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소통’이다. SNS나 유튜브 등의 미디어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소통이라는 주제가 지금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예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소통의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종교였다. 특히 법회나 예배에 참석하여 종교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여러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역할을 한 것이 종교행사였다. 과거에는 신라의 연등회나 팔관회 등에 왕족이나 귀족들이 참석하여 자신들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자리로 삼았고, 현대에도 다양한
올해는 윤달이 있는 해여서 전국 여러 사찰에서 수륙재와 천도재를 올리며 돌아가신 영가와 여러 고혼들을 위로해주고 있다. 많은 불자님들도 자신의 가족과 자손들의 평안함과 행복을 위해 기도에 동참하고 계신다.근데 일각에서는 천도의식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기복적이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무상, 고, 무아라는 삼법인에 어긋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천도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우선 불교에서는 고정불변의 실체인 ‘자아(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한다. ‘나’라고 지칭할 수 있는 자아를 인정하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20세기와는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 그중에 정보의 검색과 공유가 편리해지며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고 알 수 있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 한 권 읽고 싶어도 서점을 찾아가야 했고,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전문서적이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손바닥 안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고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앞으로도 우리의 삶이 더욱 편리해질 것이고 그 변화에 대한 무한한 기대감을 갖게 해주는 것
비구, 비구니는 우바새, 우바이로부터 보시와 공양을 받아 그 힘으로 수행을 한다. 현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자칫 불로소득과 같이 보일 수 있으나,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셨듯이 수행자는 불법의 믿음을 씨앗으로 하여 자신을 깎아내는 수행으로 깨달음의 지혜라는 결실을 맺는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을 자신만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닌 보시를 해준 재가자들에게 다시금 회향하여 열반을 향해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승가의 모습은 출가의 자리이타와 재가의 자리이타에 동시에 구족된 모습이다. 재가자는 출가자의 수행을 지지하고
불교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가르침을 알려주는 종교이다. 즉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말하는 신의 종교가 아닌 오늘 하루 동안에 경험하는 수많은 일상 속에서 법을 찾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의 종교이다. 특히 부처님이 수행을 통해 깨달으신 연기법은 우리들이 경험하고 만나는 모든 상황과 일들을 가장 원만하게 이해시켜주고 풀어주는 가르침이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으로 인해 그에 상응하는 결과도 반드시 생겨난다는 것이 연기법(인과법)이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인과응보’라고도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일상은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형태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어느 곳에 가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피하게 되었고 어디를 가더라도 반드시 마스크와 소독제를 챙기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불필요한 외출은 국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삼가는 사회적 풍토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회현상과 더불어 새롭게 생겨난 것이 영상매체를 통한 일상의 소통과 교육이다. 코로나19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외출을 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존재들이기에 그러한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면
얼마 전 다시 강원도 고성에 큰 산불이 발생해 수많은 재산피해와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한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산불이라는 재난은 수십 수백 년을 가꾸어온 자연을 훼손시키고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피해를 준다. 게다가 산불의 원인이 쓰레기 불법 소각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소식에 한 사람으로서 자연에게 너무나 창피하고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재앙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이뿐만 아니라 지난해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인근 5개 시, 군에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될 정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근거 없이 비방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자신들의 공약을 내세워 국민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과거의 일까지 드러내며 헐뜯기 바쁘고 때로는 사실이 아닌 일을 마치 정말 있었던 것처럼 말하여 사람들을 선동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상대를 비방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경험할 수 있기도 하다. 회사나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른 누군가의 뒷이야기를 하거나 소문으로만 들은 것을 마치 자신이 보고 들
불교는 중도의 가르침을 설하는 종교로서 어느 한 쪽의 사상만을 고집하는 것을 부정한다. 특히 자신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편향된 이야기를 하거나 행동을 하는 것은 불교에서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그렇기에 현재도 불교의 대사회적 운동이나 발언이 다른 종교에 비해 적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하는 것이다.종교라는 특성상 정치적 행동이나 발언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집단과 반대되는 이들에게 의도치 않은 괴로움과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또한 국가나 사회와 관계를 맺고 지내다 보면 그 안에 속하지 못한 이들에
