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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연등과 제등행렬

기자명 덕산 스님

부처님 자비·지혜 가득 담은 연등축제 

연등 역사, 신라시대부터 시작
2020년 유네스코 등재되기도
연등축제의 핵심은 제등행렬
구경거리 이상의 의미를 내포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날, 스승의날 등 감사와 사랑을 나누는 날들이 가득한 달이다. 특히 부처님오신날은 인류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뜻깊은 날로, 불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축하하는 날이다. 이날만큼은 전국 사찰들이 연등으로 도량을 장엄하며, 봄 햇살 아래 더욱 환희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찰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연등 준비에 들어간다. 정초기도가 끝난 정월 중순부터 연잎을 나눠주며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한다. 불자들은 집에서 연잎을 곱게 말려 가져오고, 사찰에서는 연잎에 풀을 발라 연등을 만드는 작업이 이어진다. 이 과정은 손이 빠르고 섬세한 사람들이 맡으며, 보통 세 명이 한 조를 이뤄 매일 수십 개의 연등을 만든다. 사찰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연등이 제작되며, 부처님오신날 법당 안팎을 환하게 밝힌다.

 완성된 연등은 연잎의 자연스러운 곡선과 곱게 접힌 색감 덕분에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연잎이 남으면 사찰에서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의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작은 꽃등, 나비 모양 등 여러 형태의 연등은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모든 과정은 불자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정성으로 이루어지며, 공동체 안에서 협동과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초파일 저녁이 되면 사찰 안팎에 달린 연등에서 촛불이 하나씩 밝혀진다. 형형색색의 등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풍경은 장관이다. 가끔 중심을 잃은 등이 기울며 불이 옮겨붙는 해프닝도 있지만, 그런 순간조차 지금은 추억으로 남는다. 시골이나 도심 포교당에서는 이날 법회를 열고, 저녁에는 연등을 대나무 끝에 달아 들고 마을과 거리를 돌며 석가모니불을 찬탄하는 정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전통적인 연등행렬은 종교를 향한 신앙뿐 아니라 공동체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연등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문왕 6년(866)과 진성여왕 4년(890)에 황룡사에서 연등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연등회를 국가 차원의 행사로 운영하도록 했으며, 유교 중심 사회였던 조선에서도 초파일 연등 문화는 명맥을 이어왔다. 특히 영조 49년, 왕이 홀로 연등을 보며 외로움을 토로했다는 ‘영조실록’의 구절은 당시에도 연등 문화가 백성들의 삶 가까이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연등축제는 연등회로 승화돼 국민적인 문화행사로 성장했다. 2012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202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되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특히 서울에서는 불교종립 대학인 동국대에서 출발해 조계사에 이르는 제등행렬이 하이라이트인데, 수많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이 참여해 서울의 밤을 밝힌다. 이는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다시금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올해 연등축제에서도 가난했지만 신심만은 누구보다 깊었던 ‘난타'라는 여인이 부처님께 등을 올렸던 그 간절한 마음을 떠올리며, 작은 공양이라도 진심을 담아 부처님께 올려보면 어떨까. 마음의 등 하나가 온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이 작은 공덕으로 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을 얻어 모든 중생의 어둠을 없애게 하소서.”

덕산 스님 조계사 교육수행원장 duksan1348@nate.com

[1774호 / 2025년 4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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