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신앙의 체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가 합리적인 이해만을 인정하는 과학과 그 체계와 의미를 달리하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신앙과 실천의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체제는 모든 종교적 행동의 원천이며, 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체제이다’라는 일본의 종교학자 기시모토 히데오(岸本英夫) 박사의 말은 그 점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불교를 다른 종교와 대비하여 말할 때, 그 중심개념이 깨달음이란 측면을 들고 있다. 실제로 모든 불교사상은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러한 깨달음이 없는 믿음을 맹신이라는 입
조계종 종립대학인 동국대에서 학부제 전환 이후 선학 강좌 수가 반토막이 났다. 대학원 선학과에서도 문헌이나 수행법 관련 강좌는 현격히 줄고, 선을 응용하거나 선과 거리가 먼 강좌들은 대폭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전통 선학 연구와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다. 선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종학(宗學)의 와해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동국대 서울캠퍼스 경우 2001년부터 2009년까지 학기당 선학 강좌는 평균 9.5개였는데 2017년부터는 4.8개에 그쳤다. 와이즈캠퍼스에서의 감소세는 더 심하다. 2001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은 공포스러운 숫자다. 모 시사잡지에서는 이 수치를 설명하며 ‘인구가 총 100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자녀 세대는 총 36명으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이 합계 출산율이 그대로 유지되면 손자 세대는 13명이 된다’는 대목에서 비로소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된다.이런 현실은 교계도 마찬가지다. 출가자의 급감이 이미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이 2022년 발간한 ‘행자수계교육 30년사’는 지난 30년 동안 조계종의 출가자 추이를 한눈에 보여준다. 조계종 사미·사미니 수계자는 통계
오세훈 서울시장이 2월 23일 송현녹지광장에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하면서 불교계 여론이 들끓고 있다. 2월 28일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가 “기념관 건립을 강행하면 서울시와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3월 5일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까지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종교편향 특위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연대해 피켓시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오 시장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본격화된 것은 2022년 8월 광화문광장을 새롭게 개장하면서다. ‘역사물길’ 연표석에 “보우 처벌”이 새겨졌음이 알려지면서
“집 짓는 불사만 불사가 아닙니다. 청년 불자를 양성하는 것도 이 시대 꼭 필요한 불사입니다.”지난해 4월 14일, 부산 범일동 한 상가에 자리한 사단법인 미소원 법당이 후끈 달아올랐다. 상단 부처님 앞에 드리운 천 위로 ‘미소원 청년회 일일맛집’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여기저기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로 주문받고, 음식 옮기고, 그릇 정리하고, 말벗 역할까지 바쁜 이들은 파란색 조끼를 입은 청년회 회원들. 일 년 중 단 하루, 미소원 법당이 맛집으로 변신한 이 자리에서 청년들은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했고 그들의 어깨를 토닥이던 장
어느새 2월도 훌쩍 지나고, 곧 개강이다. 두 달은 시작점에서 보면 긴 시간 같지만, 끝에 서서 보면 참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다. 방학 동안 동아리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다 보니, 유독 이번 방학은 더 빠르게 끝난 것 같다. 두 달 동안 직접 부딪혀보면서, 생각보다 지레 겁먹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수도 오히려 몇 번인가 해보니 다음엔 실수하지 않을 노하우가 생기기도 했고, 법우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 혼자 동아리를 이끄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올해 초보다 동아리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을
1990년 5월 1일 ‘깨치는 소리 나누는 기쁨’을 기치로 내세운 불교방송(BBS)이 첫 방송을 시작했을 때 수많은 불자들이 감격하였다. 나도 승용차를 운전할 때엔 당연히 BBS를 들었고, 교수이든 아나운서이든 가리지 않고 BBS프로그램 진행자들에게 환호하였다. 35년이 되어 가는데 나를 비롯해 개국 초기 진행자들의 이름과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불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었고 큰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는 뜻이다.방송 설립 추진은 조계종과 대한불교진흥원 양쪽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조계종은 원력과 의지가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 개념을 제시하면서, 기억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기보다 기억의 내용과 그 구성의 본질은 사회적 현상임을 주장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란 1퍼센트는 진짜 기억일 수 있겠지만 99퍼센트는 그 시대의 지배적 사조와 부합하는 과거 상(像)의 재구성이라고 본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 나라의 역사적 기억 역시 과거의 온전한 재생일 순 없고 집단적·정치적 특성이 가미된 기억틀을 통해 재구성될 뿐이라고 하겠다. 대통령 기념관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송현공원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대해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이하 종평위)가 2월 28일 성명을 발표하며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강행할 경우 서울시와의 관계를 단절하겠다”며 엄중히 경고했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던 지난해 12월 태고종 중앙종회는 “불교계의 의견을 묵살하고 기념관 건립을 강행해 일어나는 각종 불상사와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와 서울시에 있다”며 강도 높게 반발했다. 이보다 앞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11월 당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 불교계, 특히
산문이 다시 열린 건 꼭 6년 만이었다.평소 일반인들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 선원이다. 동장군도 범접하지 못할 정진열로 100일 동안 은산철벽과 마주한 수좌들의 성성한 선기와 그 뜨거웠던 선불장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흔치 않은 기회. 그래서 안거 해제에 맞춰 조계종 총무원이 언론인들에게 공개하는 해제 날의 선원 취재는 기자들에게도 적지 않게 낯설고 설레는 순간이곤 했다.흔히 접할 수 없는 수행의 세계, 한겨울 산중 스님들의 치열한 정진 현장을 펼쳐 보이는 것만으로도 불교는 복잡하고 숨 가쁜 현대인들의 일상에 얼음장같이
