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대 진흥왕대(540〜576)는 왕권강화와 영역확장의 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삼국시기 신라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진흥왕은 재위 37년 동안 건원(建元)·개국(開國)·대창(大昌, 또는 太昌)·홍제(鴻濟) 등 연호를 4번 바꾸었는데, 한 국왕의 재위 기간 이렇게 잦은 연호 변경은 드문 일이다. 첫 번째 건원은 처음으로 연호를 세운다는 의미로서 앞서 법흥왕 23년(536)에 제정된 연호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개국은 새로 나라를 연다는 의미로서 커다란 정치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한 번에 많은 절을 한 뒤, 길게 쉬는 식의 방식의 횟수는 줄었지만 그만큼 한 번에 몸에 가는 부담이 줄었기에 꾸준하게 절을 해나갈 수 있었고,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처음 기도 할 때 보다 일찍 그날의 절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편해진 마음은 절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살피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원주 스님께선 내게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절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내가 서로 따로가 아닌 하나이며, 그것을 느끼는 행위가 절이다.”라고 하셨고, 어느 거사님은 “21일 기도 후, 모든 것을 끊고 출가할 결심이 서지 않으
수계식을 앞두고, 어느 신도님이 보시를 하고 싶은데 무엇을 얼마나 하면 되는지 물어보십니다. 큰 행사라 여러모로 걱정되어 마음을 낸 것일 겁니다. 고마운 마음을 알면서도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망설이며 바로 답을 하지 못합니다. 절에 맞는 보시가 아니라, 신도님이 기쁜 마음으로 보시할 수 있는 정도가 얼마일까를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에 딱 맞는 보시가 아니라면, 많으면 많아서, 적으면 적은 대로 또 다른 번뇌가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결국 ‘마음이 중요하니 어떤 것이든, 얼마든 기쁜 마음으로 하시라’고 나름 가장 적절한
매월 8일은 ‘보라데이’다. ‘자세히 보라’, ‘관심 있게 보라’는 의미다. 또한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멍 자국이 보라색임을 상징한다. 가정폭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내 가정은 물론 이웃 가정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경찰청이 2018년 이재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전달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6월까지 가정폭력으로 16만4020명이 검거됐다. ‘가정폭력 방지법’을 전격 시행(2006)한 지 10년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지금까지도 한 해 4만건, 하루 약 100건의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지난해 여름 산 중 밖의 날씨는 정말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고 들었다. 폭염의 날씨에 백련암이라는 좋은 환경의 공간에서 21일 동안 신경 쓸 것 하나 없이 맘 편히 기도만 하면 됐던 내가 이런 후기를 적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맞는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도반 분들이나 기도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잠시나마 부담 없이 보시고 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성해보려 한다.지난해 초, 평소 읽어 보고 싶었던 한경혜 작가의 ‘오체투지’라는 책을 읽은 후 마음 속 작은 울림을 느꼈었다. 그 작은 울림은 혜국 스
누구나 위기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고난과 시련에 힘이 들고 지칠 때,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기도 하고요.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해 초라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다면 그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상황이 힘들고 혼란이 가중될수록 마음 깊숙이 들어가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전보다 더 성숙한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미국의 대표적 명상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타라 브랙은 ‘자기 돌봄’에서 다음과 같이
신라는 제23대 법흥왕대(514〜540) 불교를 공인한 이후 왕도 경주에는 사찰의 창건이 뒤를 이어서, 신라말기의 최치원이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서 “안탑(雁塔, 불탑)이 구름처럼 벌려져서 문득 빈땅이 없었고, 경포(鯨枹, 북)가 우레같이 진동하여 제천(諸天)에서 멀지 않았다”고 묘사한 바와 같이 수많은 사찰들이 벌려 있었다. 왕경의 사찰 가운데 ‘중고’시기의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전불시대(前佛時代) 7곳의 가람터에 세워진 사찰들이었다. 김용행이 찬술한 ‘아도본비’에서는 7곳의 사찰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여 주고 있다. 즉 흥륜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오만하더라도 사회성이 좋아 주변에 인정받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을 인정하고 좋아하지만, 그 사람과 아무 관련 없는 나는 주는 것 없이 이유 없이 그 사람이 밉고 싫다면, 그 사람의 특성은 내가 인정하기 싫은 또 다른 ‘나’일 수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자기방어인 셈이다.“나는 오만하지 않아.” “나는 겸손해.” “나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자각하지만, 오만함과 안하무인의 태도는 내가 인정하기 싫은 또 다른 내 모습인 셈이다. 따라서 내가 아주 미웠던 그 사
세월이 참 빠르다. 천진불들의 공연을 준비하고 시작하지 벌써 3번째가 지났다.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어린이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마다 어린이는 불교의 미래요, 진정 포교를 하려면 어린이 포교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어린이 포교를 위해 몸짓하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어린이 포교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도 너무나 적다.어린이법회를 오래 운영하다보니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학교보다 학원에서의 학습에 많이 익숙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의 학습과 학원은 배움의 터전이라는 것으로 보면 같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
만년설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Kilimanjaro·5895m)는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제작(1402)된 현존 동양 최고(最古)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에서 킬리만자로는 ‘달의 산’으로 등장한다. 인류에게 ‘빛나는 산’으로 다가왔던 태산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뿜어내는 원초적 힘과 고독을 느껴보려 동봉 스님도 저 산으로 걸음 했었다. (2004.11) 그러나 정작 여행 중에 마주한 건 아프리카 53개국 어디에도 한국불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땅에 “불교 씨앗 한 알이라도 심겠노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이 문구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가볍게 일상생활에서 쓰곤 한다. 또한 상대방의 태도나 말에 대해서도 보이는 그대로 가볍게 “너 자신을 알고 있니?”라고 하며 상대적 비교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과 ‘알라’의 단순한 단어에 참으로 귀하고 심오한 뜻이 있음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나’ 또는 ‘삶’ 자체를 상대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건 지극하게 나의 개인적
얼마 전 정월대보름이 지났다. 평소의 복지관이었으면 어르신들과 함께 오곡밥과 나물로 맛난 공양을 하고 ‘부럼 깨시라’고 땅콩이나 호두를 선물로 드리는 등 갖가지 행사를 했을 터인데, 올해 정월대보름날은 공사관계로 조용히 지냈다.절집에서 정월대보름날은 동안거 구순안거의 해제일이라 안거를 지낸 운수납자들은 살짝 들뜬 기분으로 만행을 떠나게 된다. 운수행각을 하면서 많은 선지식을 만나고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지만, 나는 복지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선지식이자 채찍질을 하여 주어 공부하게 해준다. 며칠 전 우리 기관의 닫혀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