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경전이 많아지고 방편이 다양한 것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역량이 다른데서 비롯됐다. 부처님은 개개인의 근기에 맞도록 친절하게 법을 설했고, 그것이 경전으로 엮이면서 그 수 또한 많아지게 됐다. ‘허공의 몸을 찾아서, 인간의 완성’은 많은 경전들 가운데 중요한 핵심들을 꼽아 한권으로 엮은 불교 개설서라 할 수 있다. 과천 안면암 포교당에 주석하는 지명 스님이 불교방송 교리강좌를 진행하면서 다뤘던 내용 중에서, 각 경전의 핵심부분을 모았다. 신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불교를 공부하려는 초심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다. 저자는 초보자가
“감사와 만족과 선한 마음을 기르세요. 수행은 불행의 심리를 내려놓고 행복의 심리를 기르는 것입니다. 지금의 불평불만 고통이 우리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족, 감사, 기쁨, 행복도 습관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용수 스님의 곰’에서 “나를 깨우는 친절한 명상”을 이야기 했던 용수 스님이, “본래 나로 사는 지혜”를 담아 ‘용수 스님의 코끼리’로 펴냈다. 책은 스님이 10년 넘게 매일 아침 SNS에 올렸던 티베트불교 명상에 관한 내용으로, 많은 이들이 사랑했던 글을 골라 엮었다. 또 부록에 유튜브를 통해 알렸던 스님의 법문과
‘경주는 한때 절이 별처럼 퍼져있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장관을 이루었다.’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서 경주의 옛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데서, 그 시절 신라가 불국토의 일면을 갖추고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서 전해지는 많은 기록에서도 신라가 일정 정도 불국토에 근접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삼국 중 가장 늦게 불교가 전해지고,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서야 비로소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 신라는 어떻게 불국토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신라가 불국토라는 이상향에 근접한데는 자장율사와 선덕여왕
“깨친 자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물들지 않고, 가고 오는 것에 구애됨이 없이 인연 따라 걸림 없이 산다. 이것이 주인으로서 사는 것이며, 그때 모든 곳이 진리 아님이 없다. 진리는 저 멀리 우리가 닿을 수도 없고 가볼 수도 없는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눈앞에서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성윤갑의 ‘임제록’ 강설 중”‘선어록의 왕’ ‘어록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평가받는 선종의 고전 ‘임제록’에서 임제 스님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강조했다.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
원숭이는 양 볼이 터지도록 완두를 입안에 욱여넣고, 그것도 모자라 두 손 가득 완두를 움켜쥔 채 나무 위로 달아났다. 그렇게 반란군 진압에 사용할 군수물자를 실은 마차를 끄는 말 먹이를 훔친 원숭이는 입 안의 완두를 억지로 삼키려다가 한 알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앗! 내 완두”하고 외치는 순간, 입에 가득했던 완두들이 와르르 나무 아래로 떨어졌고, 그것을 잡으려다가 다시 양 손에 움켜 쥔 완두까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첫 번째 떨어진 완두를 찾으려고 헤매는 동안 산새들이 떨어진 완두를 모두 먹어 치웠다. 맨 입에 빈 손
세상 사람들은 지구 환경, 민족 분쟁, 종교 대립, 가정폭력, 교육현장 붕괴, 청소년 일탈, 정치·경제·관료사회의 부정부패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세상이라고 진단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이 이처럼 혼란스럽게 된 재난이나 사건들 모두가 인간에 의해 생겨난 병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인간에 의해 고쳐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런 병은 왜 생겼을까? 그 근본적 원인은 바로 사람들 각자가 가진 ‘자아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 때문이다. 일본 릿쿄우
