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발상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는 역사를 퇴행으로 몰았던 자를 부활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근현대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삼겠다는 의도다. 천박한 보수주의자들 표를 얻어 권력을 지속적으로 장악하겠다는 심산이다. 광장 주위에는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해 태고종 법륜사, 천도교 중앙본부 터도 있다. 정화유시로 불교계를 분열시킨 장본인을 불교도들이 영구히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어찌 이렇게 역사가 역류할 수 있을까. 이승만은 두
1990년 5월 1일 ‘깨치는 소리 나누는 기쁨’을 기치로 내세운 불교방송(BBS)이 첫 방송을 시작했을 때 수많은 불자들이 감격하였다. 나도 승용차를 운전할 때엔 당연히 BBS를 들었고, 교수이든 아나운서이든 가리지 않고 BBS프로그램 진행자들에게 환호하였다. 35년이 되어 가는데 나를 비롯해 개국 초기 진행자들의 이름과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불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었고 큰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는 뜻이다.방송 설립 추진은 조계종과 대한불교진흥원 양쪽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조계종은 원력과 의지가
2월에 백설이 만곤건하다.멀리 바라보이는 북악산의 설경으로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좋다. 빌딩 숲 사이에 놓인 조계사의 대웅전이 눈으로 가득 덮히고 나니 그 고고한 자태를 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온통 변하고 바뀌어도 천년토록 우리 문화의 숨결이 머무르며 고유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심 속 대웅전의 모습은 눈 온 뒤 그 존재의 가치가 더욱 선명한 것 같다. 유구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불교는 존재 그 자체가 나라의 보물이요, 우리 문화의 원천이 아니겠는가?우리들은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를 잃기 마
우리나라 대다수 관청은 여민관, 위민관 등의 현판을 걸고 있다. 아마도 ‘국민들을 위하여’, 또는 ‘국민들을 대신해서’라는 위임의 뜻일 것이다. 한편으로 정약용의 ‘목민관 덕목’을 닮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정약용은 “군사, 행정, 그리고 법이 필요한 것은 오로지 백성을 위한 목민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게 작명 되어진 여민관, 위민관 등에서는 행정과 의회를 운용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관청은 갑의 위치이고 민은 을의 위치에 있는 듯하다. 필자도 한때는 여민과 위민을 위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일 것이다. 나는 몸이 찌뿌둥하면 산이 당기고, 마음이 뒤숭숭하면 바다가 그립다. 그것도 겨울 바다가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만 유난히 그런 것도 아니었나 보다.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 아재 셋이 밥 먹다가 급발진 의기투합해서 멀리 경주 바닷가의 문무대왕릉을 보러 가는 걸 보면.인적이 끊긴 겨울철 해거름의 감은사지는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 대나무숲 사이로 가끔 서걱거리는 댓바람 소리가 들렸을 뿐 사방은 정중동 깊은 침묵 속의 무문관 분위기. 겨우 살아남은 석탑 한 쌍도 언제 허물어질지 모를 위태로운
연말연시에 학생들과 함께 인도 불적지 순례를 했다. 과거와 현재, 신과 인간, 야만과 문명이 공존하는 인도는 혼돈 그 자체였다. 무리한 일정을 따르다 보니 독감에 걸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평소 그렇게도 원했던 성지순례를 하게 되어 비록 상비약과 침대 신세를 졌지만, 어떻게든 2600년 전 석존의 숨결과 자취를 느끼고자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분리된 심신 때문에 그간 공부해 오면서 상상했던 성지의 모습과 현실과의 간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의문을 증폭시켰다.특히 부다가야의 마하보디대탑에서는 시야의 광경
“중앙승가학원이 큰 교육기관으로 발전되어 많은 인재가 배출되길 바랍니다.” 1979년 4월 14일 서울 돈암동 보현사에서 중앙승가대학교의 전신인 중앙불교승가원을 개원하는 자리에서 석주 스님이 전한 법어 중 한 대목이다.‘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승려전문교육 정규대학으로 1979년 개교에서 2024년 현재에 이르러 42회 졸업생 2000여명의 동문을 배출하며 한국불교의 지도자 양성에 매진해 왔다’고 하는 홈페이지 표현대로, 5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중앙승가대학교는 현대 한국불교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이 승가대의 앞날
