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립합창단의 특정 종교 편향 공연을 사전에 막기 위해 설치된 종교화합자문위원회(자문위)가 해산될 예정이다. 대구시가 자문위 폐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구시는 ‘예술감독 해촉’ ‘문화예술회관장‧콘서트하우스관장 감봉 이상 징계’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징계 수위를 높이면 종교편향 프로그램을 함부로 편성하지 못할 거라는 기대감이 얹어진 방책인데 실효성에 대해 불교계는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찬송가 공연을 염두에 둔 인물이 징계를 각오하고 교묘하게 프로그램을 구성‧강행하면 ‘선교 무대’가 열린다는 사실을 10년에 걸쳐 경험했
예의가 잊히고 있다. 매일같이 사람 사이에서 생긴 뉴스를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친구와 동료, 스승과 제자, 고용주와 고용인, 성직자와 신도 등 인생에 동반되는 지중한 인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만족과 가치관을 우선시하고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시대에 여러 인간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고, 수평적 인간관계와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일찍이 부처님은 소중한 인연들과 행복할 수 있는 도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인도 왕사성에 장
조선 왕조 초기부터 유신(儒臣)들은 불교가 다시 일어날까봐 불안해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교를 말살시키려고 하였다. 유신들의 불교 비방 정도가 너무 심해지자 성종 임금이 “유생들이 임금을 속이면 한사코 ‘미치고 망령되어 탓할 여지가 없다’고 말하면서 유독 승려들에 대해서는 신문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질책한다.(1480년 6월) 유생들이 원각사에 들어가 학조(學祖) 스님의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리다 붙잡히는 사건이 일어나서 ‘과거 응시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지시하자, “아이들이 우연히 원각사에 들어갔다가
한국불교태고종 제28대 총무원장에 상진 스님이 당선됐다. 163명의 선거인 중 153명이 참여한 선거에서 상진 스님은 과반인 95표(62.1%)를 얻었다. 후보로 나선 상진‧성오 스님 모두 태고종의 변화를 약속했는데 선거인단은 ‘추진력’에 보다 강점을 보인 상진 스님을 택했다. 종단의 일신이 시급함을 공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진 스님은 선거기간 동안 ‘도약적 성장’을 강조했었다.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순천 선암사 적묵당에서 열린 정견 발표회를 기억해 보자. 총무원장 후보가 선거인단 앞에서 종책을 발표한 건 태고종사에 기록되어야
“성불은 다음 생으로 미루고 이번 생에서는 부처님 법을 전하자”라는 가슴 울컥해지는 해봉자승 회주스님의 일갈이 있었다. 지난 3월23일 조계사에서 열린 상월결사 인도순례 회향식에서 회주스님은 “2600여년 전 부처님께서는 바라나시에서 60명 최초의 비구승단에게 전도의무를 부여하신 것과 같이 오늘부터는 우리도 전법에 매진하자”고 강조했다.“부처님은 평생 최선을 다해 중생의 이익을 위해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승가는 누구하나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부처님 믿으라고 전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 하나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부처님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부처님 가르침이 언제 이 땅에 전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전진의 승려 순도가 372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고,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384년 백제에 불교를 알렸다. 이어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신라 눌지왕(417~458) 당시 구미 선산 지역 모례의 집에서 전법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우리는 “한국불교 1700년”이라는 표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이는 ‘삼국사기’가 가야불교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데서 발생한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금관가야 수로왕은 기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 오면서 절마다 수많은 기원을 담을 등이 빛날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소망들…. 그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신앙의 출발점이요, 또 우리를 궁극의 깨달음으로 이끄는 힘일 것이다. 기도의 힘! 그것은 나의 절실한 바람에 바탕하기에 가피와 영험을 이끌어내는 크나큰 힘이 된다. 올해의 ‘부처님오신날’에도 그런 기원들이 나의 삶과 세상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기도의 힘이 그만큼 크기에 올바른 기도를 통해 그것이 서원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야말로 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기도의
4월19일 오후 2시 ‘천년을 세우다’ 추진위원회가 출범한다. 조계종 37대 총무원 집행부의 첫 원력 사업으로 채택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지난해 10월 종무회의에서 직접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불사’의 슬로건으로 ‘천년을 세우다’를 제안하며 “이 불사가 불교계 내부의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조계종의 의지를 확인한 문체부와 문화재청은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이에 앞서 4월14일 경주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의 가치와 보존’ 학술대회가 열렸다. 경주시청, 문화재청,
어딜 가도 일렬종대로 줄지어 피어 있는 가로수 벚꽃은 별 감흥이 없다. 고향 동네 앞산에 희뿌옇게 피어나던 토종 산벚꽃이라면 또 몰라도.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개나리와 벚꽃보다는 눈여겨 살펴보아야 겨우 보이는 달래와 냉이가 오히려 더 봄의 감성을 자극한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봄’은 된장과 참기름으로 쓱싹쓱싹 대충 버무려 내놓으시던 어머니 표 ‘봄나물’의 향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내친김에 추억하는 나물 이름들을 사투리로 호명(呼名)해 본다. 달래이(달래), 머구 이파리(머위), 두룹(두릅), 엉개(엄나물), 오갈피(오가피),
나는 종교를 최대한 일상의 자리에서 상식의 논리로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종교는 일상을 극화하고 과장하고 확대해서 보여주는 매우 정밀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치기와 우매, 슬픔과 증오를 일상의 자리에서 이해해 보고 싶었다.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나는 신이다’는 신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우고 자기를 온통 신으로 채워 버린 사람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부제인 ‘신이