숲길은 고요한 사색의 길이며 치유와 명상의 공간이다. 숲길은 번다함을 덜어내기에 좋고, 마음으로 걷고, 그 마음으로 숨을 쉬고, 들숨과 날숨에 머리가 맑아지는 길이다. 또 숲길에서 만나는 징검다리는 사람들에게 말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배려와 희생’, 그리고 ‘소통’을 상징하기도 한다.시인도 그렇다. 개인과 개인,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배려와 소통’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이것을 시로 형상화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한다. 시인의 이러한 시적 공간은 맑은 물이 흐르는 텅 빈 시냇가처럼, 조용하게 세상 모든 것들을 가볍게 흘려보내는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서는 시대를 선도하는 스님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대중을 두루 포용할 수 있는 자질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생각이 정체돼 있으면 ‘세계일화’ 역시 뜬구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대한불교조계종은 이에 따라 불교의 현대화와 교단 발전을 위해 정진하는 동시에 스님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왔다. 스님들의 해외순례연수도 그 일환으로 추진됐다. 기존에 불교권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해외 순례지를 유럽과 중동 등 여타 종교권으로까지 확대한 것도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안
우리는 매일 일상 속에서 고독·소외·실패·노화·질병·사고 등에 따른 다양한 죽음을 마주하거나 소식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죽은 이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하며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지만, 죽음은 죽은 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여파를 미치기 마련이다.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자기의 삶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게 되고, 또한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경험하는지에 대한 유산을 남긴다. 죽음이 결코 개인적인 일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이처럼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임에 분
수행하는 스님들은 가부좌를 한 채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가부좌를 풀고 방선(放禪)을 할 때면 뜰을 걷거나 산길을 걷는 등 포행(布行)을 한다. 스님들이 포행을 하는 것은 수행의 연장선이기도 하지만, 앉아만 있던 몸의 균형을 잡아주면서 다시 이어질 참선수행을 위한 준비운동이기도 하다.포행이 수행자의 건강을 돕듯, 요즘 세간에서는 걷기운동이 각광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보통 사람들에게도 삶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생리의학적 측면을 비롯해 사색과 명상, 창의성 향상, 신체의 건강증진 등 걷기운동의 실효성이 오랜 시간을 통해 입증됐기
사람의 일생은 무수한 재산을 쌓아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지혜‧감정‧금전‧지위 등이 모두 다 재산이며, 보편적으로 이것들은 우리의 삶을 즐겁고 행복하도록 해 주는 기반이 된다.그러나 사람마다 이러한 것들을 보유한 정도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러한 재산이 적은 탓에 살면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은 한번쯤 “난 왜 이런 팔자를 타고 났을까?”라며 팔자 탓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바뀔 수 있다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지식들이 전하는 가르침이다.부처님도 세상 사람들을 향
“관리학이란 타인과 다투는 것이 아니고 대립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집을 가지거나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서는 더욱 안 됩니다. 참된 관리학이란 반드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하고,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타인과 나 모두에게 이롭고 즐거운 것이어야 합니다.”스스로를 지구인이라 자처하며 동체와 공생, 평등과 평화, 환경보전과 마음보전, 행복과 안락 등의 이념을 두루 펼쳐온 대만 불광산사 창건주 성운 스님이 “참된 관리학은 타인과 나 모두 이롭고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불교관리학’을 설명했다.성운
“싯다르타 태자가 정각을 이루시어 드디어 여래가 되시어 그 자리에 앉으신 채로 21일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80권이나 되는 방대한 내용으로 남김없이 설파하셨으니 이것이 곧 ‘화엄경’이며 불교의 출발입니다.”‘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전 81권)을 펴내고, 지금도 부산 문수선원 문수경전연구회에서 150여명의 스님과 300여명의 재가불자들에게 ‘화엄경’을 강의하고 있는 무비 스님은 ‘화엄경’의 ‘세주묘엄품1’의 서문에서 이렇게 그 수승함을 찬탄했다.무비 스님은 또 ‘세주묘엄품1’의 서문에서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 가운데 최초로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그동안 가르친 법을 등불로 삼으라(自燈明 法燈明)’는 유훈을 남겼다. 하지만 저마다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고 전하는 방식을 달리하기 시작하며 부처님 입적 후 100여년 경부터 수백 년 사이에 초기불교는 분열을 거듭해 20여개 교단으로 갈라지면서 이른바 부파불교를 형성했다. 그러나 부파불교는 일반 대중의 마음에 깊이 닿지 않으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행복의 길잡이가 되지 못했고, 이에 다시 반야경전이 형성돼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작은 게송에서 출발해 2만5천송, 12만송