가끔 삶이 의지와 상반된 모습으로 질주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 한 발 뒤로 물러나 ‘운명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가 후 얼마 되지 않아 94년 종단 개혁의 물결이 덮쳐왔다. 지금은 엄격히 금지되어있지만, 당시 해인강원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인들이 총무원 앞에 모여 시위했다. 시위의 형태는 학창 시절 워낙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출가한 승려가 이러고 있으니 가치의 혼돈을 엄청나게 겪어야 했다.‘개혁팀’들이 성공해 종단의 구조와 관계 법령을 재정비했고 30년의 세월을, 개혁의 기본 틀에서 안정을 찾으며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
지난가을 내내 남의 일로만 여겼던 우울증을 앓았다. 친구의 말기 암 투병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정년퇴직을 앞둔 내 나이가 환갑 되던 해에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많다는 자각이 더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나 친구처럼 나도 이제 물리적으로 충분히 죽을 나이가 되었다는, 자연의 진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만 했던 2023년의 가을은 유난히 길었다. 갑자기 어릴 적 추억들이 가을비 우산 속의 연인들처럼 정겹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비현실적인 욕망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그즈음 수십 년 만에 어렵게 연
영화 ‘서울의 봄’이 근래 핫하다. 내 기억 속엔 10월 유신으로 각인되어 있다. 어린시절을 유신시대와 보냈고, 유신에 대한 포스터도 열심히 그려 상도 받았다. 그 시절 아침에는 늘 ‘새벽종이 울렸네’가 울려 퍼졌다. 깃발을 들고 아이들이 줄을 지어 등교를 하던 아주 옛날 이야기와 같은 시절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통학버스 안에서 라디오 뉴스로 들었다. ‘서거’라는 말도 처음 들었지만, 어른들의 탄식과 허둥대는 모습에서 뭔지는 모르지만 큰 문제가 생겼구나 직감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걱정하는 소
이미 법적으로 단죄된 12·12군사반란을 주제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극장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역사물에 열광하는 층의 절반 이상이 반란 직후인 1980년대에서 2010년대 태어난 MZ세대가 차지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 덕분에 자신의 본분을 지키다 사망한 군인들이 묻힌 묘소를 참배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언론은 물론 인터넷에서는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역사가 반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피와 눈물로 쌓아올린 민주화에 성공한 이후, 권력의 사유화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의식의
지난 11월17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이 서울의 서소문역사문화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범법자로 몰린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한 장소이다. 1811(순조 11)년 일어났던 홍경래란 연루자들과 1894(고종 31)년 동학농민혁명 가담자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거부하는 등 조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외국 세력에게 길을 안내하고 지도를 만들어 전하는 방식으로 침략을 도와주거나 황사영처럼 “군함을 보내 조선정부를 무너뜨려 달라”는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반국가·반민족 행위를
지구 온난화가 임계점에 도달하였다.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던 2도의 벽이 허물어졌다 한다. 유엔 환경계획은 현재 각국이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이행한다 해도 세기말까지 지구의 온도가 2.9도 오를 가능성이 66%나 된다고 예상하였다. 문제는 각국이 이 감축목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20개국 중 탄소중립 목표대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는 국가가 하나도 없다 한다. 이대로 나가면 걷잡을 수 없는 기후재앙으로 온 인류가 존망의 위기에 처할 것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로 되고 있