태고종 제28대 총무원장 선거가 6일 앞으로 다가왔다. 침체한 태고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가며 종단의 중흥을 도모할 수 있는 유능한 총무원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종단 안팎으로 높게 일면서 교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선거와 달리 고무적인 건 총무원장 후보로 나선 상진 스님과 성오 스님 모두 임기 내 펼칠 주요 종책을 내실 있게 준비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선거인단을 중심으로 한 종도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종책 실현의 타당성까지 논의했다. 한 번 보여주기식의 ‘선거용 종책’이 아니라 종단의 변화를 일으킬 ‘실용적 종책
어린시절은 왜 그렇게 가난했을까. 나는 소위 애기풍년 시대인 586세대다. 미군의 지프가 신작로에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지프를 뒤따랐다. 미군들은 초콜릿을 던져 주거나 큰 소리로 뭐라 하곤 했다. 우리는 그저 생전 처음 보는 지프가 신기했고 구름처럼 일어나는 흙먼지가 재미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초콜릿은 불쌍한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동정이었고 큰소리는 욕지거리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일 년에 몇 번은 정성을 다해서 태극기를 그렸다. 천으로 된 태극기가 귀하던 시절 종이에 태극기를 그려서 대나무
출가 전의 일이다.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을 읽으면서 출가라는 결정에 앞서 인도로 향했다. 스님은 책 속에서 부처님께서 맨발로 걸으셨다는 내용을 기록해 주셨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초전법륜지 녹야원까지 천릿길을 맨발로 걸어가 전법 하셨음을 잔잔하게 그려주셨다. 첫 순례길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보드가야대탑에서 신발을 벗고 사르나트까지 맨발로 갔던 경험이 있다. 물론 차편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맨발로 부처님이 걸었던 대지를 걷는다는 감격이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부처님께서는 길 위에서 수행하셨고, 길 위에서 전법하셨으며, 길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을 즉각 멈춰야 한다. 한국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계획을 막아야 한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불교환경연대를 비롯한 5개 불교 환경단체가 성명서를 내며 방류 중단을 촉구했다. 불교환경연대는 “방사능 피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며 “해양 방류를 강행할 시 국제적 분노와 책임은 온전히 일본 정부에 있음을 천명한다”고 규탄했다.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으로
기독교복음선교회, 일명 JMS를 세운 교주 정명석의 비행을 고발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경악시키고 있다. 1980년대 애천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교단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지금도 전국에 수십 개의 교회를 거느리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총연합에서 사이비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에서는 이 교단의 종교적 활동을 막을 수는 없다. 수많은 젊은 여성에 대한 교주의 성폭력이 드러남으로써 대중이 문제의 심각성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다. 정명석은 10년간의 옥살이를 하고 난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바위에 새기는 사람, 흙에 새기는 사람, 물에 새기는 사람이다. 바위에 새기는 사람은 자주 화를 내고 화를 내면 오래 간다. 마치 바위에 새겨 바람이나 물에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흙에 새기는 사람은 자주 화를 내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마치 바람이나 물에 쉽게 지워지는 것처럼. 물에 새기는 사람은 거칠고 날카롭게 말하고 불쾌하게 말하더라도, 곧바로 화해하고 친목하며 친절하게 대한다. 마치 물 위에 새기면 즉시 없어지는 것처럼.”사람이 화내는 것을 바위·흙·물에
상월결사 인도성지순례단이 조계사로 돌아와 회향법회를 봉행했다. 불교중흥, 세계평화, 차별 없는 사회, 생명 존중의 시대를 발원하며 1167km의 대장정을 떠난 지 43일 만이다. 순례단을 맞이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격려처럼 “수행자 한 분 한 분 모두가 무탈하게 돌아왔으니 종단의 기쁨이요 홍복(弘福)”이다.‘칼바람과 눈보라를 헤치고, 굶주림과 갈증’을 이겨내며 걸었던 구법승의 위법망구 정신으로 무소의 뿔처럼 걸었던 순례단이다. 대형트럭이 내뿜는 검은 매연과 요란한 경적 소음,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는 고성방가, 더운 날씨로
500여년 조선 역사에 반정[反正, 또는 쿠데타]으로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 연산군과 광해군 두 명이다. 사람들의 시각이 많이 다양해진 오늘날 광해군에 대해서는 외교 문제 등과 관련하여 그의 공적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어서 일방적으로 매도만 당하지 않는다. 다른 왕들에 비하여 불교를 억압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불교적인 면이 있어서 그의 원찰이었던 남양주 봉인사에서는 그를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몇 차례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연산군의 경우는 누구도 그를 변호하지 않는다. TV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악독한 군주의 대표로 묘사될
어느 국회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정치적으로 두 패로 나뉘어 ‘불체포특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 포기할 수 없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대로 포기하라’는 등 각기 다른 주장으로 온 세상이 소란스럽다.모든 만물은 앞 모양, 뒷 모양, 옆 모양, 바깥 모양, 안 모양이 각기 다른데, 그 다른 면에만 집착하여 ‘이렇게 생겼다’ ‘저렇게 생겼다’고 다투어 본들 코끼리 다리만 만져 본 사람이 ‘코끼리는 기둥 같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처럼 껍데기 논쟁에서 헤맬 뿐 실상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각자가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생명 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 대장정을 마쳤다. 총 43일에 걸쳐 1167km를 걸어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었음에도 큰 사고 없이 무탈하게 회향할 수 있었던 건, 성지는 물론 성지와 성지를 잇는 길에도 서 계실 부처님을 친견하려는 순례단의 신심과 의지 그리고 부처님의 가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신라의 혜초 스님을 비롯한 구법 고승이 전했듯 그곳은 ‘목숨 걸고 걸어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더욱이 한 사람이 아닌 75명 모두 예고 없이 닥쳐오는 역경을 견디고 극복해야 하지 않는가.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과 총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