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는 쉽지 않았다. 2주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매일이 버거운 날들이다. 길에서 자고 길에서 일어나, 걷는 것은 안락한 생활에 안주했던 몸과 마음이 편하게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이었다. 하루 일정은 새벽 2시에 시작됐다. 도량석에 맞춰 일어나 텐트 안의 짐과 침낭, 매트를 정리하고 의복을 갖추면 예불과 동시에 3시에 순례에 나선다. 빛이 들지 않은 길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다. 그 길을 오로지 대중들의 랜턴에 의지해 걸었다.여러 길을 걸었다. 아스팔트길, 흙길, 골목길, 고속도로. 편한 길은 없었다. 아스팔트는 파이고 곳곳이 부서져 조
동국대학교가 인도 나란다대학(Nalanda University)과 학술교류 MOU를 체결했다.학교법인 동국대 건학위원장 돈관 스님과 윤재웅 동국대 신임총장은 2월24일 인도 비하르(Bihar) 주 Nalanda지역 라즈기르(Rajgir)의 나란다대학에서 수나이나 싱(Sunaina Singh) 총장과 학술교류 협력을 논의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으로 도보순례 중인 기획부총장 종호 스님, 정각원장 진명 스님과 황순일 불교대학장, 김용현 교수 등이 함께했다.이번 협약식은 상월결사 회주 자승 스님이 한국불교 중흥을 목표로 스님과 재가불자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2월26일 교단 성장의 든든한 터전이 되어준 라즈기르를 떠나 날란다로 향했다. 라즈기르가 ‘법화경’과 ‘염화미소’의 고향이자 최초의 도량 ‘죽림정사’와 1차결집의 장소 ‘칠엽굴’ 등이 남아있는 교단 성장의 현장이라면 날란다는 세계 최초·최대 불교대학이었던 날란다사원, 수 많은 구법승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나섰던 교학의 중심지였다.날란다사원은 5세기 굽타왕조의 샤크라티디아왕이 창건했다. 이후 여러 왕들이 대를 이어 사원을 증축했다. 무려 6명의 왕들이 정성 들여 세운 날란다사원은 7세기 중국의 구법승 현장 스님이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17일 만에 수많은 법이 펼쳐진 도시이자 교화와 교단 성장의 든든한 터전이 되어준 라즈기르에 도착했다.2월25일 새벽 비까이푸르를 출발한 순례단은 제티안, 팔두를 거쳐 라즈기르 북동쪽에 위치한 영취산에 이르렀다. 날개를 접고 앉은 독수리 모양의 바위로 인해 ‘신령스런 독수리산’이라 불리는 영취산은 부처님께서 ‘법화경’를 설한 장소로 불화 ‘영산회상도’의 무대로 불자들에게 각인돼 있다. 또 부처님께서 설법 중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자 마하가섭만이 이를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의 역사적인 장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2월24일 16일차 일정을 진행했다. 순례단은 이날 키이야를 출발해 만절리, 나와다, 게허로르를 거쳐 비까이푸르까지 25km를 행선했다. 숙영지로부터 27km 떨어진 곳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한 영산회상의 무대 영축산이 있다.영축산으로 향하는 길은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사이 드문드문 커다란 돌덩이가 바다 위 섬처럼 대지에 솟아 있다. 이내 하나로 뭉쳐 작은 동산을 이루더니 곧 전법의 길 따라 곧게 능선을 뻗었다. 영축산이 지척임을 변화
마하보디사원에서의 벅찬 감동과 환희, 불교중흥과 세계평화의 발원을 가슴에 새긴 순례단이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산회상의 무대이자 불교 교단 최초의 도량인 죽림정사, 그리고 옛 구법승들이 꿈에도 그리던 날란다대학이 있는 라즈기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이틀간 보드가야에 머물며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마하보디대탑 앞에서 참회와 발원, 정진의 시간을 가진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2월23일 새벽 3시 다시 길로 나섰다. 상점과 호텔이 즐비한 길 한복판을 걷고 곧 마하보디사원이 꿈처럼 스쳐 지나가고 이내 네란자라강에 도착했다.수행자 싯다
한국불교 중흥과 세계평화, 생명존중을 발원하며 부처님 전법의 길을 따라 43일간 1167km 도보 순례에 나선 상월결사 인도순례 대중들을 위문하기 위해 인도를 순방 중인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영축산에서 특별법회를 열었다.조계종에 따르면 진우 스님은 2월22일 오전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에서 상월결사 인도순례 대중들과 함께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원법회’를 봉행한 직후 부처님이 1250명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한 인도 영축산을 찾아 대중들과 함께 법회를 열어 즉석 설법을 했다. 법회에는 인도 순방에 동행한 조계사를 비롯해
햇살이 눈부시게 일렁이고, 온 도량에 정법의 향기가 그윽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이곳에 세계 각국의 수행자들이 정진하고 있으니 구도 열기가 성지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습니다.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보드가야 마하보디 대탑 앞에 한국불교의 사부대중이 인도의 도반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께서 직접 걸으셨던 흙길을 따라 43일간 도보 순례를 진행하고 있는 상월결사 인도성지 순례단의 공덕입니다.상월결사 순례단 여러분!그간의 노고가 얼마나 크셨습니까? 부처님의 나라이기에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
