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현충일과 그 다음날까지 1박2일 동안 설악산 봉정암을 다녀왔다. 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서이다. 그 전에 통증에 시달릴 때는 1박2일은 커녕 1분이나 2분만 걸어도 만사가 귀찮아졌었다. 이제 통증이 과거형으로 회억되는걸 보니 하여간 살아볼 일이다. 위엄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화를 벌컥내는 것은 99.9퍼센트가 몸 속에 깊이 들어있는 통증이 입이나 손이나 발을 활용해서 아파 죽겠다고 울부짖는 것이다.계곡물에 천천히 발 밀어 넣자시원한 기운 머리까지 휘돌아맑고 시원한 계곡물의 시원함더 이상 바랄것 없이 한가로워많이 울부짖
월드컵 축구가 막을 올렸다. 새벽시간에 벌어지는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느라 출근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참으로 형형색색이다. 티브이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사절 라디오를 통해서 축구중계 방송을 들었다.“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입니다. 지금부터 아시안 게임 축구경기를 중계해드리겠습니다.”열띤 아나운서의 중계방송을 듣고 있으면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야말로 신출귀몰하게 공격하고 수비를 한다. 상대나라 선수들은 마지못해 뛰어다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 골기퍼의 손가락이 하나나 두 개쯤 모자라
덜컥 여름이다. 계절도 반은 제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덥다고 열받을 일이 아니라 이럴 때 겨울 동자 동시(冬詩)를 한 편 읽어본다.북송시대의 문장가 장뢰(張耒)가 지은 ‘떡파는 아이’에 대한 시이다.城頭月落霜如雪 (성두월락상여설)樓頭五更聲慾絶 (누두오경성욕절)捧盤出戶歌一聲 (봉반출호가일성)示樓東西人未行 (시루동서인미행)北風吹衣射我餠 (북풍취의사아병)不憂衣單憂餠冷 (불우의단우병랭)業無高卑志當堅 (업무고비지당견)男兒有求安得閒 (남아유규안득한)성 너머로 달이 떨어지자 서릿발이 눈처럼 하얗게 빛나고 / 누각에서 오경
把定則雲橫谷口 (파정즉운횡곡구)放下也月落寒潭 (방하야월락한담)선정삼매에 집착하면 구름이 골짜기 입구를 가로막으니 / 놓아버려야 달이 차가운 연못에 떨어져 내린다네집착하지 않으려는 집착병을오히려 모르는 사람도 있어스스로 성내지 않는 마음서갈등 사라진 무쟁삼매 이뤄금강경에서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부처님은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중에 제일가는 사람이다. 육조 혜능 스님은 마음에서 생겨났다, 없어졌다하는 작용이 사라지고 본각(本覺)이 항상 광명을 뿜어내는 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야부 스님은 무쟁삼매에 게송을 붙여서
지금은 거의 극복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통증 때문에 수십년 동안 불면의 밤을 보내고 그 덕택에 낮에도 멍하게 보냈다. 아니면 마음을 거칠게 휘둘렀다. 밤새 잠을 자도 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몸 전체나 어딘가가 늘 불만에 차있게 된다. 그걸 누가 잘못 건드리면 바로 폭발해버린다. 푹푹 찌는 여름날 사람들이 더워서 죽을 것 같다고 아우성을 치는 날씨쯤 되어야 조금 몸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고 5분만 달리면 온 몸이 슬슬 얻어붙으면서 만사가 귀찮아진다. 덕분에 그런 하소연을 하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 안다.가슴
거울 없는 거울로 여전히 우리를 비춰주고 있는 스님이 있다. 경허(鏡虛) 스님이다. 허공을 거울로 비춰준다. 허공도 비어있고 거울에 그림자로 뜬 허공도 비어있다. 경허 스님에겐 그 거울마저 텅 빈 것일 뿐이다. 자신의 얼굴에 낙서를 잔뜩 해놓고 거울을 본다. 낙서가 보인다. 그것도 거꾸로 보인다. 자신의 얼굴에 낙서가 된 것을 모르고 거울을 탓한다. 거울은 말이 없다.거울을 자세하게 살펴보면실제모습 거꾸로 되어있어얼굴에 낙서 잔뜩 하고서말이 없는 거울을 탓하네낙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직지사의 조실스님이셨던 관응 큰스님 덕택에 중국에
