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8. 조선 침입의 첨병으로 전락한 진종대곡파

메이지 일본과 진종대곡파 포교 전략

오쿠보, 포교를 침투 전략화
부산별원 시작, 거류민 포교
조선 승려 교류, 개화당 연결
재정난·임오군란, 포교 후퇴

1875년 9월에 일어난 운요호 사건의 여파로 1876년 2월에 부산 외 2개 항구의 개항, 일본인 거류지 설정, 영사 재판권 등을 인정하는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되었다. 이때 일본 내무경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는 오쿠라 재벌의 창립자인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에게 조선무역에 착수할 것을 요청했고, 1876년 8월 일본 제품과 잡화를 가득 실은 배가 부산항에 도착했다. 당시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대마도 출신 약 90명에 불과했다.

오쿠보는 정치적, 군사적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첩보 활동을 기대하면서 진종대곡파(眞宗大谷派)에 조선 포교를 권유했다. 1877년 9월 28일에 오쿠무라 엔신(奧村圓心)과 히라노 에스이(平野惠粹)가 부산에 도착했고, 10월 1일에는 부산관리청의 관리관 곤도 마스키(近藤眞鋤)에게 출원하여 서관(西館)에 있는 관사 3개 동을 빌려 포교소로 삼았다. 당시 부산항은 용두산 중턱을 기준으로 동쪽을 동관, 서쪽을 서관이라 불렀다. 1878년 12월에 포교소는 부산별원(釜山別院)으로 승격되었고, 1879년 1월 입불식이 거행되었다.

처음에 진종대곡파의 포교 대상은 부산 지역 일본인 거류민으로 한정되었다. 일본 외무경(外務卿)인 데라시마 무네노리(寺島宗則)도 일본 기독교와 일본 불교의 포교가 조선 인심을 자극할 것을 염려하여 곤도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실제로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될 때 조선은 일본에 ‘기독교 금지 조항'을 명문화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1880년이 되면 부산별원을 찾는 조선인이 꽤 많았고,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 활동도 이미 개시되었다.

1879년에는 여성 신앙단체인 여인강(女人講)이 조직되었고, 1880년에는 원산에도 진종대곡파 포교소가 설치되었다. 1877년 11월에는 일본 거류민 자제의 소학교 교육이 시작되었고, 12월에는 빈민과 행로병자 구제를 위한 사회사업단체인 부산교사(釜山敎社)가 설립되었다. 1878년 1월에는 포교소에 조선어를 가르치는 선어학사(鮮語學舍)를 창설하여 개교사(開校使) 양성 사업을 시작했다. 1879년 1월부터 선어학사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어 교육 사업도 실시했다.

나아가 오쿠무라 엔신은 이동인(李東仁), 탁정식(卓挺植) 등의 조선 승려와 교류했고, 이들을 통해 박영효, 김옥균 등의 개화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조선 정부 내 친일파 육성을 지원했다. 이처럼 진종대곡파는 메이지 정부와 밀착해 ‘조선 침입의 첨병' 역할을 자임했고, 정부 지원하에 조선 종교계를 ‘불교화' 하는 것을 꿈꾸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878년 이후 진종대곡파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렸고, 교단의 내부 분열도 격심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1882년 7월에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이 강화되었고, 일본의 친일파 육성 공작에 대한 조선 내 반발도 커져 갔다. 당시 외무경이었던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청나라와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따라서 1883년 6월에 그는 “외국 포교는 힘은 많이 들지만 효과는 적다”고 주장하면서 진종대곡파의 중국 포교를 중지하면 좋겠다고 권고했다. 결국 1876년 7월에 중국 포교를 시작한 진종대곡파는 1883년에 중국 포교를 일시 중지했고, 조선의 원산포교소도 폐지하게 된다. 또한 1884년에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조선 정부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의 줄어들자, 한동안 진종대곡파의 조선 포교는 일본 거류민만을 상대로 제한적으로 유지되었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changyick@gmail.comp

[1787호 / 2025년 7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