“부처님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청정하고 집착이 없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 보리수 이래에서 도를 이루셨습니다. 한 말씀으로 모든 것을 다 설하시고 하나하나의 가르침 속에서 갖가지 모든 법을 남김없이 다 설하여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성도를 공경한 보현보살의 마음으로 상월결사 사부대중은 부처님의 성도를 찬탄드립니다.”상월결사(회주 자승 스님)는 2월22일 오전 불교의 탄생이자 부처님께서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한 마하보디사원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원법회’를 봉행했다. 법회에는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뿐
“회주스님이 부처님을 앞에 모시고 걷는데 뭉클하더라고요. 사진을 보는데 괜히 코끝이 찡했어요.” (무진향 불자)“쫄래쫄래 순례단 좇는 강아지 영상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전생에 선업을 많이 지은 게 분명해요. '스님들 만난 인연으로 다음 생엔 꼭 사람으로 태어나라' 마음 속으로 말했어요.” (일지행 불자)“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순례단이 건강히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밖에 없잖아요. 몸은 떨어져 있어도 간절히 마음은 같이 하고 싶어요. 기도가 인도까지 닿을 수 있게 정진하려고요.” (실상화 불자)부다가야 마하보디 사
상월결사 회주 자승 스님이 “(사부대중의) 마음속에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이 모아져 포교를 실천할 때 비로소 한국불교의 중흥은 이뤄진다”고 역설했다.자승 스님은 2월22일 오전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 14일차를 맞아 마하보디사원 보리수나무 앞에서 열린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원법회’에서 이같이 말했다.자승 스님은 이날 “8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일행들에게 무엇인가 전달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울컥해서 아무런 말을 못했다”고 회고한 뒤 “아마 오늘도 그와 같은 마음이 전달돼 여러분 앞에 무슨 말을 해야 할
신라의 혜초 스님은 뱃길을 따라 인도에 도착해 바라나시를 거쳐 마하보디사원 대탑 앞에 섰다. 멀고도 먼 순례길의 초입에서 혜초 스님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자리에 서 있는 거대한 대탑을 친견하는 순간 곡절 많은 그간의 사연들을 내려놓고 오로지 환희에 찬 시를 남겼다.‘보리대탑 멀다지만 걱정 않고 왔으니, 녹야원의 길인들 어찌 멀다 하리오. 길이 가파르고 험한 것은 근심되지만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 여덟 탑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 세월을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어찌 이리 사람 소원 이루어졌는가. 오늘 아침 내 눈으로
오늘 순례길은 한바탕 축제였다. 북 치고 나팔 불며 리듬을 타자 사람들은 어깨춤을 덩실거렸다. 마을 어귀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내자 흥겨운 가락은 절정으로 치달았고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내어준 길 따라 천천히 이동했고,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뒤를 따랐다.2700여년 전 부처님을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이 이러지 않았을까.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 12일차 회향지 카파시아에서는 이렇게 뜻밖의 야단법석이 펼쳐졌다. 순례단은 엄어와를 떠나 더다파, 마라하를 거쳐 카피시아까지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톳길 따
인도에 왔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거룩한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 깨달음의 역사가 현존하는 땅.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은 2020년 치열했던 상월선원 천막결사 동안거 회향 후 인도의 부처님 8대 성지를 직접 걸어 순례하는 만행 수행을 제안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구촌 전체가 대재앙에 신음했다. 그래서 시선을 국내로 돌렸다. 매년 국난극복 자비순례(2020), 삼보사찰 천리순례(2021), 평화순례(2022)라는 주제로 국내를 만행하며 국난극복과 불교중흥을 발원했다. 그리고 3
“왕을 비롯하여 수령이나 백성들도 삼보를 매우 숭상한다. 절도 많고 승려도 많았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행해지고 있다. 지금은 대식국(이슬람)의 침략으로 나라의 태반이 파괴되었다.”혜초 스님은 ‘왕오천축국전’을 통해 서천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혜초 스님이 인도에 갔던 8세기는 위쪽으로는 이슬람의 침략으로, 안으로는 힌두교의 발호로 불교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혜초 스님이 인도 구법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구법승이 크게 줄었고 혜초 스님 같은 구법승을 통해 오히려 불교를 다시 접했을지 모른다.지금의 인도도 마찬가지다.
