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른 아침부터 ‘오픈런’ 행렬이 이어진다. 올해만 벌써 수백만 명이 다녀갔고,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반가사유상이 모셔진 ‘사유의 방’이다.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걸치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은 생로병사에 대한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 시절 인생무상을 느끼며 고뇌하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조각가 최종태 씨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입만 웃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온몸이 함께 웃는다”며 “평생 조각을 해왔지만 그 미소를 아직 구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미소는 해탈의 미소이자 치유와 구원의 미소로, 보는 이에게 깊은 고요와 평화를 전한다. 사유의 방을 나온 관람객들은 신비로운 미소에 반해 마음을 가다듬었고, 어떤 이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거나 깊은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필자는 복지관의 장애인 이용자들과 함께 이른 아침 서둘러 줄을 서 입장했다. “이곳은 조용히 생각하는 방”이라는 안내 문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문구와 상관없는 관람객들은 모두 옷매무새를 고쳐 잡고 경건하게 작품 앞에 섰다. 그 모습에서 세상의 번잡함을 잠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나 또한 뭉클해졌다. 작품 앞에서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예술품의 정신을 담은 기념품 ‘뮷즈(MU:DS)’를 출시했다. 그 뮷즈들 중에서 반가사유상 굿즈를 구입하고 싶었으나 품절이었다. 아쉬움보다 대중적 인기에 더 기뻤다. 이어 박물관은 ‘스타벅스 코리아’와 협업해 머그잔, 미니백, 피규어 등 7종을 ‘별과 함께 하는 사유의 시간’ 컬렉션으로 선보였다.
성스러운 보물인 반가사유상이 대중 브랜드와 손잡고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반가사유상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시고, 가방을 메며, 책상 위에는 피규어를 올려둘 것이다. 불교문화가 ‘사유의 방’을 넘어 생활문화로 꽃피우는 장면은 반갑고도 인상적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불교가 종교적 색채보다 탈종교화된 문화 콘텐츠로 소비된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빌 게이츠 같은 실리콘밸리 리더들이 명상과 힐링으로 마음을 돌본다. 상처 치유, 자존감 회복, 마음 돌봄 같은 전통 수행법은 상담과 치료 프로그램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프로이드와 융 같은 심리학자들이 불교를 탐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상담심리, 만다라 치료 등에 불교 전통이 녹아 있으나, 정작 현장 상담사들은 그 연원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유의 미소는 이제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얻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또한 한국의 전설과 배경을 모티브로 케이팝 그룹과 케이팝이 등장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오래된 광고 문구가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하는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반가사유상이 젊은 층에 가볍게 소비되고 단순한 애착 굿즈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이제는 서구에서 간접적 문화 콘텐츠로만 소비되는 단계를 넘어, 한국 불교 예술이 직접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필자도 시간을 내어 반가사유상과 단청 키보드 굿즈를 찾아볼 생각이다. 그러면 책상 위에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침마다 내 안의 자비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기를 바란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 복지관장 suok320@daum.net
[1791호 / 2025년 9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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