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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정치 통감과 종교 총감: 을사조약 직후의 한일 불교 병합 시도

통감부 시대 조선불교 재편 시도

정치와 종교의 병행 통제
한국인의 정신 탈취 시도
일본불교의 진출에 저항
반발 여파로 기독교 번성

1902년 1월 4일에 원흥사가 창립된 후, 조선 정부는 4월 11일에 ‘포달 제80호’로 궁내부에 관리서를 두고 국내의 산림, 성보(城堡), 사찰에 관한 일체 사무를 담당하게 했다. 1902년 7월에는 ‘국내사찰현행세칙’ 36개조를 정하여, 원흥사를 대법산으로 하고 각 도에 16개의 중법산을 두어 전국 사찰 관리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은 포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에 기반하여 근대적인 종교 개념이 최초로 불교에 적용된 사례였다. 그동안 출가와 포교가 법적으로 금지된 채 ‘사적 종교’로 방치되었던 불교가 이제 국가 행정의 대상으로서 관리와 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04년 1월 11일에 관리서는 폐지되었고, 사찰 사무가 내부관방(內部官房)으로 이관되면서 조선 정부 주도의 사찰 관리는 실패로 끝났다.

러일전쟁 직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일본불교는 조선 사찰의 말사화와 병합 계획을 노골화하였다. 1906년 2월에 정토종의 개교사장(開敎使長) 이노우에 겐신(井上玄真)은 봉원사의 이보담(李寶潭)과 화계사의 홍월초(洪月初) 등과 함께 일본 정토종을 종지(宗旨)로 삼고 원흥사 내에 불교연구회를 설립했으며 2월 29일에 인가 받았다. 불교연구회는 전국 각 사찰에 지부를 두고 회비 50전을 받았으며, 회원에게는 ‘정토종교회장(淨土宗敎會章)’이라고 새겨진 금도금한 동제의 8각형 회원장(會員章)을 교부했다. 또한 이노우에의 의견에 따라 경성 부근 사찰의 13~30세 청년 승려에게 불교와 신학문을 교육하기 위해 명진학교를 설립하고, 음력 3월 1일에 수업을 개시했다.

1906년 6월 14일에는 경무사(警務使) 박승조(朴承祚)가 원흥사에 와서 도섭리(都攝理) 김월해(金越海)와 다른 승려들을 해산시키고 원흥사를 명진학교에 위탁했다. 정토종이 조선 정부와 결탁하여 추진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통도사를 정토종의 말사로 만들고자 획책한 사건이 발생하고 반대 운동이 격심해지자, 조선불교와 정토종의 합병 계획은 무산되었다. 결국 1907년 6월 25일에 각도 사찰 대표 50여 인이 모인 총회에서 이보담은 불교연구회와 명진학교장직을 사임했고 이회광(李悔光)이 피선되었다.

1895년 8월에 부산에서 포교를 시작한 본파 본원사(서본원사)는 1903년과 1904년에 마산과 대구에 출장소를 설치했다. 정토종의 영향력이 줄어든 1906년 10월 초에 오타니 손호(大谷尊宝)가 본파 본원사의 조선개교총감으로 부임했다. 이때 오타니가 한국 불교 재흥을 위해 원흥사를 다시 설립하여 13도 사찰을 관할하고 승직을 줄 것이며,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이 대법주가 되고 정부의 고관도 교인이 될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또한 일본 황태자의 동서이자 공작 작위를 가진 오타니 손호가 이토 히로부미보다 갑절이나 힘 있으며, 앞으로 정부와 비슷한 종교 조직을 만들어 조선인의 정신을 매수할 것이라고는 말도 돌았다.

1906년 10월 16일 자 대한매일신보는 이토 히로부미는 ‘정치상의 통감’이고, 오타니 손호는 ‘종교상의 총감’이라고 지칭했다. 을사조약으로 정치권이 넘어갔고 본파 본원사파에 의해 종교권이 일본에 넘어갔으므로, 정치력으로는 한국인의 수족을 묶고 종교력(宗敎力)으로는 한국인의 정신을 탈취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일본이 기독교를 방지하고 조선을 일본화하기 위해 불교를 확산시킬수록, 이에 대한 반발로 조선에서는 역으로 기독교가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한일병합 전부터 한일 종교병합의 갈등이 여기저기서 분출하고 있었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changyick@gmail.com

[1793호 / 2025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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