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하나에도 열기가 실려 오는 한낮, 지구가 뜨거운 열을 안고 조용히 신음하는 듯하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니 우리는 먼저 안부부터 묻게 된다. 몸은 별 탈 없이 무사하신지? 마음은 또한 여여하신지?
어느 시인이 여름은 ‘열음’이라고 표현했다. 창문을 열고, 옷깃을 열고, 가슴마저 활짝 여는 계절. 기후의 언어가 점점 거칠어 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선선한 마음을 지니고자 애쓰는 시인의 마음이 전달된다.
습도가 높아 옷이 몸에 달라붙는 날, 오랫동안 넣어두었던 모시 삼베 풀 옷을 꺼내 손질해 본다. 천 한 조각씩 꾹꾹 누르기도 하고 옷깃의 균형을 맞춰가며 쫙쫙 펼쳐 보기도 한다. 땀은 줄줄 흐르지만 손끝의 움직임은 조용하고 섬세하다. 기워야하고 덧대야 하고 말릴 때도 조심스럽게 널어야 한다. 해진 자락을 기우며 나의 조급함도 함께 꿰매어 본다.
요즘은 모든 것이 효율과 편리를 따진다. 그러나 삶이란 본디 손이 많이 가는 것이다. 마음을 써야 오래 간직할 수 있고 정성이 깃들어야 다음 사람에게도 물려줄 수 있다. 옷도 그러하고 인연도 그러하며 나 자신도 그러하다. 한 땀 한 땀 해어진 곳을 덧댄 자국마다 이전 스님의 숨결과 마음씨가 배어 있다. 시절 인연 따라 이 옷을 이어받은 나는 또 다른 시간의 실마리를 잇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좋은 옷감이 많고 승복도 쉽게 전화 한 통화로 대, 중, 소 기성복으로 주문할 수 있다. 승복 집에서는 계속 신소재 새로운 옷감을 개발하여 스님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대나무천, 옥수수천,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한 소재들이다. 풀 옷은 그 반대이다. 빨기도 어렵고 마르기까지도 오래 걸린다. 처음에는 입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난 선방 생활에서도 에어컨 없이 뜨거운 여름을 동고동락했던 옷들이 아닌가! 세월이 깃들고, 입는 것이 불편해서 넣어두기만 하면, 이 옷은 다시 누구에게도 건네지도 못할 것이고 결국은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바느질을 시작해 본다. 헤어진 솔기엔 조용히 실을 꿰고, 닳은 자락엔 조각 천을 덧댄다. 누구에게선가 건네진 승복, 단지 옷 하나를 받은 게 아니라 그 옷에 깃든 마음과 시간과 스토리가 함께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스며들어 누렇게 바랜 옷감은, 한 벌의 수행자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다듬어 손질한 옷은 무엇보다도 옷감에 길이 난다. 길이 잘 든 옷은 다음번에 다시 옷을 꺼내 손질하게 되면 한결 쉬어진다. 어쩜 마음공부의 이치와도 꼭 닮아 있다. 풀 옷을 손질하며 나는 빠른 판단과 지견을 쫓아가던 마음도 함께 손질한다. 내가 이 옷을 다 입고 나면 언젠가는 또 누군가가 이 옷을 입게 되기를 바란다. 그 사람도 이 옷의 솔기를 꿰매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어지는 길의 여름에 나는 잠시 머물고 있다.
벽에 걸어두었던 풀 옷을 입고 나서는 순간, 발걸음도 가볍고 반듯해진다. 몸은 여전히 여름 한복판에 있지만 마음엔 선선한 바람이 숭숭 불어온다.
선우 스님 부산 여래사불교 대학 학장 bababy2004@naver.com
[1785호 / 2025년 7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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