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나 종교는 없다.” 학부 때 철학을 전공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곤 했다. 법왕정사를 몰랐을 때였고, 청견 스님 법문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시절 이야기다. 그래서 무슨 인연이 닿아 지금 여기서 수행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아, 내 스승님이 여기에 계시는구나.’ 청견 스님 법문은 명쾌했다. 때로는 신랄했다. 신앙보다는 내 머릿속 이성이 먼저 반응했다. 스님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법문에서 항상 강조하는 수행이 스스로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부처님께 감사와 경탄이 우러나오지 않아 딜레마에 빠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늘은 여러분과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횃불을 들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수행하는 사람이 깨우쳐 진리를 보게 되면 무명은 곧 없어지고, 밝음만 항상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년동굴에 횃불 밝히면즉시 밝아지는 것처럼수행은 마음 밝히는 것수행과정에 만나는 장애굳은 원력으로 극복해야탐진치 삼독에 갇혀 살면어둡고 불행한 삶의 연속수행으로 맑은 삶 만들어야어느 지역에 천년 넘은 동굴이 있었습니다. 그 동굴에는 햇빛이 들어가지 않아서 늘 어둡고 서늘했습니다. 그렇게 천년 동안 어둡고
대광명사 주지이신 목종 스님으로부터 능엄경을 공부하는 동안에 나는 스스로 변하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했다. 욕심과 집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7년 넘게 멀다않고 다니던 정든 절을 과감하게 떠나왔다. 인연 따라 강물처럼 흘러가리라 변명하면서. 대광명사에는 내가 갈망하던 참선방이 있어 더욱 좋았다. 이제 이곳을 나의 마지막 수행처로 삼고 ‘지금, 여기에서 오늘을 열심히 살리라’고 나에게 다짐한다. 칠순 기념으로 작년에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부다가야에서 룸메이트와 둘이서 간절히 기도한 순간을 잊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하며 산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그런데 이 질문에는 한 가지 ‘사는 내가 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잘 살아야 하는 ‘나’가 있을 때에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는 ‘나’라는 것이 따로 없다고 하셨다. 무아(無我)다. 삶을 살아가는 실체적인 내가 따로 없다는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나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내가 살아왔다고 여기지만사실은 ‘나’라는 환상일
푹푹 찌는 듯했던 폭염이 한풀 꺾이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가을 소식을 전해 주더니 이제는 어느새 차디찬 바람이 몰아치며 오색 단풍들마저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겨울이 목전에 찾아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재가안거 동안거 수행에 입재했다. 세간생활을 하는 재가불자들이 결제와 해제를 구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안거 기간 동안 도반들과 더불어 수행의 열정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소중하다. 오늘도 108배로 하루의 문을 열며 그간의 수행 기록을 조심스럽게 열어보고자 한다.나는 안거 기간과 상관없이 현재 매일 천일기도를 올리고 있다.
