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5일부터 새해 2월 12일까지 90일간 전국 선원에서 동안거 참선 정진이 이뤄졌다. 사찰에서는 동안거 100기도 입제를 기점으로 정월달 정초 삼재 소멸 기도까지 진행하며 승가와 재가 사부대중이 함께 쉼 없이 정진했다.
원만한 입제와 해제를 위해서는 참선 정진하는 이판승(理判僧)과 사찰의 종무행정을 맡은 사판승(事判僧)이 맡은 소임에 충실해야 한다. 이를 예로부터 ‘이사(理事)가 원만하다’고 하였다.
선방에서는 해제 전날 ‘자신의 허물과 수행을 스스로 털어놓고 대중에게 점검받는 시간’이 있는데 이것을 자자(自恣)라고 한다. 함께 수행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3개월 동안의 수행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난 자신의 잘못을 청해 듣고, 잘못이 있다면 반성하고 참회하는 자자(自恣 Pravarana)를 행한다.
부처님께서 자자를 말씀하신 이유는 ‘무수한 방편으로 비구들에게 가르치되, 서로 가르치고 서로 말을 듣고 깨우쳐 주라’고 하신 ‘사분율'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또 ‘만일 허물이 있는 비구를 드러내고자 하거든 먼저 말해 알게 하여 듣기를 구한 뒤에 그 일을 드러내라. 또한 허물이 있음에도 그가 듣기를 원하지 않을 땐 말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율장'에는 ‘6군비구‘라 하여 6명의 말썽꾸러기 비구가 몰려다니며 부처님의 말씀을 곡해하거나 왜곡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전한다.
해제에 행해야 할 ‘자자행법’에도 6군비구가 등장한다. 부처님은 눈이 있고 귀가 있어 보고 들어 알면서도 어긋나게 행동하는 이러한 무리들에게는 손님으로 맞이하되, 침묵으로 대처하는 묵빈대처(默賓對處)의 방법으로 응대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사회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사업상 직무상 대인관계에서도 크게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며 훗날 좋은 때가 되었을 때 다시 이야기할 여지를 남기는 지혜의 설법이다.
우기철 한곳에 모여 집중수행하는 안거 기간이 끝나고 나면 스님들은 각각 운수행각(雲水行脚)의 길에 올라 여러 곳으로 흩어져 유행(遊行)을 떠난다. 이러한 유행의 풍습은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으며, ‘유행경(遊行經)'에는 부처님 유행 당시의 행적이 담겨있다. 승려들의 유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중국 선종의 선승들이 어떻게 유행(만행, 행각)을 하였는지 잠시 살펴보자.
중국 선종 선승들의 행각은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는 의미를 띤다. 당 중기의 선승 약산유엄(藥山惟儼 745~828)은 선지식을 탐방하는 행각시에 “반드시 ‘행각안(行脚眼)’을 갖추어야만 된다”고 당부하였다.
만행을 통해 스승이나 도반과 교류하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공부를 눈 푸른 스승에게 점검받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지식들을 찾아뵙고 수행의 정도를 물어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은 수행에서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다. 선지식을 구하고 도반을 찾아 다니며 얻는, 즉 ‘행각에서 얻는 안목’을 ‘행각안(行脚眼)’이라고 한다. 행각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선문답과 지침은 선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부의 중요한 부분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지나온 석 달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며 부족하고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 침울해하기보다는 그동안의 정진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부족한 면은 무엇인지 점검하는 시간이 해제의 바른 의미이다. 스승을 찾는 만행 속에서 스스로의 안목을 갖추고 도반과는 서로 탁마하는 자자의 안목을 갖추는 불자가 되기를 바란다.
덕산 스님 조계사 교육수행원장 duksan1348@nate.com
[1766호 / 2025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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