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해진 불교는 전통적 불교 국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것은 과학과 양립하는 불교였다. 당시 불교를 서양에 전했던 지도자들은 불교도 과학처럼 실증주의를 중시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불교와 과학 모두 ‘직접 경험하고 확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불교의 과학성을 주장했던 대표 인물로 선불교를 전한 일본의 스즈키 다이세츠(1870~1966), 인본주의 불교로 사회참여를 강조한 중국의 태허(1890~1947), 위빠사나를 세계적인 명상으로 만든 미얀마의 고엔카(1924~2013) 등을 들 수 있다. 스즈키는 앨런 왓츠와 에리히 프롬처럼 영향력 있는 서구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며 심리학과 종교의 벽을 허무는 데 기여하였다. 서양인에게 불교가 미신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태허 선사는 불교와 과학을 융합하여 불교가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종교라고 주장하였다. 고엔카는 “위빠사나는 삶의 예술, 기술, 과학이며, 내면의 자연법칙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육체 운동처럼 결과 지향적”이라며 불교 명상이 실험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불교가 과학과 통한다는 인식이 퍼지자, 서양인들도 불교를 더 자연스럽고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특히 불교에서 강조하는 ‘명상’이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당시 탄생한 ‘내적 성찰을 강조하는 심리학’의 관심과 일치하였다. 그래서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닌, 철학이고 심리학이고 과학 같은 것으로 새롭게 받아들여졌고, 서양 지식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불교가 과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불교를 진짜 과학처럼 연구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20세기 중반 명상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실험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과학자들은 많은 문제를 극복해야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은 몸의 자동 반응을 조절할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
당시 과학자와 의사들은 몸과 마음은 서로 다르며, 과학은 몸만 연구한다고 믿었다. 특히 서양 과학자들은 세상은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화학 반응이나 뇌의 활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지만, 명상이나 마음 훈련은 과학으로 알 수 없다고 여겼다. 게다가 1960~70년대 명상이 히피 문화나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과 연결되며 보수적인 과학자들은 명상을 이상하고 믿기 어려운 행동으로 치부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불교 수행이나 명상에 관심을 보인 과학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거나, 전문가로서의 신뢰를 잃을까 봐 걱정하였다.
그래도 명상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부재한 것은 아니었다. 1955년, 과학자 앙리 가스토는 요가 수행자의 뇌파를 연구하였다. 이 연구는 뒤에 이어질 명상 과학 연구의 길을 여는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그 뒤로 프랑스, 독일, 인도, 일본 과학자들이 명상 시 뇌파의 변화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초 도쿄대학의 가사마츠 아키라 박사와 히라이 토미오 박사가 중심이 되어, 좌선하는 일본 스님들의 뇌파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명상 중에는 뇌에서 알파파가 더 많이 생겼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면 세타파도 늘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발견은 명상 상태가 실제로 뇌 활동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과학자들이 명상에 더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cherryhill2736@gmail.com
[1779호 / 2025년 6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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