어김없이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왔다. 한 찰나도 고통이 없는 날이 없는 사바세계 감인토(堪忍土)에 해마다 빠짐없이 방문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이다.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바람에 미칠것처럼 저리고 쑤시던 팔꿈치에 스르르 혈액이 흘러주면 그 시원함이란 말로 다할 수 없다. 어깨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목의 어느 한 부위가 꽉 눌려서 피가 통하지 않으면서 찾아왔던 극심한 두통도 어떤 인연으로 피가 통하면 씻은 듯이 사라진다.모든 고통은 내 마음의 그림자거울 속 떠오른 상분 잘 다스려현재 앓고 있는 고통과 아픔부처님오신날 계기로 치유되길부처님은 그런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방삼세 제불보살님과 모든 성인분들과 천지신명 모든 분에게 기적적으로 모두가 구조되도록 해주십사 축원을 올린다. 명을 달리한 모든 분들도 부디 좋은 세계로 속히 가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곳곳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점등식이 행해지고 있다. 해마다 반가운 마음이 든다. 길거리에도 연등이 줄지어 걸린다. 가끔 가다가 전선줄에 연결되어있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연등이 있긴 하지만 환하게 켜져서 온누리를 밝히는 일은 보통 큰 일이 아니다.오랜시간 가슴 아플 ‘세월호’함께 안고 풀어 가야함이니 연등전
“생각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생각나는 것이 생각이므로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중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한말씀 하시는 바람에 한참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과학 선생님은 어느날 “1억이라는 숫자를 차례차례 일, 이, 삼, 사 하고 세어선 1억까지 세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하는 질문을 던지셨다. 어떤 친구는 아무 생각없이 “한 열시간이요”하고 대답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빙그레 미소를 띄우고 대답을 듣고 있던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준 대답은 “하루에 8시
얼마 전에 당진에 계시는 독자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하신다.“예 그러십시오.” “갤러리서 강아지가 컹컹 짖는 것이 법문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깊은 뜻이 있습니까?” 대답을 드렸다.“예. 강아지가 우리 인간들에게 그대들이 하고 있는 것들이 우리와 다를 게 뭐 있느냐고 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썼습니다.” “진묵 스님의 시에서 땅을 담요 삼는다고 했는데 다른 인터넷 자료에는 자리나 돗자리라고 많이 되어 있던데요.” “예. 저는 이불과 한 세트로 보아서 담요라고 했습니다. 돗자리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꽃
3월28일 금요일 약수동에 있는 약수법사에서 정충모 법사님의 집전으로 입적하신 목정배 선생님의 49재가 여법하게 봉행되었다. 약수법사 입구의 계단을 오르니 지장보살님 옆에 피어있는 홍매 한그루가 고인께서 맞아 주시는 듯 환하게 피어있다.49재 참석차 오신 권기종 선생님께서 ‘시향만리’를 잘 읽고 있노라고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감사의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함께 올라온다. 자연스럽게 더욱 분발할 일이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49재의 절차를 마치고 “가족 대표분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하는 정충모 법사님의
‘논어’에 참 좋은 구절이 많다. 그 중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하는 글귀가 있다. 스포츠 선수들 중에도 여유롭게 축구와 야구를 정말 즐기는 선수를 더러 볼 수 있다.치열하게 승부를 다투고 때로는 멋진 묘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경기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미소를 머금는 선수가 텔레비전 화면에 뜰때면 차라리 저 선수가 프로 수행명상선수보다 더 선수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아주 가끔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해보니 잘 기억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