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憂鬱症)을 앓는 사람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는 2020년 87만1926명에서 2024년 89만1730명으로 늘었다.
서양의학에서 우울증(Depressive disorder)은 생각, 의욕, 행동, 수면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저하되어 일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로, 뇌신경 정신질환으로 분류된다.
한의학은 음양오행설로 인체의 생리·병리를 설명한다. 달(月)과 해(日)가 음(陰)과 양(陽),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오행(五行)에 해당한다. 오장(肝心脾肺腎), 오방(東西南北中央), 오미(酸苦甘辛鹹), 오지(怒喜思憂恐) 등을 오행에 배속시켜 상생(相生), 상극(相克) 관계로 인체의 생리·병리를 해석하고, 진단과 치료에도 활용한다.
오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정립된 학문이라 날이 갈수록 그 이론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생리·병리는 물론 진찰과 치료까지 형이상학적, 철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과학 중심의 사고를 가진 이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다.
대학 시절 인체의 감정, 즉 오지(五志)를 오행에 배속시킨 내용을 배우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간장에 노기(怒氣, 성냄), 심장에 희(喜, 기쁨), 비장에 사려(思慮, 사고), 신장에 공(恐, 두려움)을 배속시킨 것은 납득되었으나, 폐(肺, 허파)에 근심(憂, 우울감)를 배속한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간장에 기(氣)가 울체되면 노여움이 나타난다. 기쁜 일이 지나치면 심장을 상한다. 생각과 고민이 많으면 비위(脾胃)의 기능이 떨어진다. 내과에서 자주 듣는 “신경성”이라는 말은 틀린 표현이 아니다. 간혹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지기(先天之氣)가 부족하면 두려움이 생긴다.
“그런데 왜?”라는 의문은 폐의 기능과 우울감의 연관성에 있다. 이 궁금증은 근육학을 배우면서 풀렸다. 폐는 늑골, 흉골, 흉추 등으로 구성된 흉곽 안에 있다. 흉곽을 덮은 근육이 강직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편안함의 첫 조건은 자연스러운 호흡이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때 불편함이 없을 때 우리는 편안하다고 느낀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꼭 껴안아 숨을 쉬기 어려운 상황을 상상해보라. 답답할 것이다. 폐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부드러운 근육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근육이 강직되어 폐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답답함을 넘어 우울증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침, 부항, 약침, 추나요법 등 한의학적 치료로 근육의 유연성을 회복시켜주면 우울감이 바로 사라지는 경우를 경험한다. 이는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회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울감으로 내원한 환자가 “이제 살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 가장 행복하다. 우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체조와 스트레칭을 하자. 꾸준히 하면 된다. “우울증은 근본적으로 근육병이다”라는 말을 개인적 의견으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병재 대중한의원 대표원장 dj6252@hanmail.net
[1799호 / 2025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