불교의 식문화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육식의 금지이다. 이러한 내용은 특히 우리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바로 생명존중이라고 하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의한 것이다, 불교에서 육식을 금지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다른 동물, 유정이라고 불리는 존재의 피와 살을 먹기에 금지하는 것도 있으나, 그 이전에 그 생명 있는 존재들이 누군가의 탐욕과 집착에 의해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생명존중의 모습은 ‘범망경’의 ‘제10 축살생구계(畜殺生具戒)’에 보다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이 계율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가 조금이나마 가라앉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종교단체에 의한 갑작스런 폭증을 제외하고는 선진국민의식과 적절한 정부대응으로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잘 이겨내고 있다. 또 불교에서도 산문을 폐쇄하고 중요 일정 등을 취소하며 이번 사태에 동참하여 훌륭하게 국난을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곳곳으로 확산되는 중이기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각자의 위생관리를 지금만큼 해내야 한다.그리고 우리는 두 달 가까운 시간동안 국가와 전 국민이 코로나19와 싸웠고 앞으로
불교에는 나라만큼 다양한 사상과 교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수행을 기반으로 하는 선종, 정토종, 화엄종 등의 종파가 있고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등과 같이 추구하는 교리와 교법에 따른 종단들도 존재한다. 사람들마다 추구하고 바라는 것들이 다양한 만큼 불교도 이처럼 다양해지고 새롭게 생겨난다.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바깥출입이나 법회 등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며 유튜브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불교활동을 이어가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참하고 있다. 이처럼 시대와 환경에 따라 불교는 계속 변화되어 왔고 지금도
최근 불교계에서는 SNS나 유튜브 등을 개설해 사찰의 여러 행사를 알리거나 법회 등을 중계하고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찰 출입이 불가했을 때 인터넷 미디어들이 좋은 역할을 하여 영상으로라도 사찰의 풍경을 즐기고 법회에 간접적으로 동참할 수 있었다. 해인사의 경우에도 한 달 이상의 산문폐쇄로 인해 많은 불자 분들이 기도 동참이나 참배를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새롭게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적극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홍보하였다.미디어 법회 등으로 인해 사찰을 방문하는 불자들이 줄거나 종교적 가르침이 가벼워지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나쁜 의도를 갖는 고의적으로 저지르는 악한 경우도 있으나, 생활 속의 대부분의 실수는 우리의 부족함에 의해 의도치 않게 생겨난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생기는 실수나 운전 중에 끼어들기를 하거나 주차를 하다가 생기는 실수 등 우리는 수 많은 일상 속에서 여러 실수와 만나며 항상 무언가 부족함이 가득한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이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좋아지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배우고 익힐 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매일 같이 다양한 일들이 수 없이 생겨난다. 그 안에는 좋은 일로써 많은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거나 큰 감동을 주는 일도 있는 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으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축하나 공경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쁜 일이 있으면 서둘러 그것을 감추거나 없었던 일로 하기 위해 또 다른 나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잘못된 일이라면 오히려 더 서둘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용서를 구해서 다시는 그런
불교에서는 육식과 더불어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불리는 것이 있다. 이른바 ‘오신채(五辛菜)’라고 불리는 채소이다. 이 오신채는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다. 매운 맛을 갖고 있기에 이것을 먹으면 몸에 열이 생기고 음욕심을 발생시켜서 수행에 방해가 되기에 금지되었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이러한 오신채를 금지시킨 내용도 분명 불교 내에서 전해지는 제정이유이기는 하지만 제법 시간이 지난 뒤에 생겨난 것이다. 율장에서 마늘을 금지시킨 이유는 마늘을 보시한 장자의 밭에서 마늘을 전부 가져와 그 장자에게 피해를 주어 금지가 된 다소
전 세계를 마스크 속에 가둬두고 사람들 간의 만남을 두려움으로 몰고 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 발생에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나 가장 주된 원인으로는 잘못된 식습관이 거론되고 있다. 박쥐나 천산갑을 식용으로 사용하며 그 안에서 2차적으로 오염된 바이러스가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면서 이러한 공포의 질병이 된 것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식습관에 대한 경고는 인류의 의식주가 점차 풍요로워지면서부터 항상 염려되어오던 일이었다. 어쩌면 염려 이전에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인류의 식습관이 육식 위주로 변화되며 종전에 없던 새로운 질병이 생기고
불교의 계율에는 크게 율장과 보살계가 있다. 율장은 출가 승려들이 지켜야 하는 것이고 보살계는 대승의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 중 우리는 보살계인 ‘범망경’을 살펴보고 있다. 앞선 내용에서는 ‘범망경’의 10가지 무거운 죄와 48가지 가벼운 죄(십중사십팔경계) 중에서 무거운 죄를 살펴보았고 이제부터는 가벼운 죄를 함께 확인하겠다.무거운 죄와 가벼운 죄라는 구분이 있어서 마치 가벼운 죄는 다소 어겨도 되지 않을까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는데, ‘범망경’에서 말하는 죄의 구분은 그 죄를 어기는 빈도와 번뇌의 무게,
최근 몇 년 사이에 불교계에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사회적으로 지적받을 만한 일들도 있었고, 허위사실을 포장하여 사람들을 선동한 일들도 있었다. 종교계의 일이다보니 대중들의 이목을 끌고 그에 따른 처벌도 보다 깊게 이루어졌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에 대한 참회와 성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보다 나은 청정 승단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수행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여법하게 정진에 임하고 있다.그러나 이렇게 수행정진을 하며 불교를 부흥하려는 노력이 있는 반면 그 안에서 이익을 따지며 지금도 불교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최근 우리 사회는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소통과 만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로 인해 서로 간의 이해가 줄어들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불처럼 타올라 다투는 경우가 빈번하다. 뉴스를 보아도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에 소송을 하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주문한 물건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택배 기사님이나 해당 회사에 불만을 터트리고 식당에서도 자신의 차례가 다른 사람보다 밀리기라도 하면 큰 소리를 내며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풍족해지고 어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