작야몽중 두두불(昨夜夢中 頭頭佛) 금조개안 물물살(今朝開眼 物物薩)어젯밤 꿈속에서는 머리 머리마다 부처이더니,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보살이로구나.욕망 가득한 중생이기에끊임없는 고통 이어지지만모든 것 놓아버리는 순간삶의 주인공으로 전환돼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상대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진정한 보살 삶으로 이어져불교란 어떤 종교입니까. 바로 부처에 이르기 위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은 탐욕심과 어리석음과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생심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고통받는 것입니다
올 겨울에도 선방에 들어왔습니다. 스님들에게 선방은 일상생활과 잠시 떨어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에겐 이곳이 일상생활이겠지만요.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려면 누구든지 일상의 공간에서 떨어진 위치에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많은 식구들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서 고마울 뿐입니다. 죽은 나무의 무게 견디며묵묵히 서있는 나무 보면불편할 것이라 생각되지만그것도 내 주관적 생각일뿐틈날 때면 숲속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있습니다. 좀 더
1시간하고 30분, 즉 90분이었다. 처음 대비주를 49독 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래도 평소 일과정진을 계속해 왔었고, 기도해야 된다는 신심이 있었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비주 49독 이상 독송하는 수행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맑은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대비주를 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추운 겨울인데도 정수리에서부터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면 아주 개운하고 더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낌은 확실해졌다. 정수리에서부터 팔로 내려왔고, 온몸으로 맑아지는 느낌이 퍼
塵埃楓葉滿室 隨掃隨有(진애풍엽만실 수소수유) / 然而不可敗掃 以爲賢於不掃也(연이부가패소 이위현어부소야) /若本無一物又何加焉 有詩錄呈(약본무일물우하가언 유시록정) / 簾捲穿窓戶不扃 隙塵風葉任縱橫(염권천창호불경 극진풍엽임종횡) / 老僧睡足誰呼覺 倚枕床前有月明(노승수족수호각 의침상전유월명)부처님 열반 뒤 화엄 개념 등장역대 임금 교재로 만든 ‘화엄경’통일신라 문화는 곧 화엄의 꽃세상 어지러운 것은 정치인들이화엄의 세계 알지 못하기 때문공부로 마음 밝혀 보살행 해야부모노릇도 정치도 할 수 있어티끌을 머금은 낙엽이 떨어져서 집에
며칠 전 BTN에 청년불자 10명이 절친 녹화를 위해 모였습니다. 녹화를 잘 마무리한 후 헤어짐의 순간, 한 청년이 자신의 다음 행선지를 말하더군요.100만명 숫자 한마음 된 것은대통령서 내모습 발견해서기도‘꼭두각시’ 자화상서 해방위해침묵 벗어나 마음 촛불 밝혀야 “스님 전 오늘 촛불 하나 보태러 갑니다.”그리고 그 날 역사상 최다수의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100만 평화촛불집회가 안전하게 치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100만이라는 숫자가 한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정말 희유한 인연입니다. 무엇을 원동력으로 그들은 그 자리에
‘절에 살고 싶다….’어려서부터 들던 생각이었다. 이 생각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모른다. 왜일까. 절에 가 본 적이 없는데도 절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살던 마을엔 절이 없었다. 무속인 집만 하나 덩그러니 있었을 뿐이다. 칠월칠석이면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떡을 해 놓고 무언가를 했다. 다른 아이들은 무섭다고 피하는데 나는 그 집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밤늦게까지 구경을 하곤 했다. 왜 그랬을까. 그런 날엔 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그렇게 절을 그리워하는데도 그렇게 부처님 가르침에
달마 스님의 무심론에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제자와 화상의 대화가 나온다. 제자가 묻는다. “마음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답한다. “마음은 없다” 다시 묻는다. “스님께서 마음이 없다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죄와 복도 없어야 할 텐데, 무슨 까닭에 중생들은 육도윤회를 하면서 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것입니까?” 답한다. “중생은 허망하게 해매면서 마음 없는 가운데 헛되이 마음을 만들어내고, 여러 업을 지으며 헛되이 집착함으로써 있다고 여긴다. 그 까닭에 육도윤회하며 삶과 죽음이 이어진다. 비유하면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무 등걸을
전법회관에서 다라니기도를 하는 한편 여래사에서는 불교대학 수업에 동참했다. 수업 중 들었던 ‘부부가 함께 수행하는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구절을 공부하면서 당시 “관세음보살님, 제 가족들이 함께 부처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발원합니다”라고 서원을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기도와 공부를 이어가면서 어느덧 남편도 불교에 가까워졌다. 남편은 처음에는 다라니기도에 10분도 앉아있지 못하더니 어느새 끝나는 시간까지 거뜬하게 앉아 함께 기도에 몰입했다. 불교대학에도 등록해 공부를 이어가면서 서서히 불
