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들녘의 풍요 뒤 찾아오는 서늘한 공기 속에 그리움마저 묻어나는 계절, 가을이다. 가을 햇살은 오래된 연애편지처럼 따뜻하고 설레지만, 한 줄기 바람에도 마음은 낙엽처럼 흩어지며 바스락거린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유난히 ‘외로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심리학에서는 외로움을 ‘관계에 대한 질적·양적 기대와 현실 경험의 불일치에서 오는 주관적 정서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사회적 관계망의 부족이나 단절로 인한 사회적 외로움, 깊은 정서적 유대의 부재로 인한 정서적 외로움, 그리고 인간 존재 자체의 고립감에서 비롯된 존재적 외로움이 있다. 개인의 내재된 관계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공허함을 느끼고, 그때 세상과 분리된 듯한 감각이 찾아온다.
사회학은 외로움을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본다. 도시화와 개인화로 인해 공동체의 정서적 기능이 약화되고, 경쟁과 효율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인간은 ‘연결된 고립’의 존재로 살아간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에서 유동적이고 일시적인 인간관계의 불안정성이 외로움을 낳는다고 했다. 깊은 유대보다 속도와 가벼움이 지배하고, 디지털 매개는 관계를 소비재처럼 만들었다. SNS로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도 마음이 텅 비는 이유다. 외로움은 단지 관계의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잃은 증상이다.
신경과학에 따르면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신체적 통증과 유사한 신경 반응을 일으킨다. 만성적 외로움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우울증의 주요 예측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다양한 해석은 결국 불법(佛法)의 진리와 연결된다. 외로움이 관계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곧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보여준다. 외부 대상과의 관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상호작용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외로움 자체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 ‘외롭다’는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본질을 지켜봐야 한다. 외로움은 밀어낼수록 그 그림자가 커지고, 성급히 채우려 들수록 좋은 인연을 맺기 어렵다.
출가 수행자는 대중 속에서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상대방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이익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탁마하며 공부를 완성하는 도반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음이 충만하면 혼자 있어도 즐겁고, 함께 있어도 즐겁다. 반대로 마음이 조급하면 혼자 있어도 외롭고, 함께 있으면 괴롭다.
외로움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투명해지고, 그 고요함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이 순간은 채워야만 하는 빈 공간이 아닌 나를 만날 수 있는 대화의 기회이다.
하늘의 새가 발자국을 남기지 않듯, 지혜로운 이는 외로움 속에서도 흔적 없이 걸어간다. 외로움은 진실한 존재를 깨닫는 수행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선일 스님 낙산사 포교·연수원장 mildsun1@naver.com
[1800호 / 2025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