“예전 병인년 1446년에 소헌왕후께서 이승을 빨리 하직하시니 섧고 슬픔에 싸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으매, 세종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극락왕생 발원이 경전을 널리 알리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네가 석보를 만들어 번역하는 것이 마땅하겠구나.”훈민정음 창제 후 처음 나온 불경 언해서이자 조선 초기 불교문화의 정수로 불리는 ‘월인석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월인석보’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월인석보’가 나오기 12년 전에 세종은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를 잃은 상심이 컸던 아들
중국 선종의 육조 혜능이 “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라는 대목을 듣고 느낀 바가 커서 발심 출가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선종에서도 중요시하는 ‘금강경’은 오랫동안 한국불교의 사상과 수행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성불의 피안으로 나아가는 보살들을 위한 빈틈없고 완전한 설법’으로 불리는 ‘금강경’은 5000여 자에 불과하지만 수행을 위한 위없는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명료하며 견고하고 예리해 모든 번뇌를 타파할 수 있는 법문으로 일컬어진다. 이 ‘금강경’은 산스크리트
지난 2004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 한 달간 절에서 스님처럼 살아보기라 할 수 있는 ‘단기출가학교’가 문을 열었다. 50회를 이어오면서 참가자만 3000명을 넘어섰다. 특히 그 중 300여명이 실제 출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대 성공을 거뒀다.단기출가학교를 기획한 이는 다름 아닌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이다. 산업화로 인한 사회병리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불교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던 스님은 “불교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데 있어 그 어느 곳의 누구보다도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이 경전은 일체중생의 본원각성(本源覺性)에 청정한 금강의 무위불심(無爲佛心)을 드러내어 견성성불(見性成佛) 하도록 해 주는데, 그 본체는 집착이 없어 허공과 같고, 그 지혜는 해와 달보다 밝다. 불타께서는 일체중생이 자기의 청정심에 어두워서 무량겁 동안 생사에 윤회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하게 여겨 수보리와 더불어 묻고 대답하여 낱낱이 그 의심을 모두 풀어 주셨다.”용성 스님은 ‘금강경’을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면서 “‘금강경’은 일체중생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드러내어 성불하도록 이끌어 간 경전”임을 강조했다. 선 수행에
“느낌은 여러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다. 날씨의 변화무쌍함과 싸우는 것이 무의미한 것과 마찬가지로 느낌의 변화무쌍함과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가장 좋은 태도는 느낌과 바람 둘 다를 그냥 지나가게 놔두는 것이다. 그것들이 어쨌든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들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따르도록 둘 다를 놔둘 수 있다.”‘마음챙김’ 수행에서 강조하는 몸·느낌·마음·법의 네 가지 알아차림 중 ‘느낌’에 대한 이야기다. 부처님의 최후 설법으로 알려진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머물 것’을
‘삶이란 무엇이고, 진리란 무엇인가?’현대인들이 종종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쉴 틈 없이 질주하던 사람들이 문득 자신의 현재 모습과 당면한 문제를 마주하면서 갖게 되는 의문인 것이다. 그렇게 물질이나 명예가 아닌, 삶과 진리에 대한 의문을 품은 이들은 그 갈증을 해소할 방법을 몰라 더욱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기도 한다.이 책 ‘진리란 무엇인가?’는 오랜 세월 수행하며 대중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온 혜담 스님이 부처님과 마음, 그리고 진리의 실현에 대해 설파하며 삶과 진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