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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

기자명 현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5.07.18 11:49
  • 수정 2025.07.18 11:51
  • 호수 1786
  • 댓글 2

조계사 맞은 편이라는 상징적 위치는 전통과 현대,
수행자와 일반인 잇는 다리 될 수 있어

서울 종로 조계사 맞은편에 작은 선원이 문을 연다. 이름은 보화선원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조계사를 찾았을 때, 한 불자님이 법요집을 건네주셨다. 당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던 나에게, 그분의 따뜻한 보시행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법요집 속 반야심경을 외우고 마음에 새기면서, 불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살아났고, 언젠가 배우고 싶다는 갈망도 자라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인연이 내 안에 대승의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조계사 앞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나를 포함한 수행자들이 누군가에게 그런 씨앗 하나를 건네줄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보화선원은 불교를 오래 믿어온 이들뿐 아니라 선명상과 불교를 처음 접하는 타종교인, 외국인 등 모든 이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자 한다. 스님에게 배우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고, 절이 낯선 이들도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려 한다. 각자의 모습과 생각을 존중받으면서 누구든 자기만의 정신적·영적 길을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무엇보다 선명상과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특정 종교나 이념에 갇힌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삶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깨달음이나 해탈보다 당장의 불안이나 번아웃, 집중력 저하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명상이 여전히 무겁고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보화선원은 다양한 청중을 포용하기 위해, 선명상, 절 수행, 기도,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게 운영할 예정이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깊은 공부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대승경전의 심오한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다. 누구나 문 앞에서 시작하되,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보화선원의 역할이다.

가르침은 말로만 전해질 때보다 경험으로 스며들 때 더 깊다. 영화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듯, 이곳에서는 누구나 평가받지 않고,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수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안내받을 수 있다. 우리 사부대중이 함께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보화선원은 수행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앉을 수 있고, 스님들과 대화하며 자신에게 맞는 수행을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고자 한다. 젊은이든, 불교를 전혀 모르는 이든, 어떤 배경을 지닌 이든, 모두에게 문은 열려 있다.

조계사 맞은편이라는 상징적인 위치는 어쩌면 전통과 현대, 수행자와 일반인 사이를 잇는 하나의 다리가 될 수 있다. 외국인들도 이 거리를 자주 오간다. 언어나 문화가 달라도 우리는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말없이도 전해지는 따뜻함, 수행의 기운이 있다면, 그것이 곧 대승불교가 지닌 힘일 것이다.

작은 선원이지만, 누군가에겐 숨을 고를 첫 공간이 될 수 있다. 수행은 원래 그렇게 시작된다. 작지만 진심 어린 한 자리가, 누군가의 마음속 어딘가에 닿기를 바란다.

현안 스님 보화선원 지도법사 xa@chanpureland.org

[1786호 / 2025년 7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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