절 이름 한번 그럴듯하다. 망경산사(望景山寺). 멋진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일 터.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망경대산 기슭 해발 800m 고지에 고즈넉하게 들어앉았다. 한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날마다 북적이던 이름난 탄광촌이었다고 했다. 청량리역에서 두 시간 조금 넘게 그리고 다시 동네 택시로 40분을 더 달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곳. 절 앞마당까지 이어지는 굽이굽이 고갯길은 아찔할 정도로 현기증이 났고, 숨이 찰 정도로 가팔랐다. 이름 모를 산야초들의 꽃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내년 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한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암자에 주석하고 있다. 마당에 서 있는 오래된 단풍나무는 엊그제 내린 된서리에 잎을 모두 내려놓았고, 그 단풍나무를 딱따구리가 시끄럽게 쪼아대고 있다. 나한님은 산 중턱부터 내려온 큰 너럭바위 아래 깊은 굴속에서 촛불 하나 의지해 깊은 선정에 들어계시고, 바위굴 주위에는 산신님 칠성님이 옹기종기 둘러 않아 소임을 다하고 있다. 한가로운 일요일에 기분 좋게 청소를 끝낸 정갈한 도량에는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고 있다. 가사장삼 두른 나는 부처님과 독대하고 있다. 부처님은 구중궁궐
2000년 전 대승불교 출현에 재가자가 어떻게 관여했는가에 대한 연구는 일본학자 히라카와 아키라 교수에 의해 시작됐다. 석존의 유골을 모신 탑의 건축이나 관리가 재가자들에게 위임됐으며, 그것이 계기가 돼 재가자들이 대승교단 형성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동서양 학자들에 의해 이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고, 그것이 축적돼 대승불교 흥기의 기원에 대한 논의도 더욱 깊어졌다. 더불어 대승의 보살도가 출·재가가 함께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이념임은 분명해졌다. 재가자들이 대승교단의 양 날개 중 하나임은 이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앙정부에서 결정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던 시절에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의 힘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러다 1995년에 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장관급 예우를 받던 서울시장은 물론이고, 차관급 예우를 받던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도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장·군수와 광역 및 기초의회 의원의 위상도 높아져, 국회의원·장관 등 중앙정치 무대 진출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는,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높여서 행정 감시
발심 출가한 행자들의 50% 이상이 출가 3개월 이내에 환속을 고려했다는 법보신문 최근 기사를 보면서 조계종단과 한국불교의 근본적인 위기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우선은 출가자의 절대 부족이 근본적인 위기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조엔 당시 출가자에게 발급된 도첩이 5만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도첩을 받지 않고 출가한 사람까지 고려하면 10만의 승려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불교가 탄압받던 시절임을 감안하고 현재 불교 승려 수와 비교해 보라. 조계종단 스님 총수가 1만 3천 전후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근본적인 위기 상황이다. 일반적
베이비 붐 세대로 불리는 우리 또래는 무엇보다도 손편지 세대였다. 걸핏하면 영혼 없는 위문편지를 써야 했고, 친구의 낯 간지러운 연애편지를 돌려가면서 읽었다. 담임교사의 편지 샘플을 본보기 삼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두세 통의 위문편지를 뚝딱 써냈던 기억들이 아스라하다. 더러 마음에 없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짝꿍을 위해 작문 실력을 발휘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군인 아저씨 앞으로 배달될 위문편지가 교탁 위에 수북이 쌓였다. 이쯤에서 문득 지난날이 무조건 아름답게 채색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마음의 질병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치는 국민과 다른 정당들과 관계 맺고 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세상의 질서는 관계 맺기로 이루어져 있다. 불교적인 용어로 본다면 ‘인연맺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한 갑자를 넘기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관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세상에 신물이 나서 은둔적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자연의 순리대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의지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한창 혈기가 왕성하고 에너지가 강할 때는 정의에 방점이 있어서 옳고 그름의 가름이 분명했다. 지금은 은둔자처럼 살고 있지만 결국에는 세상과 연대하고 관계 맺고 살아가는 생명이기에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