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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위에서 찾은 진정한 쉼

기자명 선일 스님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파도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돼

이례적인 폭우와 폭염이 이어진 7월을 지나, 해변의 모래마저 녹일 듯한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한창이다.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올여름 국내 여행을 계획한 이들이 79%에 달했고, 그중 동해안이 가장 인기 있는 지역으로 꼽혔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휴가의 의미로 ‘충분한 휴식과 힐링’이 가장 많았고, ‘스트레스 해소 및 재충전’이 그 뒤를 이었다. 최근 10여 년간의 추세를 보면 체험과 힐링,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고 있다.

낙산사템플스테이는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작년 여름 ‘서핑템플스테이’를 선보였고, 올해도 2박 3일 일정으로 11차례 진행한 프로그램이 모두 조기 마감됐다.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이 이색적인 템플스테이는, 사찰과 불교에 보다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도록 구성됐다. 얼핏 보기에 서핑과 템플스테이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서핑을 단순한 레포츠가 아니라 ‘움직이는 명상’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대부분 초보자인 참가자들이 보드 위에서 파도를 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밀려오는 파도의 속도에 맞춰 보드에 엎드리고, 중심을 잡으며 일어서는 순간, 마음챙김이 없으면 곧장 바다에 빠진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파도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한 번 지나간 파도는 다시 오지 않지만, 이내 또 다른 파도가 찾아온다. 

참가자들은 이 과정을 반복하며 몸의 긴장을 풀고,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된다. 파도명상을 비롯한 프로그램은 그 내면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닿도록 돕는다.

서핑템플스테이는 파도명상과 호흡명상, 소리명상, 예불 등 정적인 프로그램과 함께 사찰탐방, 모닝요가, 염주 꿰기 같은 동적인 활동을 적절히 배치해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스마트기기를 잠시 내려놓는 ‘디지털 디톡스’가 더해지면서, 시나브로 마음에도 여백이 생긴다.

사람들은 흔히 쉼을 ‘하던 일을 멈추는 것’ 혹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쉼은 몸과 마음이 함께 쉬는 것이다. 생각을 멈추고, 뇌를 쉬게 하며, 결국 마음속 번뇌의 뿌리인 탐냄·성냄·어리석음의 삼독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가만히 있어도 쉬지 못한 날이 있는가 하면, 몸을 움직이며 오히려 완전히 쉬었다고 느낄 때도 있다. 참가자 대부분이 “호기심에 서핑하러 왔다가 명상(마음챙김)을 하고 간다”고 남긴 소감은 그 체험의 본질을 드러낸다.

올여름 날씨는 지역 곳곳에서 ‘기상관측 이래 처음’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우리의 삶 또한 어느 날 ‘내가 태어난 이래 처음’이라는 극단적인 감정으로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잠시 쉬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회복되는 ‘깊은 쉼’이다. 여름휴가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다시 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선일 스님 낙산사 포교·연수원장 mildsun1@naver.com

[1788호 / 2025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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