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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불자 공직자의 자세

기자명 이병두

‘부처님 제자’라고 자처하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있다. 불자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정각회’ 회원들도 있고, 대통령실을 비롯한 중앙정부와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 불교신행 모임을 이끌거나 참여하며 불교계를 지원하는 고위 공직자들도 있다. 대부분은 “역시 부처님 제자답다”는 평가를 받지만, 때로는 “저 사람이 불자야?”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런 이유는 단지 그들이 불교 교리를 깊이 공부하지 않았거나, 신행 활동을 게을리해서가 아니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고 확인되지 않은 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표정과 말투에서 증오와 원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대중은 정치인이나 공직자를 평가할 때 지식·학력‧재산보다 먼저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는가를 살핀다. 그러니 불자를 자처하는 정치인과 공직자라면, “불자는 역시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도록 ‘대무량수경’에 나오는 ‘화안애어(和顔愛語),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이 배어나야 한다.

‘붓다의 상수(上首) 제자, 불교 교단의 두 기둥’으로 불리는 사리풋타[舍利佛]와 목갈라나[目建連]는 우연히 마주친 비구에게 감화되었다. 걸식하던 앗사지 비구의 고요하고 단정한 모습에 사리풋타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저 분일 것이다.”

그는 친구 목갈라나와 함께 앗사지를 따라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오늘의 대중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앗사지처럼 엄숙하며 깨끗하고 밝은 종교인의 모습을 원한다. 불자 정치인과 공직자에게 거는 기대도 다르지 않다.

길지 않은 공직생활을 할 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개신교계 신학대학에 다니다 입대한 청년이었다. 전방의 혹독한 환경에서 그는 한 병사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이 ‘내 한 몸 편하면 그만’이라 여기는 상황에서, 그 병사는 자신의 일을 마친 뒤에도 동료의 일을 돕곤 했다. 그는 물었다. 
“왜 그렇게 하나요?”

그 병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스님이 된 고모님을 만나러 어려서부터 절에 다니며 ‘남을 먼저 배려하는 습관’을 배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신학대 휴학생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 종교의 긍정적인 힘이 이런 것이구나. 불교인은 이렇구나.”
그는 제대 후 신학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공직에 들어섰다. 기독교인이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불교 서적을 즐겨 읽고, 부인과 함께 사찰 순례를 다닌다. 몇 해 전 여름 다른 동료들과 내가 사는 곳에 와서 고달사터를 함께 찾았을 때, 그의 눈빛은 마치 오랜 인연을 다시 만난 사람처럼 맑고 빛났다.

신학도였던 젊은 병사가 ‘불자 병사’의 자비심에 감동해 불교에 마음을 연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일화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종종 말하곤 한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깨달음의 길로 이끈 앗사지 비구의 상을 조성한다면, 그 전방의 불자 병사를 모델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나는 그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고요하고 맑은 미소, 말없이 남을 돕는 손길, 세속의 소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얼굴. 이 모습이야말로 ‘부처님 제자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얼굴일 것이다. 부처님 제자를 자처하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에게도, 나는 그런 얼굴을 기대한다. 이 내 기대가 너무 큰 욕심일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798호 / 2025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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