얼마 있으면 우리 절에서 주지 이취임식을 합니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몇 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도 줍니다. 제 기분은 너무 홀가분하고 기쁘고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물론 이 감정들에는 모두가 사연들이 깔려있습니다.우리는 자연 속 존재이기에언제나 돌아갈 준비를 해야소임 놓고 떠나 미안하지만은혜 갚으려 더 노력할 것1994년 종단에 개혁 열풍이 불었습니다. 개혁회의란 이름으로 6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비상종단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중앙종회의장 선거가 있었는데 은사스님이 출마를 하셨습니다. 상대편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보통 자성불,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 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을 말이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인연과 인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현상법이라고 합니다. 중생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부처님을 찾고 있지만, 실상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곳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천국과 피조물의 세계를 나눠서 봅니다. 하지만 불자인 우리들이 극락과 사바를 나눠본다면, 그 순간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앞으로 7년 동안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부처님을 알고 싶어 찾아간 곳이 부산 여래사다. 공부를 시작하고 첫 템플스테이 시간에 불쑥 했던 말이 떠올라 부끄럽기만 하다. 참 당돌했던 그 말을 꺼낸 지 어느덧 6년이 지나간다. 비록 수업에 빠지는 날도 많았지만 공부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꾸준하게 이어가도록 이끌어 준 것은 바로 기도였다. 불교대학을 다니는 틈틈이 집에서 108배를 3개월 동안 했던 적도 있고 자비도량참법을 펼치는 날도 있었다. 여래사에서 정기적으로 봉행되는 다라니기도에 동참하기를 권하는 도반들의 이야
오늘 공부할 내용은 ‘수기갈마입문(隨機羯磨入門)’입니다. ‘갈마’란 승단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출가자가 반드시 배워야 할 지식입니다. 계율은 지악수선·무상보리 근본지지·작지 계율 실천의 두 바퀴혜능 ‘무상송’ 전체가 계율이야기계율로 허물 고칠 때 지혜 생겨출가자가 ‘수기갈마’ 실천하면삼업 청정해져 승가 일 원만성취계법 잘 익혀 혜명 끊기지 않아야계율은 간단히 말하면 신구의 삼업이 악을 그치고 선을 닦게 하는 것(止惡修善)입니다. 개인도 악을 그치고 선을 닦아야 하지만 단체도 악을 그치고 선을 닦는 행위를 해야 합니다. ‘
무량사에서 지내는 일상은 평범합니다.길 위에서 살다 가신 부처님흐르는 물처럼 유행 삶 살아고요한 수행도 효과적이지만한 발짝 나간 삶도 배움 돼아침에 일어나 자비도량참법을 하고 공양 후 도량을 간단히 청소합니다. 청소가 끝나면 커피를 마시며 대중들과 함께 모여 회의를 하죠. 그 후 대중들과 함께 경전을 읽는 시간을 가집니다. 공부하다 보면 사시마지 올릴 시간이 되는데 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점심공양 시간입니다.해제 철의 경우 이렇게 오전 일정을 마치면 오후 시간에는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보내지만 안거기간에는 계속되는 좌선 수행이 마련되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심플하게 사는 법’입니다. 먼저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사는 게 심플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아마 복잡하게 살고 있어서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대화하며 어떻게 사는 게 심플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청년들 고민은 취직·사람 문제외로움 느끼며 좌절·방황해도‘인’이라는 씨앗 심고 기다리면끝내 찬란히 빛나는 태양 만나극한 상황에서 나오는 행동은전적으로 사람의 의지에 달려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시기하며스스로를 소비의 도구로 사용각자가 다른 건 다양성의 발현존재 고귀함 우열 가릴 수 없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 권력, 지위, 진급 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곤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몸을 예쁘게 하기 위해 성형수술도 하고, 예쁜 옷으로 치장하거나, 명품으로 자신을 꾸미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무장함으로써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돈·권력 등 위해 살지만사라지면 허망한 것일뿐유한한 것에 삶 걸지말고불법 진리 믿고 수행해야이 모든 것들에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것들은 한 번 오면 반드시 떠나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