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명한 승려가 유튜브에서 “윤회는 없다”고 말하여 일반 불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과학 시대에 동물로 태어나는 식의 윤회가 실제로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윤회가 정말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필자는 윤회의 유무가 아닌, “무엇을 윤회라고 하는가?”를 되묻는다.자아가 있으며, 이 자아(ātman)는 육체가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나 삶을 계속한다는 의미의 윤회는 힌두교의 윤회관이며, 무아를 근본으로 하는 불교의 윤회는 아니다. 붓다는 이러한 윤회가 무명(無明)에 기
대승불교권인 우리나라에서 불자들은 수많은 대승경전이 서로 제일이라 주장하는 것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 쉽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초기불전, 부파불교 논서, 대승불전 등 다양한 삼장(三藏)이 뒤섞여 들어왔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충되는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심하게 되었다.이러한 혼란을 통일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방편설(方便說)과 교상판석(敎相判釋)이다. 방편설은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다양한 설법을 펼쳤다는 ‘대기설법론’이며, 교상판석은 부처님이 시대에 따라
불법의 핵심은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이다. 일체의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고 변해가는 것이며, ‘나’라고 내세울 만한 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붓다가 불법을 펼치던 당시에는 우파니샤드 철학이나 브라만교에서 우주를 주재하는 브라흐마[梵]와 개인에 내재하는 실체인 아트만[我]이 실재한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붓다는 이러한 브라흐마와 아트만을 부정하고 무아를 주창하였다. 제행이 무상하다면 집착할 것이 없고, 제법이 무아라면 집착할 자가 없다. 오직 연기하는 현상만 있을 뿐이다.제행무상은 쉽게 이해되지만, 무아라는 것은 쉽게
붓다께서 무여열반에 드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단은 율(律) 문제로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되었다. 상좌부는 전통적 계율을 엄격히 고수하려 했고, 대중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계율의 유연성을 주장했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는 특정인을 중심으로 조직이 성립되었다가 그 리더가 사라지면 분열을 겪게 되는 역사적 경험과도 맥을 같이한다.붓다는 당시 마가다국과 꼬살라국의 일상어였던 마가다어로 설법한 것으로 전해진다. 붓다는 각 지방으로 전도에 나서는 제자들에게 그 지역 언어로 가르침을 설하도록 했다. 그러나
붓다는 성도 후 깨달은 진리를 일반인에게 알렸을 때 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전법을 망설였다. 이에 브라흐마(범천)가 가르침을 펴달라고 간절히 청했다.붓다는 이 권청을 받고 “그들에게 불사의 문이 열렸다. 귀 있는 자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라. 성가시다는 생각으로 나는 숭고하고 뛰어난 가르침을 전하지 않으려 했다네, 오 브라흐마여!”라고 고백하며 마음을 바꾸었다. 출가할 때 동행했던 다섯 비구를 떠올리고 바나라시 녹야원으로 향했다.붓다는 녹야원에 도착해 다섯 비구를 찾아 다르마를 설했다. 가장 먼저 꼰단냐가 깨
고타마 싯달타는 고행을 포기하고 기력을 회복한 뒤 보리수나무 아래 길상초를 깔고 고요히 앉아 깊은 사유에 들어가, 35세 납월 8일에 샛별을 보고 대각을 성취하였다.불전에 의하면 그는 인간과 이 세계가 연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종교적 체험을 자각하였다. 연기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연기를 불이중도(不二中道)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붓다의 깨달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인도 사회의 사상과 문화를 이
고타마 싯다르타는 출가한 후 여러 스승을 탐방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업 사상에 따라 업을 소멸시키려면 고행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극단의 단식과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는 수행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 이르렀다. 당시 모습을 조각한 청동조각상이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에 있다.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을 신과 동물의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보았고, 중국에서도 천·지·인 3재사상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 까닭에 뜻있는 인간은 신이나 하늘을 본받아 동물성을 초월하고자 하였다. 서양에서는 철학
‘태자 싯달타’는 모두 잠든 한밤중에 성을 떠나 출가를 감행하였다. 이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출가란 잠든 상태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첫 시도이다. 모두가 오욕에 취해 있는데 홀로 이를 뛰어넘고자 위대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밤이라도 달은 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잠들어 고요한데도 달은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달은 초승에서 보름과 그믐을 거쳐 적멸에 든다. 다시 초승달로 태어나 그믐까지 생사의 과정을 반복한다. 대승불교에서 달은 본래 면목을 상징한다. 이 점에서 출가란 달을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 볼 수 있다.‘지