“상월선원 인도순례는 인도정부의 배려와 외교부의 도움을 큰 어려움이 없이 원만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대변인 종호 스님은 2월18일 인도순례 10일차를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인도순례 전반에 대해 설명했다. 스님은 “시간이 갈수록 피로가 누적되면서 힘들어하는 분들이 늘고 있지만 대중 모두 회향에 대한 의지가 강해 순례는 문제없이 원만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특히 인도정부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스님은 “인도정부가 순례단의 안전과 관련해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어 그 부분에 진심으로 감사
부처님은 보드가야에서 성도를 하시고 법을 전하기 위해 사르나트(녹야원)까지 7일 만에 가셨다. 보드가야에서 사르나트까지 273km이니 하루에 40km가량을 걸으신 셈이다. 맨발에, 더운 날씨까지 길거리에서 자고, 걸식하셨을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초인적인 걸음이 아닐 수 없다. 무명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법을 펴겠다는 대자비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2월18일 28km를 걸어 숙영지 파르사에 도착했다. 첫 번째 성지인 사르나트에서 8일간 하루 평균 25km를 걸어 두 번째 성지 보드가야까지 이제
종일 고속도로를 따라 걸었다. 거대한 트럭과 유조차, 레미콘 차들이 줄지어 가는 도로는 내뿜는 매연과 연기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차들이 쏟아내는 엔진과 경적 소리 또한 걷는 내내 귀청을 긁었다.엄청난 먼지가 들어간 눈처럼 태양은 핏빛처럼 붉게 떠올랐다. 해가 중천에 떠도 환하고 명징한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마스크를 벗은 순례단의 코 옆으로 검은 그으름 같은 먼지가 선을 이뤘다. 고속도로 주변에도 마을은 있었다. 그러나 기찻길 옆 오막살이처럼 살림은 빈해 보이고 사람들도 남루했다. 먼지를 뒤집어 쓴 마을과 도로에 접한
순례길은 끝날 때까지 조고각하(照顧脚下)의 길이었다. 자신의 발밑을 잘 살피라는 의미인데,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의 수행을 잘 들여다 보라는 경책이다. 도심을 완전히 벗어나 시골로 들어서자 길은 낡고 해진 신발처럼 곳곳이 파이고 부서져 있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졸면 파인 곳에 발을 헛디뎌 처박힐 위험이 끝없이 이어졌다. 더구나 햇살 한 줌 없는 새벽 3시에 길을 나서는 순례단에는 그야말로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다리에 난간도 없고, 시골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이르는 옆으로 달리는 차들로 인해 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바람은 차가웠다. 아침예불을 모시고 출발한 일행을 맞이한 것은 우리나라 늦가을 같은 쌀쌀함이었다. 하루에 온도가 20도 이상 차이 나는 날씨에 탈이 난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 전날 도심 한복판에 숙영지를 잡았던 순례단은 새벽녘에 잠든 인도의 도시를 빠져나왔다. 갖가지 건물들과 상점, 학교 등은 복잡하고 혼잡한 인도 도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도심을 빠져나오자 주변 환경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도심의 중심지에서 변두리로 그리고 다시 시골로 이어졌다.길은 하천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하천을 중심으로 옆에 길이, 그 양옆으로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