해 ‘회쟁론’ ‘백론/십이문론’ 등을 우리말로 옮기고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중관학 입문서인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2004)은 물론, 원효대사를 ‘해동성자’로 표현할 만큼 극찬을 받게 했던 대표적인 논쟁서 ‘판비량론’을 번역하고 일일이 분석한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연구’(2003)는 국내외에서 찬사를 받은 역작이기도 하다. 특히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연구’ 등 3권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도 선정됐다.

오랜 세월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구려 출신 고승이자 삼론학의 중흥조 승랑(450~530년경) 스님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연구로 “승랑 스님이 양무제의 황권확립을 위한 이데올로기 제공자”였다는 새롭고 놀라운 성과를 속속 발굴해냈다. 승랑 스님의 사상이 중국 천태종, 화엄종, 선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도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그의 저서 ‘승랑-그 생애와 사상의 분석적 탐구’는 한국연구재단의 10년을 대표하는 성과로도 꼽혔다.

전공은 중관학이었다. 그러나 중관학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와 불교계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적극 제시해온 학자로도 유명하다. ‘눈으로 듣고 귀로 읽는 붓다의 과학이야기’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 ‘불교초보탈출 100문 100답’ 등 저술은 김 교수의 관심 영역이 현실불교에 깊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모범적인 불자로 살면서 신행문화를 바꿔가려고도 노력했다. 특히 "신행을 뒷받침할 논리가 확고해야만 힘 있는 실천도 가능하다"며 서양의 조직 신학에 해당하는 체계불학(systematic buddhology)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세친 스님의 ‘아비달마구사론’에 근원을 둔 보리도차제론의 신행 체계다. 불교학자로서 이례적으로 ‘신앙적 불교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그는 “서구에서 발전해 역수입된 현대 불교학엔 ‘신앙’이 결여돼 있다”고 누누이 지적해 왔다. 

올해 
올해 1월 동국대 WISE캠퍼스 백주년기념관 5층에서 마지막 특강을 하는 김성철 교수.

올해 2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특강에서 불교학부 재학생들에게 직접 디자인한 단주 호계주(護戒珠)를 선물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모두 20알로 이뤄진 호계주에는 부처님, 가르침, 스님에게 귀의하는 삼귀의와 10가지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십선계,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을 포함해 총 19가지 다짐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 알에는 ‘호계'가 새겨져 있다. 불자들이 매일매일 호계주를 굴리면서 19가지 ’다짐‘을 염송하고 실천하며 살아갈 때 정토세상이 열린다는 신념을 담아냈다. 그는 2017년 말부터 호계주를 제작해 주변에 선물하며 호계주 수지 운동을 벌였다.

김 교수가 제작한 호계주. 사진=김성철 교수 홈페이지

부친인 고 김종서(1924~2014) 박사도 서울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와 조계종 중앙신도회·참여불교재가연대·우리는 선우·불교여성개발원 고문 등을 지낸 불자였다. 탄허,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깊었다. 30~40년 간 금강경 독송을 거르지 않았고 1998년부터는 성북동 길상선원에서 참선 수행을 지속해 왔다. 그런 아버지 영향으로 김 교수도 어린 시절부터 불교와 가깝게 지냈다. 4형제 가운데 아버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전 밝혀왔다.

김 교수는 올해 2월 BBS불교방송 라디오 ‘뉴스와 사람들’에 출연해 “평생 살면서 제일 기뻤던 것이 동국대 경주(WISE)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로 부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년을 3년 앞둔 시점부터는 교수 생활 25년간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는 데 몰두했다. 논문 76편을 7가지 주제로 엮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지런히 단행본을 발간했다. 후학들이 편하게 공부했으면 하는 배려에서 비롯된 작업이었다. 대학원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법경 스님의 논문까지 엮어 올해 4월 직접 출간을 마쳤다.

2018년 법경 스님이 팔순을 맞아 제자들이 함께했다.

최근까지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왔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겨진 불교 관련 질문에 답을 달고, 불교 강의를 위한 유튜브를 촬영하기도 했다. 또 10월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성철대종사 열반30주기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6월 어릴 적부터 인연이 있었던 탄허대종사 열반40주기 육성법문 단행본 봉정식에도 참석을 했다. 같은 달 불광미디어 붓다빅퀘스천에서 티베트 불교수행법을 주제로 대중강연도 펼치기도 했다.

퇴직 후 불교논리학 창시자 디그나가의 아포하(apoha) 연구와 서양철학의 사상을 중관학적 방식으로 재단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싶다던 김 교수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김 교수와 동국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성택 고려대, 안성두 서울대 명예교수는 “동갑끼리 함께 헤매며 공부하던 시절이 눈에 선한 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니 애통하다”고 말했다.

조성택 교수는 “제가 불교학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갈 때 누구보다 기뻐한 도반”이라며 “불교평론에 글을 쓰도록 인연을 맺어주고 언제나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불교에 대한 김 교수의 애정은 어느 누구보다 컸다. 고구려 승랑의 발굴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안성두 교수는 “김 교수는 대학원생일 때 카드를 만들어 중론 게송을 적어 다녔다. 게송을 보면서 틈만 나면 공부했다"며 "이제 퇴직해 그의 연구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불교학계를 위해 해야할 일이 많은데 황당하고 슬프고 안타깝다. 불교학계는 김 교수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부고 안내 링크(바로가기) 
https://bugonara.com/funeral/view/7228?urlsincode=eyJuZ3QiOiIxIiwibW5faWR4IjoiYyJ9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김성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학생들과의 사진.
2015년 3월 해인사로 불적답사를 간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첫번째 줄 왼쪽 두번째가 김성철 교수. 사진제공=졸업생 현공 스님.
2015년 3월 해인사로 불적답사를 간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첫번째 줄 왼쪽 두번째가 김성철 교수. 사진제공=졸업생 현공 스님.
졸업생들은 퇴임 이후로도 김성철 교수를 찾았다. 올해 여름 함께 스티커사진을 촬영한 모습. 사진제공=류동현 졸업생.
졸업생들은 퇴임 이후로도 김성철 교수를 찾았다. 올해 여름 함께 스티커사진을 촬영한 모습. 사진제공=류동현 졸업생.

 

졸업생 일부가 올해 여름 김성철 교수에게 정년퇴임 축하파티를 선물했다. 사진제공=류동현 졸업생.
졸업생 일부가 올해 여름 김성철 교수에게 정년퇴임 축하파티를 선물했다. 사진제공=류동현 졸업생.
같은 날 김성철 교수가 담은 졸업생들 모습. 사진제공=류동현 졸업생.
손자가 그린 김성철 교수. 손목에 찬 호계주와 '만'자 표기가 인상적이다. 김성철 교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손자 김경태 어린이가 그린 김성철 교수. 손목에 찬 호계주와 '만'자 표기, 촛불이 인상적이다. 평소 그의 신행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그림. 사진= 김성철 교수의 카카오톡 프로필.
그가 만든 테라코타 작품들 앞에서. 사진=김성철 교수.
그가 만든 테라코타 작품들 앞에서. 사진=김성철 교수.
제2회 탄허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성철 동국대 WISE캠퍼스 교수가 2021년 11월 불교학부·명상심리상담학과 학생들의 활동비를 위해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사진제공=동국대
제2회 탄허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성철 동국대 WISE캠퍼스 교수가 2021년 11월 불교학부·명상심리상담학과 학생들의 활동비를 위해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사진제공=동국대
지난해까지 부지런히 정리한 7권의 연구성과 단행본.
지난해까지 부지런히 정리한 7권의 연구성과 단행본.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706호 / 2023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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