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연간 4만명이 총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총기난사와 같은 비극적 범죄도 수시로 일어난다. 총기사고가 늘어나면 겁에 질린 국민들의 총기구입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총기사고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부가 개인의 총기를 거둬들이고 더 이상 총기구입을 못하도록 규제하면 된다. 그런데 미국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총기회사의 공격적인 로비에 길들여진 정부와 정치권이 현실을 애써 외면해 버린 결과다.
인종이나 종교, 성적지향성에 따른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미국의 총기규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정부 발의로 첫 상정됐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선진국이나 서구에서는 보편화된 법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이유는 보수 개신교의 방해공작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자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저질 논리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법 제정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을 공격해 왔다. 보수 개신교의 이런 집요한 방해공작은 법이 제정되면 자신들에게 닥칠 상황이 두렵기 때문이다. 먼저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행해 오던 폭력과 혐오가 불가능하다. 거대한 확성기를 이용한 각종 소음공해도, 선교를 가장한 저주와 협박이라는 거리에서의 백색테러도 처벌받게 된다.
6월19일 조계종 사회노동위는 여의도 국회둘레를 5보1배로 행진하며, 새롭게 출범한 21대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6월17일에는 4대 종교 이주‧인권협의회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효 스님의 ‘파거불행(破車不行)’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부서진 수레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언제까지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보수 개신교의 저질 선동에 휘둘릴 것인지 궁금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UN의 권고사항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장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국민 개개인이 누려야 할 삶의 권리이며 이제 막 선진국에 진입한 이 나라의 품격이 달린 문제이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542호 / 2020년 6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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