AI는 가히 혁명이라고 할 만큼 세상을 급속히 바꾸어가고 있다. AI를 활용한 챗GPT가 그 중 대표적이다. 챗GPT는 수많은 문장과 문서를 통해 미리 학습한 뒤 새로운 문장을 생성하는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이다. 22년 11월 출시된 이 모델은 사용자의 입력에 따라 가능한 자연스러운 대답을 생성해 낸다. 이 같은 지식과 정보의 혁명으로 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드물고 불교계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엔 불교를 주제로한 챗GPT도 속속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챗봇, 스님을 모델화한 챗봇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
군대에서는 16시가 되면 어김없이 체력단련 시간을 가진다. 장병들의 체력 증진을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다. 군종장교인 나도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함께 3km를 뛴다. 늦어지는 나의 속도에 늘 인사과장님께서 보조를 맞추어 주시는데, 내 숨이 가빠질 때마다 인사과장님은 힘든지를 묻곤 하신다. 나도 변함없이 너무 힘들다고 대답하는데, 그때마다 과장님은 “그게 정상입니다” 하며 덤덤히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내게 힘듦을 잊게 해주시려 위로를 가장한 아재개그를 던지신건지 싶어 멋쩍게 웃었는데 매번 듣다 보니 과장님의 저 농담 같
영화 ‘건국전쟁’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과 대립이 연일 뜨겁다. 영화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라며 사실상 영화 관람을 독려하고 나서면서부터 예상된 결과다. ‘건국절’과 ‘이승만 건국대통령’ 주장으로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기독교계의 편협한 역사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온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승만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에 500만원을 기부하며 본인의 의사를 더욱 확실히 밝히기도 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영화평’까지 하며 의
2월에 백설이 만곤건하다.멀리 바라보이는 북악산의 설경으로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좋다. 빌딩 숲 사이에 놓인 조계사의 대웅전이 눈으로 가득 덮히고 나니 그 고고한 자태를 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온통 변하고 바뀌어도 천년토록 우리 문화의 숨결이 머무르며 고유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심 속 대웅전의 모습은 눈 온 뒤 그 존재의 가치가 더욱 선명한 것 같다. 유구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불교는 존재 그 자체가 나라의 보물이요, 우리 문화의 원천이 아니겠는가?우리들은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를 잃기 마
8년 전 우리나라 바둑계 국수 가운데 한 사람이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펼쳤던 것을 기억한다. 결과는 국수의 참패였지만 이 세기의 대결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로 큰 관심을 받았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어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수술도 하고 있다. 나아가 인간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생명의 탄생 영역까지 확장하여 생명을 복제해 낼 수 있게 됨으로써 신의 영역에 도전하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 사직과 진료 거부가 이어지자 의료 현장 공백을 우려한 조계종과 태고종이 전공의의 조속한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정부를 향해선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정책 수립을 주문했다.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호소문을 통해 “현장 복귀는 생명의 가치를 살리는 소중한 공헌”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를 향해서도 “전공의 등 전반적인 의료계의 처우를 개선해 병원과 의사, 환자분들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양질의 정책을 수립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계종
새해에 다양한 방법으로 올해 자신의 운을 미리 듣기 원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필자 또한 그동안 진심 반 재미 반으로 운세를 보기도 많이 보았지만 이제는 짧은 운세에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아함경’에서 숙명에 대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난 뒤로 말이다.그전까진 실망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이게 내 숙명이었나 보다’ 생각하고 넘기기 바빴다. 부정의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건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낮추곤 했다. 하물며,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도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거구나’ 생각하며 내
신안군이 지역관광활성화를 명분으로 추진했던 ‘천사섬’ 순례길 조성 사업이나 대구시립합창단의 ‘찬송가 위주의 공연’ 등은 지자체 종교편향 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신안군은 ‘천사섬’ 사업에 40억여 원을 지원해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 5개섬을 잇는 순례길을 조성하고 섬 곳곳에 예수의 열두제자 이름을 딴 ‘12사도 예배당’을 마련한 바 있다. 지자체가 나서서 사실상 기독교 성역화를 추진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이 사업은 2022년 10월 13일 문체부 산하 공직자종교차별신고센터로부터 특정종교에 편향된 사업으로 지적되며
우리나라 대다수 관청은 여민관, 위민관 등의 현판을 걸고 있다. 아마도 ‘국민들을 위하여’, 또는 ‘국민들을 대신해서’라는 위임의 뜻일 것이다. 한편으로 정약용의 ‘목민관 덕목’을 닮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정약용은 “군사, 행정, 그리고 법이 필요한 것은 오로지 백성을 위한 목민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게 작명 되어진 여민관, 위민관 등에서는 행정과 의회를 운용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관청은 갑의 위치이고 민은 을의 위치에 있는 듯하다. 필자도 한때는 여민과 위민을 위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작년 가을이었다. 어느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질문을 받는 자리였는데 공군법사로 있는 스님 한 분이 내게 “불자 장병들에게 지속적인 신심을 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기에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금강경’에는 두 가지 큰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부처임을 믿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크나큰 서원을 세우라는 말씀이다. 금강 같은 믿음은 내 삶에 확신을 갖는 것이고 그 확신은 자신의 삶에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경에서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