불전에 의하면 싯달타는 탄생하면서 일곱 걸음을 내딛고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선언하였다고 전한다. 이 탄생게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겉으로는 부처의 위대함을 존경하는 뜻에서 범부와 다른 탄생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속으로는 모든 인간이 출생의 순간에 이미 완전한 존재임을 일깨워 준다. 우리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근대 국민국가가 태동하기 전까지 인간은 지배와 통치의 대상이었을 뿐, 인간으로서의 존엄
십중대계 중 네 번째는 “거짓말하지 마라”이다. 거짓말이란 참말이 아닌 것을 뜻한다. ‘쌍윳따니까야’에 의하면 “저울을 속이거나, 동전을 속이거나, 됫박을 속이는 것”을 예시로 들며, ‘수능엄경’에서는 “불법을 알지 못하면서 알았다고 하고,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을 대표적인 대망언(大妄言)으로 지적하고 있다. ‘팔정도’는 ‘정어(正語, 바른 말)’를 단순한 금지어가 아닌, 적극적인 수행의 방편으로 본다.반면, 기독교 경전에 따르면 모세가 야훼로부터 받은 십계명 중 네 번째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마라”(출
불자 5계 중 다섯째는 불음주계이다. “술을 마시지 않거나 취하지 마라”는 계율이다. 술은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심신이 이완된다. 그러나 일정한 용량을 초과하여 마시면 취하게 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어 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돼 혼란에 빠진다. 이처럼 술의 양면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 주로 낮에 일을 할 때는 금주하고, 일이 끝난 밤에 마시거나 제사나 잔치, 축제 때 마셔왔다.음주는 성(性)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로마의 바쿠스처럼 주신은 풍요와
출가란 세간생활을 청산하고 승려로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말하며, 가출은 그동안 속한 집이나 가족을 일시적으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출가는 영구적인 단절, 가출은 일시적 떠남이다. 과거엔 여성 결혼을 ‘출가’, 재혼을 ‘개가’라 했으나, 불평등 상징으로 오늘날 쓰이지 않는다.불전에 의하면, 싯다르타는 결혼을 하고 아들 라훌라를 낳은 후 29세의 한밤중에 인생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성을 떠나 출가했다. 이 결단은 출가절(음력 2월 8일)로 기려진다.출가는 머무르지 않는 삶이자 떠도는 삶이다. 고정되고 머무는 정주의 삶은 집착
불교의 십중대계 중 셋째는 “음행을 하지 마라”이다. 출가승려는 성행위를 해서는 아니 되며, 재가자는 부부나 연인 간이 아니면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수능엄경’에 의하면 “만약 음란한 마음을 끊지 않는다면 절대로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설사 근기가 뛰어나 선정이나 지혜가 생겼다 할지라도 음행을 끊지 않으면 반드시 마군의 길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음욕을 끊지 않고 수행을 한다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고 한다.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1976)에서 “생물 진화의 주체는 유전자(DNA)이며, 생
십중대계 중 둘째는 “훔치지 말라”이다. 여기서 ‘훔친다’는 행위는 단순히 남의 재물을 몰래 가져가는 것뿐 아니라, 타인의 정신, 신체, 노동력까지 몰래 또는 강제로 취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자연 세계를 보면, 세렝게티 초원에서 독수리는 사자가 사냥한 먹이를 훔치고, 하이에나는 무리를 지어 사자의 먹이를 빼앗는다. 사자 역시 표범이나 치타의 먹이를 탈취하고, 자칼은 하이에나와 사자의 싸움을 유도한 틈에 고기를 훔쳐 달아난다. 사바세계의 중생은 본능과 생존 본위의 이기심에 따라 끊임없이 남의 것을 탐한다. 이에 성인은 인간의 본성
불교의 십중대계 가운데 첫째는 “살생하지 마라”이다. 여기서 불살생은 단순히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위해를 가하는 폭력도 금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 범위도 동식물 전체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서로 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이고, 화엄 인드라망이다.반면, 서구 문화의 바탕인 기독교 경전에 의하면, 모세가 야훼로부터 받았다는 10계명 중 다섯째가 “살인하지 마라”이고(출애굽기 20장), 야훼가 아담과 이브에게 축복하기를 “땅을 정복하라.
불전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의 고향 카필라의 동쪽에 로히니강이 있고, 강 동쪽에 콜리야족이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여름 가뭄이 들어 물 부족 상황이 되자 두 나라 사이에서 강물 사용을 두고 농민들 간에 다툼이 생겼고, 이는 집단 폭력으로 이어졌다. 두 나라에서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군대를 출동시켰고, 결국 전쟁으로 비화될 처지에 놓였다.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로히니 강가로 가서 두 나라의 농민과 관계자들을 만나 법문을 설하고 화해와 조정을 이끌어 내어 두 나라 농민이 공정하게 강물을 이용해 가뭄을 극복하도록 하였다. 분쟁 원인은
불자가 되려면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수지해야 한다. 오계는 죽이지 마라, 훔치지 마라, 음행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 취하지 마라(전재성, ‘쌍윳따 니까야’ p.436)이다. 보살 십중대계 중 다섯 번째는 ‘술을 팔지 마라’이다. 흔히 ‘술 취하지 마라’는 ‘술 마시지 마라’로 소개되는데, ‘술 마시지 마라’는 보살48계 가운데 비교적 가벼운 계율이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더운 날씨로 인해 술을 마시지 않도록 했으나, 술을 파는 행위는 영리를 목적으로 타인의 정신을 흐리게 할 수 있으므로 더욱 무거운 계율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