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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결사 인도순례 8일차] 움푹 파이고 부서져나간 도로…가는 곳곳 조고각하의 길

방심하면 크게 다칠 수 있어…깨어있도록 하는 경책
힘든 난관들 순례길 위해 기도·발심하는 계기로 삼아

순례길은 끝날 때까지 조고각하(照顧脚下)의 길이었다. 자신의 발밑을 잘 살피라는 의미인데,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의 수행을 잘 들여다 보라는 경책이다. 도심을 완전히 벗어나 시골로 들어서자 길은 낡고 해진 신발처럼 곳곳이 파이고 부서져 있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졸면 파인 곳에 발을 헛디뎌 처박힐 위험이 끝없이 이어졌다. 더구나 햇살 한 줌 없는 새벽 3시에 길을 나서는 순례단에는 그야말로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다리에 난간도 없고, 시골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이르는 옆으로 달리는 차들로 인해 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비록 작은 부상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탈하게 순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가피와 함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고각하 했던 순례단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마도 순례가 회향될 때까지 순례단은 끝없이 조고각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바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함께 이 길을 걷는 이유를 되새기는 좋은 수행이 될 것이다.

2월15일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 8일차 정진의 풍경이다. 이날은 이번 인도순례 기간 중 행선 거리로는 가장 긴 30km를 걸었다. 읍내의 신작로 같은 낡은 도로 옆으로는 물이 흘렀다. 인도 마디야프라데시주에서 발원해 비하르주 동쪽에서 서쪽까지 280km를 가로질러 갠지스강까지 이어지는 손강의 지류다. 영국식민지 시절 만들었다는 이 수로를 이용해 인도인들은 주식인 난(naan)을 위한 밀을 재배하고, 기름을 얻기 위해 유채를 키운다.

동틀 무렵 손강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는 순례단의 행렬을 그림처럼 장엄했다. 그러나 순례단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새벽의 기온을 뚝 떨어뜨려 그렇지 않아도 추운 대지를 차갑게 했다. 얼마 후 태양이 떠오르면서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이번에는 더위라는 고통이 찾아왔다. 마치 겨울과 여름만이 존재하는 듯한 날씨는 순례대중이 매일 직면해야 하는 난관이다.

힘든 순례길이지만 순례단은 오히려 더 기도하고 발심했다. 2600여년 전 이 땅에 나투신 위대한 부처님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도봉 스님은 이번 순례가 처음이다. 다소 생경한 데다 며칠 전 찾아온 감기로 잦은 기침에 목이 잠기는 등 컨디션도 좋지 않다. 스님은 “길 위에 직접 서보니 부처님께서 얼마나 어려운 결심을 하셨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며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걷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화두를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불제자로서 부처님 성지를 걸어서 순례한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에 두고두고 남을 뜻깊은 불사”라고 강조했다. 또 “이 길을 걸으며 부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길 위에 섰으며, 출가자로서 어떤 길을 가야할지 답을 찾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덕현 스님은 이른 새벽의 행선이 쉽지만은 않다. 행선 중 수시로 찾아오는 졸음이 곤혹스럽다. 그렇지만 “순례를 오기 전에는 알람소리를 듣고도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도량석 전에 이미 눈을 뜬다”며 변화된 모습을 설명했다. 스님은 “이런 변화된 모습은 진실하게 기도하는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새삼 알게 됐다”며 “깨끗하고 편안하게 부처님 성지를 순례할 수 있음에도 이 길에 동행한 것은 출가할 때의 초심이 아니면 못해낼 일이기 때문이다. 발원하고 신심을 내 동참한 자리인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부처님 이운에는 3조가 자청했다. 현해 스님이 첫 번째로 부처님을 품에 모셨다. 이번이 첫 인도 성지순례라고 밝힌 현해 스님은 “부처님께서 수행해 깨달음을 얻고 법을 전하신 이곳에서 부처님을 직접 모시고 걸어보니 수행자로서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며 “부처님 성지를 참배하며 왜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졌는지, 한국불교는 어떻게 전법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순례길에서 방문하는 마을마다 신을 모시는 공간이 있었다”며 “믿음이 있으니 불성으로 귀의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면 인도에 불교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불교가 다시 꽃피우길 간절한 마음으로 서원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텐트가 아닌 숙소에 머문다. 순례단은 지금껏 175km를 순례했다. 숙소 입구에는 회향지인 사사람 지역의 힌두교 신자들이 찾아와 순례단을 환영하고 축원해 눈길을 끌었다.

사사람=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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